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 되는 ‘열하일기’

2025-12-31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는 ‘발칙한’ 책이다. 지적인 인문 군주 정조가 “<열하일기>가 유행하더니 문체가 이따위로 (경박하게) 변했다”고 연암을 질책하며 반성문을 쓰게 할 정도였다. 조선 사대부들을 ‘우물 안 개구리’로 비꼬고, 해학·풍자 가득한 소설·수필 같은 ‘잡스러운(?)’ 글들로 ‘문체반정’에 도전했으니 미운털이 박힐 만도 하다. 한마디로 ‘문체와 사상의 혁명’을 일으킨 당대의 문제작이었다.

연암이 직접 쓴 <열하일기> 초고본이 31일 국가지정문화유산 보물로 지정 예고됐다. <열하일기>는 연암이 청나라 건륭제의 만수절(칠순 잔치) 사신으로 가는 8촌형 박명원을 따라 북경과 열하 일대 3000리 길을 여행하고 정리한 ‘연행록’이다. 기행문이나 소설·시·평론·수필 등 여러 형식에 정치·경제·학문·예술·과학기술까지 광범위한 내용을 담았다. 국가유산청은 “<열하일기>가 조선 후기 대표 실학서로 조선 사회에 끼친 영향력으로 볼 때 보물로 지정할 가치가 크다”고 했다.

<열하일기>가 당대와 후세에 미친 영향은 컸다. 시대를 일깨운 책이었다. 연암은 ‘북학’(청나라 학문)이라고 했지만, 핵심은 당시 동아시아가 처음 조우한 ‘서학’(서양 학문)의 세계였다. 연암은 청에서 본 문물을 거론하며 조선도 성리학 같은 관념적 학문을 접고 백성 살림에 보탬 되는 학문을 해야 한다고 했다. 당대 지식인들에게 반향이 얼마나 컸냐면 문체반정의 엄혹한 감시를 피해 필사본 형태로 퍼져나간 이본만 58종에 이르렀다. 연암조차 필화를 모면하려 양반들의 위선을 꼬집은 단편소설 ‘호질’의 경우 ‘여관 벽에 있던 걸 베껴온 것’이라고 둘러댔다.

연암은 명문장 모음집 <소단적치> 서문에서 “글자는 비유컨대 병사고, 뜻은 장수다. 비유라는 것은 유격의 기병”이라고 했다. 연암이 조선을 ‘우물 안 개구리’에 빗댄 뜻은 분명하다. 그때는 물론 앞으로도 필요한 건 ‘세상을 흔들고 변화를 일깨우는 책’이다. 우물 밖 개구리를 자청한 연암과 같은 정신이 지식 사회의 책무다. 요즘처럼 연구 ‘성과 증명’에 내몰려 찍어내듯 하는 논문·책들이 아니다. 병오년 새해 아침, ‘도전적이고 발칙한 책’의 보물 지정 예고를 보며 시대를 해체하고 신생의 싹을 품은 오늘날의 ‘열하일기’들이 많아졌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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