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 폐기 후 한국 자동차 산업의 활로

2025-08-20

한국 정부는 1980년대 중반 이후 빈번히 발생한 미국과의 통상 마찰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2007년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타결했고, 우여곡절 끝에 2012년부터 효력이 시작됐다. 미국산 수입에 따른 국내 농축산업의 피해를 감수하더라도 더 경제적 파급 효과가 큰 제조업 성장 기반을 강화하기 위한 고육책이었다. 2017년 트럼프 1기 정부가 개정을 요구해 2018년에 재협상을 타결했다.

수출 단가 낮춰 관세 부담 최소화

미국 현지 생산 확대로 수출 대체

금융·세제 지원 확대 적극 검토를

그 결과 대미 완성차와 부품 수출은 지속해서 증가해 국익에 크게 기여했다. 지난해엔 완성차 143만대(347억 달러)와 부품 82억 달러어치를 수출했다. 자동차 관련 수출 규모로는 사상 최고치였다. 그런데 한국 자동차산업의 앞길에 먹구름이 끼었다. 한·미 FTA가 유효하던 시기엔 미국 내수 시장에서 일본과 유럽 자동차업체에 대해 가격 경쟁력에서 우위를 유지할 수 있었는데 이달 초 한·미 관세 협상에 따라 한국산에 대한 무관세 조치가 사라졌다. 트럼프 정부가 한·미 FTA를 폐기했다고 낙담만 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 미국의 고관세로 인해 세계 자동차산업이 격변기로 진입하면서 경쟁의 판이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상반기 대미 완성차 수출은 고관세 영향 때문에 금액 기준으로 16.5%, 물량으로는 10.7% 각각 감소했다. 다행히 부품 수출은 총력을 다한 덕분에 1.4% 감소하는 데 그쳤다.

고관세의 부정적인 영향은 하반기부터 시차를 두며 장기적으로 나타날 예정이다. 따라서 국내 자동차 기업은 다음 몇 가지 대응 전략을 고려해 볼 수 있겠다. 단기적으로는 수익성 악화를 감수하면서 대미 수출단가를 인하해 관세 부담을 줄이고, 가격 인상을 최소화해 판매와 공급망 안정화를 모색하는 방안이다. 이는 국내 자동차업체의 미국 국내 공급망 재편에 필요한 시간과 비용 부담도 줄여 줄 수 있다.

중기적으로는 미국 국내 생산 확대를 통한 수출 대체다. 현대차가 미국 생산 물량을 50만 대 늘리더라도 지난해 수출 100만대를 대체하지는 못한다. 한국GM은 42만대 수출을 현지 생산을 통해 대체하기도 어렵다. 현지 생산 확대와 수출 감소는 국내 생산 감소로 이어져 자동차산업의 고용과 지역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정부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트럼프 정부가 자국에 직접투자를 유인하기 위해 고관세 정책을 펼치고 있어서 현지 생산 증대는 피할 수 없다.

장기적으로는 원가 절감을 통한 관세 부담 완화가 필요하다. 최근 선진국 자동차 기업들은 중국과의 원가 경쟁을 위해 디지털 기술과 인공지능(AI)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자동차 기업들은 AI를 가치사슬의 모든 단계에 접목해 시간·비용·인력·공간 등을 절감하거나 최적화하고 있다.

수출선 다변화를 통한 수출 증대는 꼭 필요하지만 금방 되진 않는다. 무엇보다 미국 시장 진입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국 자동차 기업들과 치열한 경쟁을 각오해야 한다. 원화 약세를 통한 수출 가격 경쟁력 제고는 기대하기 어렵다. 미국도 주요 교역 상대국의 환율을 예의주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라운드’의 파도를 넘어 중국과의 경쟁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자동차산업에 대한 금융·세제 지원을 대폭 확대할 필요가 있다. 국내 자동차산업의 2024년 매출액은 400조원을 상회한 것으로 추산된다. 그런데 정부의 연구개발(R&D) 예산 지원은 1조원에도 못 미친다. 시급성에 비춰 볼 때 정부가 준비하는 AI 예산을 자동차산업에 우선 배정하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 상황이 엄중한 만큼 기업에 대한 지원은 대미 수출 및 현지 생산 여부, 전문 인력 보유, R&D 투자 이력 등을 고려한 핀셋 지원이어야 한다.

정부는 지난 4월 자동차산업 지원 정책을 발표하면서 국내 부품기업 수를 2만개로 평가했다. 하지만 국내 1차 협력 부품기업은 2024년 기준 691개이며, 고용보험 피보험자 1인 이상인 부품 사업체는 8644개다. 국내 부품 산업 매출의 90%를 차지하는 외부감사 대상 기업 수는 1500여 개다. 이들을 제외한 1만 개가 넘는 부품기업의 실체가 무엇인지 불분명하다. 산업 관련 통계가 바로 서고 정부 지원이 적재적소에 이뤄져야 자동차산업이 위기에서 탈출할 수 있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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