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군가 나에게 ‘가장 피하고 싶은 질환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치매’라고 답할 것이다. 14년. 그 긴 시간을 치매와 싸우며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인간의 최소한의 존엄성마저 잃어가는 아버님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았기 때문이다. 문득문득 인지기능이 돌아왔을 때 아버님이 느꼈을 심리적 고통과 공포는 세상 어떤 말로도 수식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뿐 아니다. 간병을 책임져야 하는 내 가족의 자유는 극도로 제한되었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경제적 부담의 무게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과 같았다. 치매를 앓는 아내를 간병하던 남편이 아내와 동반 자살을 택하는 것은 간병 과정에서 겪어야 하는 고통의 무게가 삶을 유지할 의미조차 잃어버리게 만들기 때문일 것이다.
3300억 세포 매일 교체되지만
뇌신경세포는 한 평생 그대로
뇌세포 손상 막아야 치매 예방
미세 플라스틱도 치매의 원인
지구촌 치매, 3초에 한 건꼴 발생

치매는 뇌세포가 손상되어 인지기능 감퇴나 인격의 변화가 발생하는 질환이다. 행동이나 운동기능도 손상된다. 전체 환자의 60~70%가 알츠하이머성 치매이며, 파킨슨병이나 혈관질환 또한 치매의 주요 원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근본 원인은 여전히 명확하지 않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지난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매년 1000만건의 신규 치매 사례가 보고되고 있다. 약 3초에 한 건꼴이다. 그렇다면, 치매를 피할 방법은 무엇일까. 2021년, 이스라엘 와이즈만연구소의 론 센더와 론 마일로 박사는 성인의 몸을 구성하는 약 30조개의 세포 중 약 3300억개의 세포가 매일 교체된다는 연구 결과를 네이처 메디신에 발표했다. 혈액세포의 86%, 위장 세포의 12%가 매일 교체된다. 그러나, 뇌 신경세포와 수정체 세포는 인간의 생애 동안 교체되지 않는다. 재생 불가. 치매를 예방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 뇌세포 손상을 차단하는 것이라는 의미다. 세포 손상 과정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가 필요한 이유다.
세포는 크게 두 가지 과정에 의해 손상된다. 첫째는, 유해물질에 의한 직접적인 손상이다. 이 과정은 유해물질 고유의 독성 크기와 각 세포가 노출된 유해물질의 양에 의해 결정된다. 대형건물 화재 시 유독가스 흡입으로 인한 사망이 그 예이다. 둘째는, 세포 생존에 필수적인 성분의 공급 부족에 의한 간접적인 손상이다. 패혈증이나 일산화탄소 중독 시 발생하는 저산소증에 의한 사망이 대표적이다. 성인의 뇌 무게는 체중의 약 2%에 불과하다. 그러나 뇌세포가 소비하는 산소와 에너지는 신체 전체가 소비하는 양의 약 20%를 차지한다. 혈액을 통한 산소 공급이 원활하지 않은 경우, 가장 먼저 손상되는 조직이 뇌이다.
최근 보고된 자료에 따르면, 2016년과 2024년에 사망한 사람들의 뇌·간·신장 조직을 분석한 결과, 미세 플라스틱 입자가 간과 신장보다 뇌에서 최대 30배까지 검출되었다. 건강인보다 치매 환자의 뇌에서 최대 다섯배까지 더 많이 축적되었으며, 주로 뇌혈관 벽과 면역세포에서 관찰되었다. 미세플라스틱의 체내 동태를 고려할 때, 미세플라스틱이 뇌세포를 직접 손상했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 그러나, 뇌혈관 벽에 쌓인 미세플라스틱이 혈류의 흐름을 막아 뇌세포가 손상되었을 가능성은 설득력을 갖는다. 미세먼지 또한 잠재적인 치매 유도물질로 제시되고 있다. 미세먼지에 결합한 수용성 성분에 의한 직접적인 손상과 난분해성 입자의 폐포(허파꽈리) 내 축적에 따른 폐 기능 감소가 그 원인으로 추정되고 있다. 폐포벽이 두꺼워지면 산소와 이산화탄소간의 가스교환 효율이 떨어져 혈류 내 산소 포화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2024년 중국의 한 연구팀은 충치 방지제·공기 청정제·살균제·방향제와 같은 가정용 생활용품을 빈번하게 사용한 노인일수록 인지 기능이 낮았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였다. 생활화학제품이 치매를 유도하거나 악화시킬 수 있다는 증거를 제시한 것이다.
임상시험 99.6%가 실패하는 치매
독일의 의사이자 신경병리학자인 알로이스 알츠하이머는 1901년 한 여성 환자의 기억상실 증상을 관찰하고, 1906년 그녀가 사망한 후 부검을 진행했다. 그녀의 대뇌에서 피질의 위축, 플라크, 신경섬유 엉킴, 동맥경화성 변화가 발견되었다. 그가 1907년 발표한 논문이 계기가 되어 베타 아밀로이드, 타우와 같은 비정상적인 단백질들이 뇌에 축적되면서 뇌 신경세포가 서서히 손상되어 치매가 발생한다는 가설이 세워졌다. 그 후, 전 세계 제약회사들은 이 단백질들을 타깃으로 하는 약물을 개발하기 위해 막대한 자금을 투입했다. 그러나 임상시험의 99.6%가 실패로 돌아갔다. 급기야 20년 이상 확고했던 ‘베타아밀로이드 가설’조차 흔들리기 시작했다. 실패의 근본적인 원인을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치매는 대표적인 노인성 질환이다. 치매로 진단받기까지 뇌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사전에 감지하고 진행을 늦추는 것이 핵심이며, 이를 위해서는 환경 노출과 치매 발생 간의 인과관계를 규명하기 위한 범부처 간, 학제 간 협업이 필요하다. 치매 치료 기술 개발에 필요한 데이터 요소의 과학적인 결정과 양질의 데이터 확보는 의료 AI 전쟁에서의 승리를 이끄는 강력한 무기가 될 것이 틀림없다.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속도로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대한민국에서 노인성 질환 문제 해결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환경을 통한 시민의 노출 저감과 제품에 함유된 성분의 공개를 위한 기업의 적극적인 참여를 끌어낼 정부의 인센티브 개발이 어느 때보다 시급하다. 법과 규제보다 강한 것이 동기 부여에 의한 자발적 참여임을 정부는 기억해야 한다.
박은정 경희대 의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