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 핫플’ 서울 답십리 고미술상가‘뉴 핫플’ 서울 답십리 고미술상가
1970년대 말부터 80년대 초 형성된 답십리 고미술상가는 2-3동, 5동, 6동 등 세 개의 건물로 이뤄져 있다. 걸어서 10분 거리에는 장한평 고미술상가로 불리는 우송빌딩, 송화빌딩이 있다. 모두 대한민국 고미술 상가를 대표하는 곳들로 지하철 5호선 답십리역 개통과 함께 한때 손님들로 꽤나 북적였지만 지금은 평일에 손님 만나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상점 주인들 스스로 “존재조차 잊혀졌다”며 자조하는 이곳에 올 1월부터 주말이면 젊은 젠지 세대가 하나둘 몰려들고 있다. 이곳에 어떤 변화가 생긴 것일까.

현재는 고미술품이라는 용어가 많이 쓰이지만 아직도 답십리에선 ‘골동품’이라는 말이 더 자주 쓰인다. 사전적 정의를 보면 골동품(骨董品)은 오래되고 유사 깊은 서화와 각종 기물로서 희소적·미술적 가치를 지닌 물품이다. 답십리는 이 골동품의 천국이다. 25년 전 답십리 고미술상가2-3동에 둥지를 튼 ‘예명당’의 정영섭 대표에게 이곳에서 가장 오래된 것을 물으니 “가야시대 토기부터 있다”고 했다. 말하자면 우리의 2000년 역사의 조각들을 모두 만날 수 있는 곳이 바로 답십리다. 더욱이 유물을 귀하게 유리 안에 모셔두는 박물관과 달리 이곳에선 오래된 골동들을 직접 손으로 만져볼 수 있다. 박물관 유물보다 생김이나 비례, 문양과 마무리는 조금 뒤져도 같은 연대에 만들어진 것들을 직접 손끝으로 감상할 수 있으니 답십리는 그야말로 ‘살아있는 박물관’이다.
구매 기준은 내 마음, 골동도 ‘필코노미’

문제는 수십 년간 모아온 골동품이 너무 많다 보니 겹겹이 쌓아 놓을 수밖에 없다. 고미술상가 2-3동 문을 열고 들어서면 상점 밖 복도까지 골동품이 차고 넘친다. 오래된 건물의 특성상 복도는 좁고 어두운데 그 통로를 골동품이 빽빽하게 채우고 있으니 답답하다.
골동을 모으는 일은 한때 재벌 회장님과 사모님들의 재테크 수단이었다. 수십 년 경력의 나카마(중간 상인)들을 ‘선생’으로 모시고 골동을 사 모으던 호사스러운 취미가 현대 미술로 옮겨가면서 답십리의 전성시대는 끝났다. 요즘 젊은이들에게 답십리는 무겁고 어려운 곳일 뿐이다. 이 낡은 골동품 천지에서 무엇이 ‘좋은 것’인지 알아낼 재간이 없고, 그렇게 찾아낸 것을 내 공간에 어떻게 들일 지도 모른다.


그런데 올해 1월부터 답십리 고미술상가 2-3동에 젊은 상점 ‘고복희’ ‘호박 포크아트갤러리(이하 호박)’ ‘of(old fashioned inspiration)’이 입점하면서 젊은 친구들의 발길이 잦아지기 시작했다.
“요즘 SNS에서 한국의 젊은이들이 ‘고복희’를 통해 현대인의 일상과 고미술의 조화에 관심을 갖게 됐다는 것을 보고 이번 한국 방문 길에 일부러 찾아왔어요.”(런던 거주 30대 김요한·김혜인 커플)
“이전에도 종종 답십리에 오긴 했는데 젊은 사장님들이 운영하는 상점이 들어오고 훨씬 분위기가 가벼워진 느낌이에요. 전에는 이곳을 찾으면서도 내 선택에 자신이 없고, 집에 가지고 가도 어디다 둬야 할지 몰라서 골동이 무겁게 느껴졌는데 이제 구매도, 스타일링도 훨씬 쉽게 느껴져요.”(김지은·32)

답십리에 새 바람을 몰고 온 젊은 상점 ‘고복희’ ‘호박’ ‘of’의 특징은 첫째, 모던하고 심플한 공간 디스플레이다. 3~10평 남짓한 공간에 수백 종의 골동이 겹겹이 쌓인 기존 상점들과 달리, 이들 새 공간에는 주인장이 엄선한 몇 종류의 골동만 세련되게 배치됐다. 둘째, 모던한 가구나 현대 공예작가들의 작품과 골동이 조화를 이루도록 세팅했다. 마치 우리집 나의 최애 공간을 꾸민 것처럼. 셋째, 이들 젊은 상점의 대표들이 골동을 수집하고 판매하는 개념도 기존 상점의 어르신들과는 다르다. 이들에게 진짜 중요한 것은 ‘필코노미’다. ‘감정(Feel)’과 ‘경제(Economy)’의 합성어인 필코노미는 소비자가 더 나은 정서를 경험하기 위해 지출을 하는 경제 흐름을 말한다. 즉, 이 골동이 얼마나 오래된 것인지, 얼마나 완벽한지, 그래서 나중에 얼마에 되팔 수 있는지는 중요치 않다. 현재의 경험적 만족도가 소비 가치 판단의 기준이다.

‘고복희’의 김성호·김지은 대표 부부는 미드센추리(유럽과 미국의 1940~60년대 생산된) 가구 수집에 더 관심이 많았지만, 지금은 한국 골동과 서양의 미드센추리 가구의 조합을 즐기고 있다. 김성호 대표는 ‘고복희’의 큐레이션 특징을 “기존에 소장하고 있는 물건과 잘 어울릴 뿐 아니라 세련된 현대 디자인 가구들과도 이질감 없이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것들 위주로 구성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서양에선 오래된 가구를 수리해서 쓰는 걸 자연스럽게 생각하는데 한국의 골동은 수리를 하거나 흠집이 나면 가격이 반으로 떨어지는 게 안타깝다”며 “완벽하진 않아도 오리지널리티가 잘 살아 있다면 그것만으로 오래된 아름다움을 즐기기에 충분하다”고 덧붙였다.

‘호박’은 김정열 대표가 2018년부터 서울 가로수길과 제주도에서 운영해온 ‘수박빈티지’와 연관 있다. 미국과 유럽의 빈티지 패션을 파는 곳인데, 다른 곳들과 차별화하기 위해 한국 골동을 조금씩 판매하다가 본격적으로 ‘호박’을 오픈했다. 덕분에 오프닝 행사 때 패셔니스타인 이효리·공효진 등의 연예인과 모델처럼 차려 입은 젊은 여성들이 많이 다녀갔다. 김 대표는 “호박의 컨셉트는 철저히 패션의 관점으로 운영된다”고 소개했다. “골동 쪽에서 흔히 쓰는 말이 있다. ‘나이가 좋다’ ‘귀한 거다’ ‘구하기 어렵다’ 등등. 하지만 호박이 다루는 골동의 가치는 철저히 ‘개인의 취향’에 맞춰져 있다. ‘우리집 USM 선반 위에 올려놓으면 어울리겠다’ ‘너희 집 선반에 루이스 폴센 있지? 나는 조선 목가구 있어’ 이런 식이다. 내 취향이 먼저, 문화예술이나 역사적 가치는 나중에.(웃음)”
서양 빈티지처럼…실컷 쓰는 일상의 청자

성수동을 팝업 성지로 띄운 프로젝트 렌트의 최원석 대표는 “‘한국적 미감’을 제대로 공부하기 위해 ‘of’를 오픈했다”며 “상호명도 맛있는 칵테일은 계속 새롭게 만들어지지만 예전 것은 또 예전 것대로 너무 좋다는 ‘올드 패션드(old fashioned)’ 칵테일 스토리에서 따왔다”고 소개했다. “요즘 디자이너와 기획자들에게 가장 무서운 질문은 ‘한국적인 것이 뭔가’라는 질문인데 상대가 ‘일본 것 같은데’라고 하면 할 말이 없다. 우리 것을 배워갔으니 당연한 건데, 우리가 우리 것의 다양성을 잘 모르니 논리적으로 반격할 수가 없다.” 그가 가장 안타까워 하는 점은 “우리가 기억하는 한국적 미감은 교과서 속 유물이 전부”라는 점이다. “한국의 문화는 엄청나게 큰 스펙트럼을 갖고 있다. 일례로 조선의 미학을 우아하고 담백하다고 배웠지만 현대미술에 버금가는 화려한 디테일을 가진 유물도 많다. ‘이게 조선 선비들의 애장품이라고?’ 놀랄 만큼 우리 문화의 넓은 스펙트럼을 알려면 일상의 골동을 만나는 게 제일 좋겠다고 생각했다.”
최 대표는 또 “감각의 완성은 직접 만져보고 쓸 때 완성된다. 이 시대에 왜 이렇게 만들었을까 하는 질문은 써보지 않으면 답을 알 수가 없다”며 “이제 럭셔리의 싸움은 형태나 소재가 아니라 어떤 세계관으로 만들었는가 하는 본질의 싸움”이라고 덧붙였다. 박물관 청자는 학예사도 장갑 끼고 몇 번 만졌을 뿐, 실제로 차를 마시고 술을 따라본 적 없다. 답십리 고미술상가에 있는 청자는 그 매끈함을 오롯이 느낄 수 있다. 최 대표는 “결국 세상은 좋은 레퍼런스가 진화시킨다. 새롭고 좋은 케이스가 나와야 다음 스텝으로 넘어갈 수 있다”며 “답십리에는 좋은 콘텐트가 많지만 어르신들은 그걸 세련되게 보여줄 방법을 모른다. 답십리 분위기를 젊은 세대도 찾을 수 있게 재편집해 볼 계획”이라고 했다.

남들과 차별화 된 개인의 취향을 추구하는 요즘 젊은 세대에게 K컬처는 자부심이자 새로운 관심 주제다. 이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방식대로 SNS를 활용하고 그 알고리즘을 통해 답십리 고미술상가의 존재를 알고 찾기 시작했다. 같은 관심을 가진 이들끼리 만나니 작은 돌 유물 하나를 두고도 이야기 거리가 샘솟는다. 특히나 이곳 어르신들의 수십 년 공력은 어디서도 들어본 적 없는 새로운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여기에 감각적인 젊은 콘텐트 크리에이터 사장들이 합류해 골동의 세련된 활용법을 제안하고 있다. 답십리 고미술상가를 찾는 손님들이 젊어지고 있는 이유다.
참고로, 이들 젊은 상점들은 토요일에만 문을 연다. 대표들의 주중 본업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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