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능이 끝이 아니야”라고들 하지만 그때는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한 군데는 붙겠지”, 이런 말도 전혀 위안이 되지 않았다. 수능이 끝인 것 같았고, 몽땅 떨어질 것 같았고, 그리고 그렇게 된다면 그 이후의 날들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학구열이 넘치는 동네도 아니었고 승부욕이 넘치는 성격도 아니었지만 고3, 대입, 수능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는 남달랐다. 완벽한 20대의 시작, 반짝이는 젊음, 뭐든 할 수 있는 청춘으로 한발 내딛기 위해서는 대학 합격증이 필요했다. 그리고 당연히, 기왕이면 더 좋은 대학이어야 했고.
붙여주면 학교 정문까지 앞구르기를 해서 가겠다느니 하는 말을 친구들과 매일 주고받았다. 많은지 적은지도 몰랐지만 경쟁률의 숫자에 살 떨려 하고, 추석 때 독서실 창 너머로 보름달을 보며 기도하던 밤이,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고민하며 원서를 접수처에 제출하던 날이 그리 멀게 느껴지지 않는다. 아마도 세상 그 많은 신들을 불렀던 첫 기억일지도 모르겠다.
수능을 열흘가량 앞둔 지난 2일, 서울 강남구 봉은사에도 간절한 마음이 모였다. 새벽 공기가 차가워지고 있는, ‘수능 냄새’가 나기 시작한 초겨울 아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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