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의 ESS(에너지저장장치) 구축 사업에서 삼성SDI가 전체 물량의 약 80%를 싹쓸이했다. 경쟁사인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을 압도적으로 제친 셈이다. 초기 입찰 성공이 향후 입찰에서도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판단 아래 오는 10월 예정된 2차전을 앞두고 3사 모두 전략 재편에 총력을 기울일 전망이다.
8일 업계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와 전력거래소가 발주한 '2025년 제1차 ESS 중앙계약시장' 사업에서 총 563메가와트(MW) 규모의 ESS를 구축할 8개 사업자 선정을 최종 마무리했다. 삼성SDI가 초기 입찰에서 6곳의 수주를 따냈고, LG에너지솔루션이 2곳의 수주를 따냈다.
구체적으로 이번 사업은 전남(523MW) 7개 지역과 제주(40MW) 1개 지역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전남 지역 6곳(진도, 고흥, 무안, 영광, 안좌, 홍농)은 삼성SDI가, 제주 표선과 전남 광양 두 곳은 LG에너지솔루션이 공급한다.
기존 540MWh 규모의 ESS 도입 계획이었으나, 선정된 사업자별로 공급 용량을 다소 확대할 수 있도록 허용하면서 최종 규모는 563MWh로 확정됐다. 이에 따라 총 투자비도 산업부가 고지한 1조5000억원보다 다소 증가할 전망이다.
사업자들은 각 지역 변전소 인근에 2026년 말까지 ESS 설비를 구축하고, 15년간 전력거래소의 급전 지시에 따라 충·방전을 운용하게 된다.
업계는 이번 결과에 다소 놀라는 분위기다. 당초 540MW 규모의 물량을 단일 사업자가 모두 소화하기 어려워 복수의 공급사가 선정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으나, 삼성SDI가 약 80%에 달하는 물량을 독식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는 평가다.
이번 입찰의 핵심 평가 기준은 가격 경쟁력(60점)이었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은 LFP 파우치형 배터리를, 삼성SDI는 NCA 각형 배터리를 제안했다. NCA가 LFP 대비 10~20%가량 가격 경쟁력에서 불리하지만, 삼성SDI는 제품 단가 조정 등을 통해 마진을 일부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LFP는 화학적으로 열에 강해 발화 위험이 상대적으로 낮은 반면, NCA는 LFP에 비해 다소 취약한 편이다. 국내 ESS 시장이 2018년과 2019년 연이은 화재 사고로 급격히 위축됐던 만큼, 이 안전성 측면도 중요한 평가 요소였다. 이에 업계는 당초 LFP를 제안한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이 상대적으로 더 많은 공급 물량을 확보할 것으로 예상했었다.
그러나 삼성SDI가 대다수 물량을 차지한 것을 두고 업계에서는 전력거래소가 '국내 생산'을 중요하게 평가한다는 신호를 보낸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국내 산업생태계 기여도는 총 100점 만점 중 비가격 평가 항목(40점)의 24%에 해당하며, 이는 전체 점수 기준 약 9.6점에 해당한다. 가격 평가에서 점수 차이가 크지 않은 상황에서 비가격 평가 부문 중 가장 높은 배점이라는 점에서 그 영향력이 매우 크다는 평가다.
실제 삼성SDI만이 유일하게 울산 공장에서 대부분의 ESS용 배터리를 생산하며, 소재와 부품도 주로 국내 업체에서 조달 중이다.
반면 LG에너지솔루션은 국내와 중국 난징 공장에서 생산 중이나, 난징 공장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더 높다. SK온은 충남 서산 공장에서 ESS용 LFP 배터리 양산을 검증 중이며, 일부 물량은 중국 공장에서 생산하려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서산 공장도 아직 양산 준비 중인 점이 이번 입찰에 불리하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하반기 중 시행될 2차 입찰 공고는 10월 중 진행될 것으로 보고 있다. 3사 모두 1차 입찰 결과를 반영해 전략을 재조정할 전망이며, 선정 기준이 크게 바뀌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국내 생산 비율을 높이는 데 집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2028년까지 총 2.22GW 규모의 ESS 구축이 목표인 만큼, 후속 입찰에서는 앞서 수주에 성공한 기업들의 실적과 성과가 중요한 평가 요소로 반영될 수밖에 없다. 이에 초기 입찰에서 성공한 기업이 후속 사업 선정에서도 우위를 점할 가능성이 크다.
업계 한 관계자는 "2028년까지 40조원을 투입하는 대형 프로젝트인 만큼, 초기에 선정되는 기업이 향후 입찰에서도 선점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며 "정부 주도 ESS 사업 참여로 향후 글로벌 고객사 확보에도 유리한 이력을 쌓을 수 있는 결정적 기회"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