연회도 외면하고 미사일 발사…전승절 거리두기 김정은의 '핵 행보'

2025-05-09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9일 열리는 전승절(제2차 세계대전 종전 80주년) 행사에 불참하기로 한 데 이어 평양에서 열린 기념 연회에도 별도의 메시지를 보내지 않았다. 대신 전승절 하루 전 동해 상으로 미사일을 발사하고 직접 훈련 현장을 찾으며 전승절 축하와는 거리를 두는 듯한 행보를 보였다.

연회 열렸지만 별도 메시지 없어

조선중앙통신은 9일 김정은이 전날 동부전선구분대들의 장거리포·미사일 체계 합동 타격 훈련을 지도했다고 보도했다. 김정은은 "전쟁 억제 전략과 전쟁 수행의 모든 면에서 핵 무력의 중추적 역할을 부단히 제고해야 한다"며 "핵 무력의 경상적인 전투준비태세를 부단히 완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전술 핵무기의 전투적 신뢰성을 높이라"고 주문하면서다.

이런 가운데 같은 날인 8일 평양의 양각도국제호텔에선 주북 러시아 대사관 주최로 러시아의 전승절 기념 연회가 열렸다. 노동신문은 연회에 참석한 노광철 국방상의 연설을 보도했지만, 김정은이 보낸 별도의 메시지는 없었다.

연회에 참석한 알렉산드르 마체고라 주북 러시아 대사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쿠르스크 지역 해방작전에서 큰 역할을 한 북한군의 용감성과 희생성을 높이 평가했다"고 언급했다. 이어 "조선의 영웅들을 추억하는 아름다운 기념탑들이 세워질 해방된 도시들과 마을들, 광장들은 그들의 이름으로 불리게 될 것"이라며 쿠르스크에 북한군을 기리는 기념탑을 세우고 일부 지명을 바꾸겠다고 약속했다.

10년·20년 전엔 서열 2위도 참석

올해 러시아의 전승절은 정주년(5년·10년 단위로 꺾어지는 해)라는 점에서 의미가 각별하다. 통일부에 따르면 주북 러시아 대사관은 코로나19가 덮쳤던 2020년(75주년)을 제외하고 2000년(55주년), 2005년(60주년), 2010년(65주년), 2015년(70주년)에 이어 올해(80주년)까지 정주년 전승절엔 매번 연회를 개최했다.

이날 연회에는 북한 측에서 노 국방상, 박정천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최선희 외무상 등 최근 북·러 관계에 깊이 관여해온 핵심 인사들이 참석했고 방북 중인 벨라루스 정부 대표단도 자리를 함께했다.

다만 이번 연회 참석자 면면은 앞서 10년 단위로 꺾어지던 해에 비해 급이 다소 낮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2005년(60주년) 전승절엔 당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김일철 인민무력부장이, 2015년(70주년)엔 양형섭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과 노두철 내각 부총리가 연회에 참석했다.

북한은 또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절이었던 2005년 러시아 전승절엔 항일혁명투사들인 이종산 조선반제투사노병위원회 위원장(조선인민군 차수)과 김옥순 위원을 모스크바에 보냈다. 김정은 집권 후인 2015년에도 전승절엔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을 보냈다. 특히 2015년에는 김정은과 푸틴이 축전과 메달을 주고받고 평양에서 메달 전달식까지 열며 친선을 과시하기도 했다.

김정은 안 가고 최용해 파견도 철회

그간의 전례를 고려해 북한이 서열 2위인 최용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러시아에 파견할 것이란 전망이 나왔던 이유다. 특히 최근 양국이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함께 싸우는 '혈맹' 관계를 공식화한 점을 고려할 때 올해 전승절에는 김정은이 직접 어떤 형태로든 나설 가능성도 제기됐다.

정보당국에 따르면 북한은 당초 최용해를 특사로 파견하려 했으나 이를 막판에 철회했다고 한다. 현재로썬 현지의 신홍철 주러 북한 대사가 전승절 열병식 등에 참석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실제 병력을 보내 참전한 '유일한 동맹'인데도 북한군이 이번 열병식에 참여하지 않는 것 역시 의문을 낳는 상황이다. 지난달 말 잇따라 북한군 파병을 인정한 후 양국 관계에 묘한 기류가 감지된다는 해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양국 간 마찰이 생겼다면 이는 파병에 따른 반대급부를 조율하는 과정에서 발생했을 가능성이 크다. 김정은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재진입 기술, 핵추진 잠수함 기술 등 핵·미사일 관련 첨단 기술을 러시아로부터 기대하고 있지만, 러시아가 이를 충족하지 못하자 나름의 불만을 드러낸 것일 수 있다.

일각에선 이번 전승절 행사에 북·중·러 3각 연대가 부각되는 듯한 모습을 중국이 꺼려해서 북한이 의도적으로 참여를 최소화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중국은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직접 전승절에 참석해 푸틴과 회담하고 미국을 겨냥해 "일방주의와 패권적 괴롭힘"을 비판했다.

러시아와 거리두고 대남 위협 집중

이처럼 김정은은 러시아 전승절에는 거리를 둔 채 "전술핵 무기의 신뢰성을 높이라"며 대남 위협에 집중했다. 공개적으로 파열음을 노출할 생각은 없는 셈이다.

특히 북한은 이번 훈련에서 "핵방아쇠 체계의 가동믿음성을 층층으로 검열했다"고 밝혔다. 2023년 3월 처음 언급된 핵방아쇠는 핵무기 사용 명령과 실제 발사 과정을 일원화하는 이른바 '국가 핵무기 종합관리체계'다. 이와 관련,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전술핵을 한반도 전역에 대한 타격용으로 최적화하고 즉각적인 사용 준비에 나선 것을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한편 정부는 전승절 열병식에 와달라는 러시아의 초청장을 접수했지만, 이도훈 주러 한국 대사가 참석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북·러가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에 해당하는 군사 협력을 이어가는 가운데 러시아의 전쟁 수행 능력을 과시하는 무대에 고위급 인사를 보낼 경우 그 자체로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는 판단에 의한 것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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