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1위 석유화학(석화) 회사 LG화학이 정유사 GS칼텍스와 ‘나프타 동맹’을 추진한다. 석화 구조조정의 신호탄이다. 성사될 경우 석화 업체마다 구조조정을 두고 동상이몽(同牀異夢)인 상황에서 모범 사례가 될 수 있다. 〈9월 1일자 본지 종합1면 참조〉
3일 석화 업계에 따르면 LG화학은 GS칼텍스와 여수 나프타분해시설(NCC) 통폐합을 검토 중이다. LG화학이 운영하는 여수 NCC 공장을 GS칼텍스에 매각해 양사가 세운 합작사(JV)가 통합 운영하는 방식 등을 GS 측에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LG화학 관계자는 “최우선 사업재편 과제로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두 회사의 결합 시도는 정통 석화 기업과 정유사의 수직 계열화를 추진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정부가 지난달 20일 발표한 ‘석유화학(석화)산업 재도약 추진 방향’에서 유력한 구조조정 시나리오가 수직 계열화 모델이다. 석화 업계는 정유사가 원유를 정제하는 과정에서 만든 나프타를 분해해 에틸렌·프로필렌 같은 기초 유분을 만든다. LG화학은 에틸렌을 연 338만톤(t) 생산하는 국내 최대 석화 회사다. GS칼텍스는 정유업이 주력이지만, 2022년 준공한 여수 NCC에서 에틸렌도 연 90만t 생산한다.

여수 산업단지를 상징하는 양사는 ‘담’ 하나를 사이에 둘 정도로 가까이에서 같은 제품을 생산한다. NCC 설비를 통폐합할 경우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다는 얘기다. 최근 검토 중인 롯데케미칼과 HD현대케미칼 등 석화 기업간 수평 통합보다 효율적이다. 이진명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정부가 제시한 NCC 25% 감축 목표를 맞추려면 결국 국내 최대 규모 NCC가 몰린 여수 산단 기업간 통폐합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LG가 그룹의 모태인 화학 사업 매각을 검토할 정도로 의지가 확고하다. LG화학은 지난해에도 해외에 여수 NCC 매각을 추진했다. LG 관계자는 “NCC의 경쟁력은 원가 절감에서 갈린다. NCC를 통폐합할 경우 LG화학은 정유사인 GS칼텍스로부터 안정적으로 나프타를 조달받고, GS칼텍스는 LG화학이란 안정적 공급처를 확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GS칼텍스는 2005년 LG그룹에서 분리·독립한 GS그룹의 주력 계열사다. 기존 정유 사업 위주에서 석화를 포함한 종합 에너지 기업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어 LG와 NCC 통폐합을 고려할 가능성이 있다. 다만 당장의 적자와 통합 후 구조조정 등 부담스러운 면도 있다. 합작사인 셰브론의 동의가 필요한 점도 변수다. GS칼텍스 관계자는 “밝힐 입장이 없다”고 말했다.
LG화학의 NCC 가치 산정이 통폐합 협상의 관건이 될 전망이다. 석화 업계 불황으로 NCC 자산가치는 ‘저점’을 찍었다. GS칼텍스가 LG에 비해 통폐합에 조심스러운 이유다. 이충재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GS로선 에틸렌 등 수요 부진 리스크(위험)를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라, LG가 NCC 가치를 낮추지 않는다면 통폐합할 유인이 떨어진다”고 분석했다.
국내 대형 NCC 통폐합 사례가 전무한 만큼 구조조정의 첫 단추를 잘 꿰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엄찬왕 한국화학산업협회 부회장은 “정부가 수직 계열화 등을 추진하는 석화·정유사에 취득세와 법인세 유예·감면, 전기요금 인하 등 지원을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구조조정에 적극적인 석화 회사에 금융, 세제, 규제 완화 등 모든 지원을 열어두고 검토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