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미디어] 첫 용돈

2025-05-22

용돈에 대한 또렷한 기억은 중학교 때부터다. 체크카드에 달마다 10만 원 남짓의 돈이 들어왔다. 그 10만 원은 오롯이 나를 위한 것이었다. 콘택트렌즈를 사고, 틴트를 사고, 머리를 잘랐다. 나머지는 대부분 좋아하는 가수를 위해 쓰였다. 앨범을 여러 버전으로 사고, 음원을 구입해 듣고, 콘서트 경비에 대부분을 털었다. 하지만 5월이면 용돈 운영에 비상이 걸렸다. 바로, 어버이날 때문이다.

우리 삼남매는 부모님의 퇴근 시간에 맞춰 깜짝 파티를 준비하곤 했다. 용돈을 모아 카네이션과 케이크를 사고, 여유가 없을 땐 편의점 카스테라를 겹쳐 만든 수제 케이크에 빵집 생크림을 채워 넣었다. 케이크 위엔 초코펜으로 ‘엄마 아빠 사랑해요’라 적었다. 우리만의 레터링 케이크였다. 편지지 한 장 가득 써 내려간 손편지에는 사랑 고백과 사춘기 시절의 후회가 뒤섞여 있었다. 마지막 문장은 늘 같았다. “엄마 아빠, 내가 돈 많이 벌어서 집도 사 드리고, 차도 사 드릴게요.” 그때도 지금도 ‘집’과 ‘차’는 효도의 상징이었다.

그 다짐은 오랫동안 나를 지탱해 줬다. 언젠가는 꼭 해낼 수 있으리라 믿었다. 하지만 현실은 단순하지 않았다. 친구들이 하나둘 취업하고 안정된 삶에 접어들 무렵, 나는 여전히 꿈을 좇고 있었다. 작가교육원에서 글쓰기를 배우고, 보조 작가 일을 하며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다. 나의 집, 나의 차는 별세계 이야기였다. 더 이상 용돈을 받지는 않았지만, 보험료와 전세금 등 부모님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하긴 어려웠다. 마치 캥거루처럼 부모의 주머니 안에서 자라고 또 자랐다.

얼마 전, 백상예술대상에서 극본상을 받은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를 보며 많이 울었다. 극 중 금명이가 애순과 관식에게 쏟아내는 막말을 들으며 ‘싸가지 없다’고 혀를 찼지만, 돌아보면 나 역시 철없던 딸이었다.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엄마에게 전화해 서럽게 울었고, 엄마는 묵묵히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나는 엄마를 마치 감정 쓰레기통처럼 대했다. 언제나 부모님께 더 많은 이해와 시간을 요구했다. 서울에서 네 시간 넘게 떨어진 고향 집엔 자주 가지도 못했다.

마음이 없었던 건 아니다. 해 드리고 싶었다. 돈도, 시간도, 존재 자체도 내어 드리고 싶었다. 하지만 나를 유지하는 것조차 벅찬 순간들이 많았다.

“똑똑한 줄 알았는데, 멍청하다.” 그 말을 끝으로 작가 일에서 잘렸다. 누가 이기나 보자 하는 마음으로 버텼지만, 결국 ‘멍청이와 함께 갈 멍청이’는 없었다. 짐을 싸서 집으로 내려갔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밥을 먹고, 산책을 하고, 영화를 보며 시간을 보냈다. 그런 나에게 부모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 시장에서 회를 떠 오고, 좋아하는 갈빗집에 데려가셨다. 혼자 훌쩍 여행을 떠나면, 그다지 전화도 하지 않으셨다. 나중에 엄마는 그때 내가 혹시 나쁜 생각을 하지는 않을까 무척 무서웠다고 했다. 그 시기, 나는 거실 소파를 차지하고 부지런히 움직이는 부모님을 가만히 보고 또 보았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다시 동력이 생겼다.

울산에 온 이유는 단 하나였다. 경제적 주체로 살아볼 기회가 생겼기 때문이다. 매월 월급을 받고, 내가 일한 시간만큼 급여를 받는 게 신기했다. 한 달을 일하면 하루의 휴가가 생기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매일 출근하는 건 쉽지 않았지만, 매분 매초 긴장했던 예전보다 몸은 더 건강해졌다. 일과 환경에 적응하며 요즘은 다시 글쓰기도 시작했다. 나보다 내가 쓰는 이야기를 더 기다리는 부모님 덕분이다.

그리고 올해, 처음으로 부모님께 어버이날과 명절에 작은 용돈을 드릴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내 힘으로 번, 첫 용돈이었다. 여전히 빠듯했지만, 조금 덜 먹고 덜 쓰면 가능한 일이었다. 삼남매 단톡방에는 파티 제안이 올라왔고, 오랜만에 메시지는 요란하게 울렸다. 날짜를 정하고, 레터링 케이크와 꽃바구니, 일식 코스 식당까지 예약을 마쳤다.

어린 시절 편지에 적었던 약속처럼 집도, 차도 사 드릴 수 있는 날은 아직 멀지만,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마음을 다해 준비했다. 내가 그랬듯 부모님도 이번 용돈만큼은 본인들을 위해 써 주셨으면 했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처럼, 언젠가는 이 첫 용돈보다 더 든든한 마음을 전할 수 있기를 바란다.

진보화 청년기자

[저작권자ⓒ 울산저널i.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