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여 년 전 영국 런던에 언론인 연수를 갔을 때 숙소 근처의 내셔널 갤러리를 내 집처럼 드나들곤 했다. 무료 도슨트 설명을 들으며 둘러볼 때마다 새로운 것이 보였다. 영국박물관과 테이트모던도 상설전은 연중 무료였고, 복도 곳곳엔 ‘DONATION(기부)’ 모금함이 놓여 있었다. ‘이 전시가 미래에도 지속되도록 도와달라’는 문구가 지금도 새록새록하다. 무료 관람을 유지하기 위해 시민이 기꺼이 참여하는 방식이었다.
어제(11일) 국립중앙박물관이 올해 600만 번째 관람객을 맞았다. 개관 80년 만의 일이고, 지난해 기준 세계 박물관 관람객 수 4위권 규모(해외매체 아트 뉴스페이퍼 집계)다. 2005년 용산 이전 당시 연간 최대 400만 명을 예상했으나 20년 만에 이를 50% 초과했다. 관람 혼잡, 인프라 부족 등이 지적되면서 상설전시 유료화 목소리가 커진다. 지난 9일 한국박물관협회 세미나에서도 찬반이 부딪쳤는데, 한 참석자의 말이 귀에 남는다. “불필요한 관람객은 없다.” 국유 유산에 대한 보편적인 관람 접근권을 강조하는 주장이다. 당연히 유료화 목적이 관람객 숫자를 줄이기 위한 건 아니어야 한다.

그렇다고 무료 상설전 향유가 납세자의 당연한 권리만은 아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1970년 성인 30원을 받기 시작했고, 2005년 용산 이전 직후 일시적 무료 이벤트를 제외하면 2008년까지 소액의 입장료(성인 2000원)를 유지했다. 이명박 정부가 상설전 무료화를 결정한 것은 ‘누구에게나 열린 박물관’이라는 상징성이 컸다. 관람객이 늘면서 전시 방향도 학예사 중심의 연구 성과에서 대중친화적 기획으로 넓어졌다. 특히 ‘뮷즈’(박물관 문화상품) 구매 열풍과 함께 기존의 고루한 박물관 이미지가 ‘젊은 취향의 놀이터’로 바뀐 건 큰 변화다. 아무리 무료 관람이라 해도 박물관의 변신 노력에 대한 ‘팬덤’이 없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다만 세미나에서도 지적됐듯, 인구구조 변화 속에 이 같은 모델이 미래에도 가능할지 미지수다. 보존·연구·전시뿐 아니라 디지털 전환, 국제 교류전, 수장고 확충 등 돈 들어갈 곳은 늘어나는데 지금처럼 국고에서만 충당하면 그 부담은 결국 미래세대의 몫이 된다. 무료 관람의 모범주자 격인 영국에서도 “우리도 루브르처럼 받아야 한다”는 논의가 나오는 이유다.
영국에서 박물관 모금함에 소액 지폐와 동전을 기꺼이 넣었던 건 다음에 올 때도 이런 전시를 만나고 싶어서였다. 세미나 토론자는 “누구를 위한 유료화인가” 따져 물었는데, 그 답이 “박물관 운영”을 위한 것이라 한들 달라질 건 없다. 올림픽 메달 경쟁도 아닌데 ‘600만 돌파’ ‘세계 4위권’에 목맬 이유가 없다. 개관 80주년을 넘어 앞으로 80년, 그 이상 지속되기 위해 미래세대에 우리가 물려줄 박물관이 어떤 반석 위에 서 있나 돌아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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