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밥값 줄이고 보험 드는데, 걔넨 전시회 가더라”

2025-05-12

육아비 150만 원 시대, 삶의 질도 양육 양극화

“요즘 머리도 안 자르고, 옷도 잘 안 사요. 애 낳고 나니까 내가 뭘 좋아했는지도 까먹었어요”

경기도 분당에 사는 30대 A씨는 두 살배기 딸을 키우는 전업맘이다. 외벌이 소득 330만원에 월세 90만원, 아이 교육비와 병원비, 보험료를 내고 나면 통장에 남는 돈은 없다. A씨는 “숨만 쉬고 사는 느낌인데, 주변에 결혼 안 한 친구들은 전시회 다니고 새 운동복 입고 요가도 하더라고요. 나만 늙고 있는 것 같아요”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자녀를 낳고 기르는 데 드는 비용은 단순한 금전 문제가 아니다. 삶의 결을 가르는 소비의 양극화이자, 출산과 비출산의 선택을 갈라놓는 결정적 이유가 되고 있다.

12일 육아정책연구소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영유아 자녀가 있는 가구의 월 평균 생활비는 377만5000원으로 무자녀 가구(355만 원)보다 더 많았다. 그러나 이 중 자녀 양육비를 제외하면 부모 개인이 쓸 수 있는 돈은 월 226만9000원이다. 전체 금액은 많지만, 정작 부모 자신에게 돌아가는 몫은 적다는 뜻이다.

특히 여가와 문화생활에 쓸 수 있는 돈의 차이는 극명했다. 무자녀 가구는 한 달 평균 49만9000원을 여가활동에 썼다. 영화 관람, 운동, 전시회, 취미강좌 등 자신을 위한 시간을 풍족하게 누릴 수 있는 수준이다.

반면, 영유아 자녀를 둔 부모의 여가·문화 지출액은 월 15만4000원에 불과했다. 전체 지출의 3분의 1도 안 되는 수준으로, 일상 속 여유를 챙기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아이를 돌보느라 시간 여유가 부족한 데다, 비용마저 줄이다 보니 결국 ‘나를 위한 삶’은 뒷전으로 밀리게 되는 셈이다.

‘기기·가전’, ‘피복비’, ‘보건·의료비’ 등 모든 항목에서 자녀가 있는 가구의 부모는 자기 자신을 위한 소비를 최소화하고 있는 모습이다. 보고서는 이를 두고 “양육비 부담이 부모의 자기 삶을 지워내는 구조로 작동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흥미로운 건 아이를 낳지 않은 사람들의 ‘양육비에 대한 인식’이 실제보다 훨씬 과장돼 있다는 점이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무자녀 가구는 영아기 양육비를 월 90만7000원으로 예상했지만, 실제 육아 중인 부모의 지출은 71만6000원이었다.

초등학생 시기 양육비는 무자녀 가구가 145만1000원을 예상한 반면, 실제 부모는 85만4000원만 지출했다.

“한 달에 200만 원은 깨진다던데?”, “학원비에 보험료, 병원비까지 합치면… 나중엔 사교육도 시켜야 할 거 아니야. 무서워서 애 못 낳겠더라”

이처럼 실제보다 부풀려진 양육비에 대한 공포는, 출산을 망설이게 만드는 심리적 장벽이 되고 있다.

정부는 그동안 양육수당, 바우처, 출산지원금 등 직접적인 양육비 지원에 집중해왔다. 하지만 현실은, 아이를 낳은 뒤 부모들이 겪는 삶의 질 저하가 출산 기피의 실질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보고서는 특히 “영유아 자녀 가구는 여가문화 소비는 물론, 건강관리, 개인취향 소비까지도 크게 위축되어 있다”며 “단순 지원을 넘어 부모의 삶 자체를 지지하는 정책으로 확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사진 양다훈 기자 yangb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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