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정의 더클래식 in 유럽

7월 14일 구름이 덮인 파리는 덥지 않았다. 도시는 더 열심히 북적였다. 매년 이날 파리는 들뜬다. 군인 7000명, 비행기 100대, 말 200마리의 행진이 오전 10시에 시작된다. 여기에 대통령이 참석하고 지하철역들은 아예 폐쇄되거나 몇 시간 동안만 열린다.
1789년 사람들이 바스티유 감옥으로 몰려갔던 날, 혁명이 시작된 날 아침을 파리는 이렇게 기념한다. 여행 정보에는 바스티유 데이의 파리에 수십만 명이 오간다고 돼 있다. 오후에 이 인파는 도시 곳곳으로 흩어지고, 밤 9시 에펠탑 앞에 다시 모인다.
청중 10만 명 앞에 바이올리니스트 김봄소리가 섰다. 에펠탑 앞, 마르스광장 무대 위에 샛노란 드레스를 입고서. 오케스트라의 짧은 전주 끝에 활을 치켜든 그는 다리를 단단히 편 후 팽팽한 사운드를 내기 시작했다. 생상스의 서주와 론도 카프리치오소다.
유럽의 한 연주자와 나눴던 이야기가 떠오른다. 그는 내게 김봄소리를 아는지 물었다. 최근 주목하고 있는 음악가라면서. 김봄소리는 ‘수많은 콩쿠르에서 입상한 바이올리니스트’ 정도로 한국에 알려졌지만, 유럽에서 무서운 기세로 뻗어나가고 있다. 한국에서 저평가됐다고 보일 정도다. 예를 들어 지난해 BBC 뮤직 매거진 어워즈의 협주곡상 수상은 당시 한국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무대 위 김봄소리의 연주는 거침이 없다. 뒤로는 에펠탑이 솟아 있고 앞으로는 10만 명이 바라보고 있다. 게다가 생상스는 프랑스 사람들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작곡가 중 하나. 이런 상황에 위축되기는커녕 김봄소리는 한 발도 물러서지 않으며 음악을 펼쳐나간다.
우리는 다음 날 대화를 나누기로 약속돼 있다. ‘바이올리니스트가 경력을 쌓아 올리는 방법’이 주제가 되겠다는 예감이 든다. 에펠탑 앞에서의 연주는 사실 이벤트다. 베를린필 데뷔, 카네기홀 연주 같은 무게는 없다. 하지만 좋은 상징이다. 음악계 관계자들이 눈여겨보고 있고 믿을 만하게 여기며, 대중이 사랑하는 연주자라는 뜻이다. ‘한국에서 더 잘 알아야 할 음악가’라는 제목으로 김봄소리와의 대화를 상상해 본다.

“물러서지 않는 연주였다고요?” 공연 다음 날, 스위스로 넘어가기 전 파리에서 하루 시간이 남은 그가 특유의 깔깔 웃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면도 있죠. 오케스트라와 맞춰볼 시간도 많지 않았고 야외 연주니까 내가 뭘 원하는지 확실하게 알려줄 필요가 있었어요.”
바스티유 데이에 열리는 에펠탑 공연에는 첫 출연이다. 하지만 그는 이미 지휘자(크리스티안 마첼라루)와 친숙하다. “지난해에 쾰른에서도 했었고, 런던에서도 했었고요. 워낙 친해요.” 이날 대화에서 정리해 본 김봄소리의 유럽 경력은 예상을 조금씩 뛰어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