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학연 협력 '퍼시픽밸리' 만들어 벤처붐 재점화"

2025-11-18

“포항의 산학연정 벤처밸리 모델을 전국으로 확산해 미국 실리콘밸리와 보스턴밸리, 중국의 중관춘·선전·항저우에 필적하는 ‘퍼시픽밸리(Pacific Valley)’를 만들면 저성장과 일자리 난제를 풀 수 있습니다.”

박성진(57) 포스텍 기계공학과 교수는 18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기술 패권 전쟁과 글로벌 공급망 변화 속에서 우리나라는 저성장 고착화와 잠재성장률 저하에 허덕이고 있다”며 “퍼시픽밸리 같은 벤처·스타트업 붐을 일으켜야 미래 성장 동력을 점화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2019년부터 포스코홀딩스에서 5년여 간 산학협력실장(전무)으로 근무하며 벤처 생태계 조성에 나섰고 지난해 초 포스코기술투자 대표로 부임했다가 학교로 복귀했다.

태평양과 혁신 클러스터를 합성한 퍼시픽밸리는 포항에서 벤처 생태계를 만들어 전국으로 확산하자는 뜻에서 박 교수가 만든 말이다. 고(故) 박태준 전 포항제철 회장의 기업가정신을 되살려 포스텍의 기초연구, 포항산업과학연구원(RIST)의 실용화 연구, 포스코의 벤처펀드 조성과 해외 진출 지원 등 산학연이 협업하는 모델을 활성화하자는 것이다. 이를 통해 글로벌 벤처·스타트업을 키울 수 있는 토양을 만들자는 게 그의 지론이다. 2021년 포스텍에 혁신 전진기지(체인지업 그라운드)를 열었던 박 교수는 “벤처·스타트업들에 혁신 기술을 실용화할 수 있는 공장까지 지어주고 해외 마케팅도 지원한 게 주효했다”며 “혁신 창업이 늘어나고 서울·수도권의 벤처 기업들이 포항으로 본사를 옮기는 등 적지 않은 성과를 올렸다”고 소개했다.

포스텍 1회(87학번) 수석 졸업자인 그는 불굴의 도전 정신과 헌신, 사업 보국으로 상징되는 ‘박태준 정신’의 확산을 위해 기업가정신 설파에 나서고 있다. 포스코에 근무할 때도 포항의 모범 사례를 서울대·KAIST등으로 확산하려고 노력했다. 박 교수는 “당시 4000억 원을 출자해 수조 원의 펀드를 만들어 벤처·스타트업에 투자했는데 이미 6000억~7000억 원의 가치로 키웠다”면서 “전국의 거점연구 대학과 기업·지방자치단체에서도 포항 모델에 주목하고 있으나 아직은 갈 길이 멀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어 “대학·기업·지자체가 협업해 혁신 생태계를 만들고 젊은이들의 글로벌 진출을 위한 개방형 혁신 플랫폼을 구축해야 좋은 일자리도 많이 만들 수 있다”고 힘줘 말했다.

박 교수는 2000년대 들어 미국의 영향력은 더욱 커진 반면 유럽은 경제 비중이 절반이나 떨어질 정도로 명암이 엇갈린 것도 결국 혁신 생태계 조성 유무에 달렸다며 퍼시픽밸리를 재차 강조했다. 엔비디아·테슬라 등 미국 빅테크들은 물론 중국 빅테크들도 모두 벤처·스타트업에서 출발한 것처럼 우리도 벤처붐을 다시 일으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삼성·LG·SK·포스코 등 국내 대기업들의 경우 미국 기업들에 비해 혁신 속도가 떨어진다”며 “기업의 사회적책임(CSR)보다 경쟁력 확대 차원에서 인공지능(AI) 등 혁신 기술에 치중하는 벤처·스타트업과 적극적으로 협업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박 교수가 유독 ‘산학연정 협업’을 강조하는 것은 대학과 출연연구기관은 미래 먹거리 연구는 하지만 상업화에 약하고, 기업은 수익화에 목말라 있지만 선도 연구에 한계가 있으며 정부는 미래 기술의 방향을 피부로 느끼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미국은 원천 기술과 AI·소프트웨어를 중심으로 제조업을 강화하고 있고 중국은 AI·로봇이 내재된 하드웨어를 중심으로 발전하고 있는데 누가 승리할지는 아직은 모른다”며 “다만 둘의 공통점은 연구개발(R&D)과 벤처·스타트업 생태계 조성에 진심이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우리 대학들과 출연연에서 각자 기술사업화(TLO) 조직을 운영하고 일부 지자체에서도 벤처캐피털(VC)을 만든다는 데 ‘그들만의 리그’가 돼서는 안 된다”며 “자칫 롯데와 신세계가 쿠팡의 개인 맞춤, 물류 최적화, 빠른 배송의 가치를 이해하지 못해 고전했던 우를 범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이 과정에서 산학연정이 각자의 칸막이에서 벗어나 협업하고 대기업들의 경우 혁신 플랫폼 전략을 세워야 한다는 게 그의 조언이다.

박 교수는 “산학연에서 과학기술인들의 겸직을 허용해 융합 연구를 촉진하고 혁신 연구와 벤처·스타트업 생태계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며 “대기업에 대한 금산분리 완화 등을 통해 벤처·스타트업의 인수합병(M&A) 시장을 넓혀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미국 빅테크의 경우 유대계 VC에 출자 조건으로 5년 뒤 필요한 기술을 가져오라고 하거나 교수나 벤처·스타트업인들에게 돈을 벌 수 있는 미래 기술을 알려주는 식으로 생태계를 만든다고 전했다. 그는 “우리도 미국처럼 산업자본이 벤처 시장에 대거 유입되도록 해야 한다”며 “다만 대기업들이 직접 벤처·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보다 VC에 출자하는 게 효과적”이라고 했다.

박 교수는 “미국과 중국은 대학의 연구 성과가 논문에 머무르지 않고 시장에서 꽃을 피우도록 노력하고 있다”며 “우리 정부가 주요국 정부들이 각 분야에서 5년 뒤 R&D 비중을 어떻게 잡는지, 현지 VC들은 3~5년 뒤를 보고 어떻게 투자하는지 파악해 의사 결정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산학연정이 미래 흐름을 읽고 연구 방향을 정하고 혁신가 양성과 R&D와 제조업 연결 생태계 구축에 나서는 게 관건이라는 것이다. 그는 “포스코에서 근무할 때 매년 15명가량의 해외 우수 공대생을 포스텍에 교환학생으로 초청했다”며 “탄력적인 비자 운용을 통해 해외 인재가 국내에서 자유롭게 취업과 창업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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