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일요일, 공휴일에 심정지 위험 더 높아
'깨진 약속 이론, '휴일 심장 증후군' 등 영향
전문가들 "휴일에도 규칙적 생활리듬 지켜야"
갑작스러운 심정지는 예고 없이 찾아온다. 단 4분 만에 뇌 손상을 일으키고, 10분이면 생존 가능성을 빼앗아 간다. 국내에서는 심정지 환자가 매년 3만명 이상 발생한다. 생존율은 7∼8% 수준으로 매우 낮은 편이다. 그런데 심정지 환자가 월요일과 일요일에 유독 많이 발생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주말의 늦잠과 폭음으로 인해 생체 리듬이 흐트러지고, 심장에 큰 부담이 생긴다는 것이다.
부산대·서울대 연구팀이 국제학술지 ‘영국 의학 저널 오픈’(BMJ Open) 최신호에 발표한 연구 논문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심장질환이 원인인 ‘병원 밖 심정지’(OHCA)는 월요일과 일요일, 그리고 명절·공휴일에 더 많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2015∼2019년 질병관리청이 전국에서 집계한 심정지 8만9164건을 분석했다.
요일과 휴일 효과만 추출한 결과, 월요일과 일요일의 심정지 발생 위험은 기준일인 수요일에 견줘 각각 1.9%, 1.5% 높았다. 화요일, 목요일, 금요일, 토요일은 수요일과 큰 차이가 없었다.
휴일의 경우 비 휴일보다 심정지 발생 위험이 최소 6% 이상 높아지는 연관성을 보였다.
휴일별 발생 위험은 4대 공휴일(새해 첫날, 설, 추석, 크리스마스)을 뺀 기타 공휴일 평균이 9.9%를 기록했다. 4대 공휴일의 심정지 발생 위험은 크리스마스(9.6%), 설날(8.2%), 새해 첫날·추석(각 6%) 순으로 높았다.
연구팀은 월요일에 심정지 발생 위험이 높아지는 현상을 ‘깨진 약속 이론’(Broken Promise Theory)으로 설명했다.
깨진 약속 이론은 ‘새로운 시작’에 대한 희망을 가졌던 사람들이 막상 월요일이나 새해가 시작됐을 때 기대했던 변화가 나타나지 않아 실망감과 정신적 스트레스가 커지면서 심장 질환에 더 취약해질 수 있다는 가설이다.
월요일의 경우 이에 더해 주말 동안 늦잠을 자거나 생활 리듬이 흐트러진 상태에서 갑자기 이른 기상과 업무 부담이 겹치면 교감신경이 활성화돼 심장박동과 혈압이 올라가면서 심혈관 건강이 더욱 취약해질 수 있다.

명절과 공휴일의 심정지 위험이 높아지는 건 격렬한 신체활동의 영향이거나 ‘휴일 심장 증후군’(Holiday Heart Syndrome)일 가능성이 높다는 게 연구팀의 해석이다.
휴일 심장 증후군은 짧은 연휴 동안의 폭음이 부정맥을 일으킬 수 있음을 일컫는 용어다. 1978년 미국 뉴저지 의대 연구팀이 휴일에 폭음한 24명을 대상으로 부정맥 병력 등을 조사해 미국심장학회지(American Heart Journal)에 보고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이 연구에서는 심장병이 없는 건강한 사람이라도 휴일에 폭음하는 경우 갑작스럽게 부정맥이 발생해 주말이나 공휴일 직후 병원에 입원하는 사례가 증가하는 경향이 관찰됐다.
마찬가지로 국내에서도 연휴와 명절 연휴 기간 장거리 이동과 음식 준비, 과식·폭음, 수면 부족, 가족 모임의 갈등 등이 복합적으로 심장 건강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전문가들은 심정지가 예고 없이 찾아오는 만큼 주말이나 명절 연휴에도 규칙적인 생활 리듬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무엇보다 고혈압·당뇨병·고지혈증 등의 심혈관질환 위험요인을 갖고 있다면 휴일이나 명절이라도 갑작스러운 폭음, 과식 등을 피하는 게 바람직하다.
한편 급성심장정지 환자 10명 중 1명꼴만 생존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급성심장정지의 77.8%는 심근경색, 부정맥이나 뇌졸중 등에 의해 발생했다.
질병관리청은 지난 6월 이러한 내용을 담은 ‘2024년 상반기 급성심장정지 환자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조사는 환자 1만6782건 중 1만6578건(98.8%)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발생 장소별로는 도로·고속도로, 상업시설 등 공공장소(17.8%)보다 가정, 요양기관 등 비공공 장소(64.0%)에서 주로 발생했다. 특히 비공공 장소 중 가정에서 발생이 전체의 45.1%를 차지했다. 이어 구급차 안(8.4%), 요양기관(6.2%) 순이었다.
김기환 기자 kkh@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