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동굴 속에 살고 있던 곰과 호랑이가 환웅에게 사람이 되기를 소원하자, 환웅이 쑥 한 다발과 마늘 스무 개를 주며 이것을 먹되 100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사람의 형상을 얻을 거라고 했다. 이를 지킨 곰만 웅녀가 됐고, 환웅과 혼인하여 낳은 단군이 고조선을 세웠다.’ 고려 시대 승려 일연이 1281년 쓴 <삼국유사>에 담겨 오래도록 전승되고, 한국 사람 누구나 알고 있는 고조선 개국 신화이다.
그런데 환웅이 준 것은 마늘이 아니라는 말이 있다. 1946년 사서연역회가 <삼국유사> 국역본을 내면서 ‘산(蒜)’을 마늘로 번역했지만 마늘일 리 없다는 주장이다. 원산지가 중앙아시아로 추정되는 마늘이 중국으로 전해진 게 기원전 2세기라 시기상 맞지 않고, 조선 시대까지 마늘은 주로 ‘호(葫)’라고 불렸다는 근거가 뒤따른다. ‘산’은 강한 향과 맛이 나는 식물을 일컫는 만큼, 당시 한반도에 자생하던 달래나 다른 식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단군신화에서 쑥은 여성성·생명력을, 마늘은 인내와 의지를 상징한다. 인간은 저절로 되는 게 아니라 노력하고 시련을 극복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해석이 더해진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8일 이재명 대통령과 여야 지도부 오찬 회동에서 “제가 정청래 민주당 대표와 악수하려고 당대표 되자마자 마늘과 쑥을 먹기 시작했다. 미처 100일 안 됐는데 악수에 응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했다. 지난달 2일 취임한 정 대표가 “악수도 사람과 하는 것”이라며 “내란 세력과 악수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뒤 37일간 야당과의 대화를 거부한 걸 꼬집은 발언이었다. 양당 대표는 이 대통령의 ‘중재’로 이날 처음 악수하고 화기애애하게 대화도 나눴다. 정 대표가 9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국민의힘에 ‘내란 청산’을 요구하면서도 야당과의 협력은 일절 꺼내지 않은 것은 아쉽다.
정치를 복원하려면 이 대통령의 당부처럼 여당이 야당에 양보하고 손을 내밀어야 한다. 그러나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과 단호히 절연하지 못하고 극우화하는 국민의힘이 야당 역할을 제대로 하겠냐는 국민적 의구심이 큰 것도 사실이다. 국민의힘이 공당으로 다시 태어나려면 처절한 반성과 쇄신까지 ‘마늘과 쑥’을 먹는 과정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