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민의 ‘죄와 벌’] 불신·믿음 대립하는 재판정

동양 철학에서는 세계를 음과 양의 대립으로 본다던데, 그에 빗대면 법정은 믿음과 불신이 대립하는 세계이다. 재판은 결국 누구를 믿느냐 믿지 않느냐를 판단하는 일이다. 판사가 우리 말을 믿으면 우리가 이기는 것이고 상대의 말을 믿으면 우리가 지는 것이다. 변호사 입장에서 재판에서 이기려면 우리 측 주장에 대한 신뢰를 높이는 반면 상대편 주장에 대해서는 불신을 조장해야 한다. 법정에서 사람들이 다들 조곤조곤 말하지만 결코 편안하지가 않은 이유도 불신과 의심으로 가득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사르트르 희곡서 “타인이 지옥이다”

영어로 똑같이 ‘코트(Court)’인 테니스 코트와 비교해 보면 법정의 이런 성격이 명확해진다. 이 글을 쓰면서 역사상 최고의 경기로 꼽히는 2008년 페더러와 나달의 윔블던 테니스 대회 결승전을 찾아보았다. 4시간48분 동안 혈투가 이어진 이 경기에서 두 선수는 상대를 이기려고 최선을 다하지만 불신의 자기장은 볼 수 없다. 그러니 그 두 전설이 치열한 라이벌이었으면서도 서로 신뢰하는 친구로 남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법정에 나와 있는 당사자들은 기본적으로 서로를 불신한다. 삼권분립 사상에 따라 판사 외에 검사를 따로 두기 시작한 것도 국가에 대한 불신을 전제로 권력 남용을 견제하기 위해서다. 근대 이전의 재판에서는 판사와 검사가 분리되지 않은 채 심판관 앞에 피고인이 단독으로 앉아서 심판을 받았다. 조선 시대 원님도 지금으로 치면 검사·판사·경찰서장·교도소장·구청장이 한 몸인 셈이다. 이런 제도 아래에서는 무고한 사람이 처벌받는 경우가 많아진다. 스스로 의심이 생겨서 체포하고 수사하고 고문했는데, 재판을 해 보니 혐의가 없어서 무죄판결을 한다는 것은 당초 자신의 판단이 잘못임을 자백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판사 입장에서는 피고인을 당연히 믿지 못한다. 거짓말을 해서라도 처벌을 줄이려는 동기가 있기 때문이다. 내가 판사일 때도 황당한 거짓말을 하는 피고인들을 수없이 보았다. 검사를 사칭해서 10억원을 사기를 친 피고인이 갑자기 온몸의 근육이 풀려버리는 병에 걸렸다며 출석을 거부하고 있었다. 내가 다음 기일에 출석하지 않으면 바로 구속영장을 발부하겠다고 전하자 그는 할 수 없이 응급차를 타고 간호사들을 대동하고 병상에 누운 채 링거와 산소호흡기를 달고 법정에 왔다. 내가 같이 온 두 간호사의 신분증을 받아서 어느 병원 소속인지를 묻고 그 병원에 연락해보라고 직원에게 시키자 두 간호사들, 아니 간호사 연기를 하던 아르바이트생들은 몹시 당황하며 낯빛이 어두워지더니 사실은 오늘 일당을 받고 동원되었다고 실토했다. 나는 병상에 누워 있는 피고인을 향해 말했다. “피고인, 그만하고 그냥 일어나시죠. 이제 산소도 다 떨어졌을 텐데요.” 방청객들이 일제히 그를 쳐다보는 가운데 그는 두 눈을 뜨고 스스로 산소호흡기를 떼더니 부스스 일어나 앉았다. 방청객들이 예수의 기적을 본 것처럼 눈을 반짝거리며 웅성거렸다. 나름 무거운 형량으로 실형을 선고하고 나니 한달 만에 그 피고인이 희귀병을 이유로 형집행정지를 받고 풀려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음주측정거부죄로 기소된 어느 중년의 피고인도 기억난다. 그는 자신이 음주 측정에 충실히 응했는데도 기소당했다면서 억울하다고 분노 조절을 못하고 킹콩처럼 울부짖었다. 이후 경찰서에 보관되어 있던 CCTV 영상을 법정에서 함께 보았다. 영상 속 피고인은 진짜로 음주측정기에 입김을 불기는 불었다. 그러나 입술을 잔뜩 오므린 채 생일 케이크에 꽂은 촛불 하나도 끌 수 없을 정도로 약하게 입김을 불고 있었다. 내가 피고인에게 “왜 이렇게 약하게 불었습니까”라고 물으니 피고인은 “심장이 안 좋아서요. 그때는 심장이 참 안 좋았지요”라고 말했다. 그러나 음주 측정 직전까지 영상을 보니 피고인은 스스로 옷을 벗고 흰 팬티만 입은 채 경찰 책상 위에서 소리를 지르며 타잔처럼 뛰어내리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심장이 나쁜 사람 같지는 않아서 법에 정해진 최대로 높은 벌금형을 선고했다.
판사 입장에서는 변호사도 잘 믿지 않는다. 판사의 자리는 가운데 있지만, 변호사는 피고인 바로 곁에 앉는다. 판사의 판단이 신뢰받는 반면, 변호사의 주장이 편향되었을 것이라고 불신받는 이유를 이 자리 배치가 보여준다. 변호사는 기본적으로 피고인의 편인 것이니 특정 진영에 속한 논객의 말처럼 들린다. 판사가 볼 때 검사는 공무원으로 굳이 가해자나 피해자의 한쪽 편을 들 이유가 없어 보이지만 변호사는 돈을 받고 일하는 사람이니 돈을 많이 받으면 피고인을 위해 거짓말도 할 수 있는 사람이라 생각하게 된다.
누군가 나를 믿어주는 건 감사한 일

검사도 판사를 온전히 신뢰하지 못한다. 검사들은 판사들이 순진해서 범죄가 판치는 현실을 잘 모르고 범죄자들에게 잘 속는다고 생각한다. 변호사들도 판사를 전적으로 신뢰하지는 않는다. 제대로 재판하는 판사들도 많지만 상식과 동떨어진 판단 기준을 가지고 있거나 확증편향이 심한 판사, 고압적인 판사도 적잖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국회의원들은 서로를 ‘존경하는 의원님’이라 부르지만, 변호사들은 그냥 ‘재판장님’이라 부르지 ‘존경하는 재판장님’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변호사들이 솔직하다) 이런 사람들이 매 사건마다 법정에 한데 모여 있으니 법정 분위기가 편안하고 훈훈할 리는 없다.
프랑스의 철학자 사르트르가 쓴 ‘닫힌 방’이라는 희곡에서는 가르생(남자), 이네스(여자, 동성애자), 에스텔(여자) 세 사람이 지옥에 떨어진다. 전생에 전쟁 중에 도망을 가다가 죽은 가르생은 이네스로부터 겁쟁이가 아니라고 인정받기 위해 애쓴다. 하지만 이네스는 절대 그 사실을 인정해 주지 않아서 가르생은 심리적 지옥에 빠진다. 전생에 불륜과 영아 살해를 저지른 에스텔은 가르생을 유혹해서 진정한 사랑을 받고자 애쓴다. 하지만 가르생은 에스텔을 이용할 뿐 사랑을 주지는 않아서 에스텔 또한 지옥에 빠진다. 동성애자인 이네스는 에스텔을 집착적이고 파괴적으로 소유하려고 하지만 에스텔은 이성애자이므로 이네스도 지옥에 빠진다. 이들은 서로 검사처럼 상대의 잘못을 들추어내 고발하고, 변호사처럼 남 탓으로 돌리며 변명하며, 판사처럼 냉정하게 심판하려 든다. 그래서 “타인이 지옥이다”라고 말한다.
사르트르의 ‘닫힌 방’에서는 세 주인공이 모두 서로를 믿지 않지만 법정의 판사는 결국 어느 한쪽을 믿어 준다. 판사가 믿어준 당사자는 천국에 가지만, 판사가 오판을 해서 믿어주지 않은 당사자는 지옥에 빠진다. 변호사가 되어 보니 지옥에 빠뜨리는 판사를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이 본다. 나도 그랬을 것 같아 반성하게 된다.
어떤 판사가 당사자들을 일부러 지옥에 빠뜨리겠는가. 내가 판사로 일할 때도 누구를 믿어야 할지 몰라서 답답할 때가 많았다. 법대 위에 꼼짝하지 않고 앉아 있다 보니 내가 볼 수 없는 사각지대에 있는 사건의 진상을 보기 어려웠다. 검사도, 변호사도, 피고인도, 증인도 내가 쳐다보는 각도에서는 모두 진실된 모습, 좋은 모습, 딱한 모습만 보여준다. 판사 앞에 자신을 드러내는 그 짧은 시간 동안만, 판사에게 노출되는 제한된 각도에서만 자신의 본색을 숨긴 채 유리한 모습만 보여 주는 것은, 마치 인스타그램에 자신이 가장 예쁘게 나오는 각도로 찍은 사진만 올리듯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그렇기에 내 판단에 확신을 가지기 어려웠다. 판사는 그럼에도 답을 내야 한다. 의사는 자신을 찾아온 환자를 고칠 자신이 없으면 큰 병원에 가 보라고 하면 되지만 판사는 어떻게든 자신이 결론을 내려야 한다. 고백하자면 끝내 정답을 확실하게 알지 못한 채 시험 마감 시간에 쫓겨서 답을 찍는 수험생처럼 판결한 적도 적지 않았다.
변호사가 되니, 의뢰인이 진실을 털어놓는 경우가 많고 의뢰인과 매우 많은 소통을 하며, 또 증거를 보다 다양하게 살펴볼 수 있기 때문에 사건의 진상에 보다 더 생생하게 접근할 수 있다. 그러나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변호사는 ‘의뢰인의 편’이라는 점 때문에 법정에서 받게 되는 기본적인 ‘불신 값’이 있다. 나로서는 의뢰인을 신뢰해서 그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이지만 바로 그렇기에 그 자체로 불신받는 것이다. 그렇기에 판사를 설득하려면 의뢰인 말을 그저 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기본적 불신을 뛰어넘을 수 있는 특단의 노력을 해야만 한다.
변호사가 판사를 설득하는 데 실패하면 판결문이 “피고인의 주장은 믿기 어렵다”거나 “변호인의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는다”며 노골적·공식적으로 불신을 표한다. 남들에게 나를 믿어 달라고 간구하지 않는 판사로 일하다가, 변호사가 되어 나를 믿어달라고 간절히 애쓰지만 이렇게 수시로 불신을 받아보니, 누군가가 나를 믿어주는 일이 얼마나 특별하고 감사한 일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정재민 변호사, 작가. 20여년간 판사, 법무부 송무심의관 등으로 일했다. 『보헤미안 랩소디』(세계문학상 수상작) 등의 소설과 『사람을 얼마나 믿어도 되는가』 『범죄사회』 등의 에세이집을 냈다. 현재 법무법인 예문정앤파트너스의 대표변호사로 형사·이혼·상속 사건을 주로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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