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 '자연'은 최고의 비즈니스 스쿨

2025-09-07

이른바 '찍찍이'라 불리는 '벨크로 테이프'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자연에서 영감을 얻었다. '도꼬마리' 열매에 난 가시는 끝이 구부러진 갈고리 모양으로 되어 있어서 동물의 털, 사람옷 등 에 잘 달라붙는다. 이를 응용해 운동화, 의류 등에 적용하면서 벨크로 테이프가 사용되기 시작했다. 자연이 선사한 히트상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뿐만이 아니다. 일본 고속열차 '신칸센'은 물총새의 부리처럼 길고 뾰족하게 디자인해 소음 및 공기저항을 획기적으로 줄였다. 아프리카 짐바브웨의 '이스트 게이트 센터' 건물의 경우에는 '흰개미'들이 만드는 집의 원리를 응용해 한여름에 냉방을 하지 않아도 시원함을 유지하도록 했다.

'무통 주삿바늘'의 아이디어는 '모기'의 가르침이라 할 수 있다. 모기가 피부를 찌를 때 통증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사실에 착안해 무통 주삿바늘이 만들어졌다. 거미줄은 또 어떤가. 거미줄 원리를 이용한 강력한 섬유는 같은 굵기의 강철 와이어보다 강한데, 이 인공 거미줄은 고성능 방탄복, 의료용 봉합사 등 다양한 산업에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다.

◇ 자연은 인류의 스승

자연은 삶의 '힐링'뿐만 아니라, 기업 경영활동에 있어서 혁신적인 제품 및 신기술에 대한 '해답'을 가지고 있다. 자연의 생물들은 일절 자원을 낭비하지 않고 재생하는 순환시스템을 작동하고 있기에, 21세기에 대두되는 '지속가능성'에 대한 진정한 스승이 바로 '자연'이다.

자연은 이미 38억년의 누적된 역사 속에서 축적된 노하우와 경험, 이미 검증된 생태계를 조성하고 있다. 반면 인류는 고작 '만년의 역사'에 불과하다. 자연을 벤치마킹할 것이 너무나도 많다. 광합성만 보더라도 자연은 그렇게 쉽게 해내는 데 반해, 최첨단 기술에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붓고 있는 인류는 아직도 '광합성'을 제대로 구현해 내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것. 자연은 우리가 그토록 갈구하는 혁신적인 기술 및 작동 원리 등에 대한 해답을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절대 알려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즉 이를 위해서 우리는 '수동적 보기'가 아닌 '적극적 관찰'이 꼭 필요하다. 즉 '누구나 볼 수 있지만, 아무나 볼 수 없는 눈'을 지녀야 한다는 뜻이다. 위에서 언급한 밸크로의 경우, '도매 스타랄'이라는 사람이 도꼬마리의 세세한 특성을 관찰해, 발견된 것이지, 그냥 무심코 지나쳤다면 결코 발견되지 못했을 것이다. 자연은 이처럼 탐구하는 이에게만 상상치 못한 선물을 선사해 준다. 그렇다. 새로운 혁신은 자연에 답이 있다.

◇ 자연에는 직선이 없다

우리 잠시 자연으로 들어가 도랑물이 흐르는 도랑길, 논두렁길, 산길을 떠올려보자. 길들의 모양이 어떠한가. 꾸불꾸불 곡선의 형태를 취하고 있지 않은가. 하늘과 땅이 만나는 지평선, 하늘과 바다가 만나는 수평선, 하늘과 산이 만나는 등고선들도 가만히 보면 모두 곡선이다.

신이 지상에 머물 유일한 거처. 미완성인 상태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건축물인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성가족교회'(사그라다 파밀리아)를 일컫는 말이다. 이 유명한 건축물은 안토니오 가우디의 손에 의해서 탄생했다. 그의 또 다른 대표작인 '카사 밀라' 를 보면 외벽 면이 끊임없이 곡선으로 이어진다. 이처럼 가우디는 '건축이란 자연의 형상을 가짐으로써 혹은 자연과 가까운 재료를 사용함으로써 자연과 일체화한다'라는 철학을 지니고 있었고, “자연에는 직선이 없으며, 직선은 인간의 선이고, 곡선은 신의 선”이라고 가우디는 말했다.

산업디자인계의 거장인 루이지 콜라니는 “자연에는 직선이 없다. 인간은 그저 자연을 관찰만 하면 된다. 그곳에서 우리는 완벽한 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그는 공기역학, 생체공학 등이 접목된 미래 스포츠카를 선보이기도 했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화가 프리덴슈라이히 훈데르트바서 또한 “이 우주에 직선(直線)은 없다”며 직선에 잠재된 '인위성'을 배격했다.

그렇다면 이를 기업경영에 접목해 보자 경영 현장에서의 '직선 경영'이라 함은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효율성, 생산성, 스피드가 중요시되는 것이다. 즉 통제와 관리 위주의 리더십에 의해 조직이 운영되는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실패는 용납될 수 없으며, 조직은 중앙집중형으로서, 수직적이고, 조직문화는 경직된 분위기의 형태를 취하게 된다. 일하는 구성원 또한 객체화되면서 마치 기계 부품처럼 다루어지기 쉽다. 내적 동기부여보다는 외적 동기부여가 우위에 있기 마련이다. 직선은 강해 보이나, 위기에는 매우 취약한 특성을 지녀 자칫 부러지기가 쉽다.

반면에 '곡선 경영'은 어떤가. 효율성(Efficiency)보다는 효과성(Effectiveness)이다. '속도' 역시 중요하지만, 더더욱 중요한 것은 '방향'이다. 특히 불확실성의 시대에는 곡선형의 유연한 조직이 살아남는다. 이들은 분권화되어 있고, 인간 본연의 자율성이 중요시되며, 창의가 존중된다. 조직문화 역시 딱딱하기보다는 부드럽다. 지금 대변혁기인 인공지능혁명 시대에 창의와 혁신은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때이기에 우리가 자연의 곡선 이치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그런데 우리 문화의 핵심 코드가 곡선이라는 사실을 아는가. 5000년의 찬란한 문화유산을 지니고 있는 우리나라는 인위적인 것을 가급적 배제하고 자연과의 공존을 추구해 왔다. 정원이나 건축에 있어서 우리는 깔끔하고 정돈된 인공적 아름다움을 추구하기보다는 자연에 순응하는 포근한 미를 지향한다. 달항아리, 막사발도 마찬가지이다. 막사발은 '자연이 조선의 도공 손을 빌려 만든 것' 이라는 극찬을 받기도 한다. 한옥에 있어서 '자연의 경치를 빌려온다'는 의미의 '차경(借景)'도 맥을 같이한다. 어찌 보면 우리는 곡선의 후예라고 해야 할는지도 모른다

숲을 잠시 떠올려 보자. 자작나무, 참나무, 전나무 등 숲은 단일한 종이 아니라, 수많은 서로 다른 나무들이 공존하며 이루어져 있지 않은가. 같은 나무만 심은 단일 숲은 병충해에 훨씬 약하고, 기후 변화에 쉽게 무너진다. 하지만 다양한 나무가 함께 자라는 숲은 병이 옮지 않고, 전체 생태계를 유지하게 된다. 왜냐하면 다름이 서로를 보완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다양성은 숲의 면역력이고, 생명의 전략인 셈이다. 이는 기업경영에서도 마찬가지로 다양성과 협력은 파괴적 혁신과 기업성장 및 건전한 조직문화형성에 필수적이다.

◇자연지능경영

자연이 수십억 년에 걸쳐 진화하며 만들어낸 경이로운 구조와 원리의 지혜를 모방하여 혁신을 끌어내는 전략은 21세기 '골드러시(Gold Rush)'라 감히 이야기할 수 있다. 이를 '생체모방' '생체 모사' 영어로는 '바이오 미미크리'(Bio mimicry), 바이오미메틱스(Biomimetics) 등으로 불리는데, 필자는 이를 파괴적 혁신의 신(新)경영 패러다임으로서 자연에 초점을 맞추어 '자연 지능 경영'(Nature Intelligence Management) 으로 새롭게 명명해 널리 전파하고 있다. 자연의 상상할 수 없는 숨겨진 기술, 비교할 수 없는 초 기능 속에서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파괴적 혁신전략을 구사하고, 조직 운용 및 조직문화에서도 유연함, 다양성, 협력 등을 바탕으로 지속적인 생태계를 영위하는 노하우 및 지혜를 겸손하게 터득하고 배워야 할 때이다. 자연이야말로 최고의 비즈니스 스쿨(Business School) 인 셈이다. 이제 자연 지능 경영으로 거침없는 파괴적 혁신의 아이콘으로 우뚝 서기 바란다.

홍대순 광운대 경영대학원 교수 hong.daesoon@kw.ac.kr

〈필자〉 홍대순교수는 경영전략가이자 경영사상가이다. 세계적인 경영 컨설팅 회사 아서디리틀 코리아 대표를 비롯해 이화여대 교수 및 광운대 경영대학원장을 지냈다. 대통령실, 기재부, 산업부, 국토부, 과기부 자문위원을 맡은바 있다. 유네스코 자문위원이자 공학한림원 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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