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달러 환율이 올 하반기 약세 기조를 이어가다, 연말에는 1330원 수준까지 떨어질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정책 불확실성, 미국 경기 둔화와 고용 부진,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하 가능성 등이 맞물리며 환율 하락 압력이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달러가 더 이상 절대적인 안전자산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는 점도 중요한 변수로 지목됐다.
최광혁 LS증권 리서치센터장은 26일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그동안 달러 가치를 설명할 때는 ‘달러 스마일’ 이론을 많이 사용했지만, 최근에는 ‘달러 프로운’ 개념이 주목받고 있다”며 “미국발(發) 경제 불안이 발생하면 달러가 오히려 약세로 전환되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달러 프로운이란 경제 불확실성 문제가 해외에서 발생하면 달러가 강세를 보이지만, 미국 내부에서 불거질 경우 달러가 약세로 돌아서는 현상을 말한다. 그는 “3분기 환율은 1370원 안팎에서 등락하다가 연말에는 1330원까지 내려갈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최 센터장은 과거에는 무역수지가 원·달러 환율을 결정 짓는 주요 요소였다면 2023년부터 미국 증시에 투자하는 개인 투자자들이 많아지면서 무역수지와의 동조화 현상이 사라졌다고 덧붙였다.
환율 하락의 직접적인 요인으로 미국 경기 둔화 우려, 연준의 금리 인하 가능성, 트럼프 대통령의 달러 약세 압박 등을 꼽았다. 특히 고용 둔화가 소비 위축으로 이어져 경기 전반에 부담을 줄 것으로 전망했다. 최 센터장은 “미국 국내총생산(GDP)에서 소비가 약 70%를 차지하는데, 월간 신규 고용이 올해 들어 단 한 차례도 15만 명을 넘지 못해 소비 여력이 하락했다”며 “노동 공급은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되찾았지만, 고용이 둔화돼 임금과 취업자 수의 곱으로 산출되는 소비가 더 이상 늘어나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특히 가계 신용은 이미 정점을 찍고 난 뒤 추세선 수준으로 되돌아가고 있어, 코로나19 이후 이어졌던 과잉 소비 국면이 사실상 마무리됐다는 진단이다. 최 센터장은 제조업 지표 역시 부진한 흐름을 보이고 있어 하반기 미국 경제의 향방은 민간 부문의 비거주 투자가 얼마나 회복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분석했다.
이 같은 현상은 연준의 태도 변화로 이어지고 있다. 최 센터장은 “연준은 올해 2분기 실질 성장률이 잠재 성장률을 밑돌 것으로 보고 있으며, 실업률이 자연 실업률을 웃도는 시점도 3분기부터 시작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며 “완전고용 목표를 고려하면 금리 인하 압력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경기 둔화가 본격화되면 연준은 불가피하게 금리를 내리게 되고, 그만큼 달러도 약세 흐름을 이어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의 통상 정책도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최근 연준 이사로 합류한 스티븐 미란의 영향력이 확대될 수 있다는 점도 주목된다. 최 센터장은 “현 행정부는 관세를 통해 무역적자를 직접적으로 줄이려 하고 있지만, 효과가 제한적일 경우 교역 국가들에게 약달러를 직접적으로 강요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과거 닉슨 대통령 당시 1971년 보편관세(10%)와 플라자 합의를 거론하며, 트럼프 대통령이 1기 집권 당시 평균 실질실효환율인 약 97.09포인트 수준으로 환율을 되돌리라고 압박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올 6월 기준 달러화의 실질실효환율은 108.71포인트로 1기 수준으로 낮추려면 약 10.69%를 절하해야 한다. 실질실효환율은 한 나라의 화폐가 상대국 화폐보다 실질적으로 어느 정도의 구매력을 가졌는지를 나타내는 환율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