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Q. 지난 10월 13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미군정 시기인 1946년 11월 28일 경성지방법원이 위조 통화 등의 혐의로 울산시 울주군 범서읍 입암리 출신 독립운동가 이관술에 대해 무기징역을 확정한 ‘조선정판사 사건’의 재심 개시를 통보했다. 소식을 듣고 어떤 심정이었나? 법원의 재심 개시 결정을 예상했나?
예상은 하고 있었다. 쉽게 빨리 결정되지 않고, 심리를 끝낸 사건이 해를 넘기고, 재판부가 바뀌어 또 부연 심리를 여는 걸 보면서 정판사 ‘위조지폐’ 사건이 그만큼 중요하고, 잘못을 인정하는 결정을 내리기 힘든 역사적 사건이라는 것에 재판부가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고 생각돼 희망의 싹이 보였다.
10월 13일 저녁 <법률신문>의 단독보도를 보고 먼저 알게 된 지인과 변호사에게 연락이 왔을 때, 약간은 얼떨떨했고 들뜬 나머지 밤잠을 설치기도 했다. 변호사 또한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고 했다.
10월 16일 법원으로부터 확실한 결정문을 받았다. 큰 산을 하나 넘었다는 안도감으로 생애 이렇게 좋은 날이 있을까 가슴이 뛰었다. 이제 본 게임의 시작에 불과하다. 이것을 위해 지난 세월 도움 주신 많은 분의 얼굴이 주마등처럼 떠오르고 떠올랐다. 그분들의 격려와 아낌없는 관심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세상은 혼자가 결코 아니다. 눈물이 났다.
검사가 1주일 이내 즉시항고를 하지 않아야 할 텐데 약간의 우려가 있었지만 10월 21일 확실하게 조선정판사 ‘위조지폐’ 사건의 재심이 개시될 것이라는 결정문을 받았다.
Q. 2023년 7월 4일 재심 신청을 하고 2년 3개월 만에 결정이 났다. 법원이 재심 결정 사유로 주요하게 판단한 것은 무엇인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으나 재심 개시가 결정된 것은 불법 구금 일수 때문이다. 공동피고인 9명을 1946년 5월 초부터 7월 9일까지 검찰에 송치하고 2개월에 걸쳐 조사했는데, 피고인 이관술은 7월 6일 검거해 8월 12일까지 38일간 불법 구금돼 있었다.
당시 유치 기간은 10일이었다. 검찰은 의용형법에 의해 40일을 유치 기간으로 본다고 했지만. 공동피고인들의 유치 기간이 60일 이상이어서 40일을 초과하므로 피고인 이관술에 대해서도 재심사유가 성립한다고 본 것이다.
Q. 2012년 어머니 이경환 씨가 한국전쟁 직후 이관술이 불법 총살당했다며 국가를 상대로 배상청구소송을 냈다. 대법원은 2015년 3월 27일 전쟁 발발을 이유로 수감 중인 사람을 총살한 것은 불법 부당하다고 확정판결했다. 대법 판결 이후 이번 재심 신청까지 정판사사건 진실규명을 위해 어떤 노력이 있었나?
2019년 4월 범서읍사무소에서 학암이관술기념사업회를 발족하고 5월 울산 김종훈 국회의원 주관으로 이관술 국회 세미나를 개최했다. 2020년 4월 국가보훈부에 서훈 신청서를 제출했지만 해방 후의 행적을 이유로 서훈받지 못했다. 내용증명을 보내 설명을 요청했지만 보훈부는 묵묵부답이었다.
공중파 방송에서 이관술의 항일운동 행적이 전파를 타면서 전국으로 알려지게 됐다. 울산 MBC, 2021년 EBS 3.1절 특집, MBC 다큐프라임 8.15 특집 <불굴의 항일 투사>, 새날 출연 등으로 알려지자 이재유기념사업회, 항일 연합단체, 민족문제연구소, 몽양 여운형 아카데미 강의 등으로 울산에서 서울로 넓혀갔다.
2022년 제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 진실규명을 신청했다. 확실할 것이라는 독립운동 부분과 정판사사건으로 나눠서 제출했다. 몇 차례 진화위 위원과 면담도 요청했다. 조사1국과 2국에서 검토했는데 2025년 5월 조사 중지 결정을 통보받았다. 진화위를 상대로 조사 중지 결정에 대한 행정소송을 제기하고, 진화위 조사위원과 면담했지만 오만한 답변만 들었다. 독립운동 건에서는 조사개시 결정이 떨어졌고 2023년 조사를 마친 상태인데 시간이 부족해 조사를 중지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정판사 건은 아예 올리지도 못한 상태였다. 그나마 국회 프락치 사건은 조사개시가 결정됐다는 보도를 읽었다.
Q. 제3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꾸려지면 2기 때 신청했던 진실규명 조사가 제대로 이루어질 것으로 보는가?
낙관적으로 본다. 제2기 조사관들의 태도는 매우 불성실했지만 재심 개시가 결정돼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에 있으니 그 영향을 받는다면 진화위에서도 뭔가가 달라지지 않을까 기대가 된다.
Q. 법원 재심 과정에서는 어떤 점들이 쟁점이 될 것으로 예상하나?
재판 기록이 없어 언론에 보도된 내용과 박사학위논문으로 진실을 복구하는 재판을 해야 하는 문제가 있고, 수사 과정과 재판 관계자들의 입장을 따지지 않을까 본다.
미군정기와 현재 법률의 차이점 즉 판례가 부족한 점, 미군정기의 판결이 재심으로 뒤집힌 사건이 거의 없다는 점 등이 쟁점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Q. 지난해 첫 심리 때 주심 판사가 “야만의 시대에 벌어진 비극적 사건”이라고 소견을 밝혔다. 역사 바로 세우기와 사법 정의라는 관점에서 이번 재심에서 어떤 판결이 내려지길 기대하나?
적폐 청산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과거로부터 자유로운 오늘은 없기 때문이다. 공동피고인들을 고문해 범죄를 자백하게 한 것은 법적 효력이 없다고 했다. 정치적 입장에서 사건을 다루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재심을 통해 모두 무죄판결로 뒤집어야 한다. 이관술을 포함한 10명의 피고인을 위해 9명의 변호사가 변론했다. 2명을 제외한 7명의 변호사가 정판사 ‘위조지폐’ 사건의 변론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역사에서 삭제됐다. 그 변호사들의 사회적 죽음에 대해서도 규명될 것으로 기대한다. 지금은 문명의 시대이고 야만의 시대는 이미 갔으니까.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10월 30일자로 공판기일통지서를 보내왔다. 재심 공판은 11월 11일 오전 10시 40분 서울중앙지방법원 서관 502호 법정에서 열린다. 이번 재심을 계기로 역사의 관점이 변화하길 기대한다.
Q. 재심을 통해 외할아버지의 명예 회복 이상의 변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먼저 다양한 콘텐츠를 개발해 정의롭게 역사를 바로잡을 수 있는 대중문화로 승화하고 알리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정권이 원하는 방향으로 사실을 조작하고, 허구화한 대중문화를 재생산하면서 이관술은 오랫동안 부정적 이미지가 과장되고 증폭됐다. 참으로 힘든 일이긴 하지만 올바르게 판단할 수 있는 가치관을 심어주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할지 고민해 본다.
이종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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