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수들끼리 숨소리 하나하나까지 다 맞췄습니다”(최태헌 무용수)

‘일무(佾舞)’는 종묘제례악에서 여러 명의 무용수가 줄을 지어 추는 춤을 의미한다. '일(佾)'은 줄을 지어 선다는 의미다. 과거 왕실 제사 의식에서 선보이던 춤이 현대적 감각으로 새롭게 태어나 무용 팬들을 사로잡고 있다.
서울시무용단의 21일부터 24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일무’를 공연한다. 국가무형문화재이면서 유네스코 세계인류무형무산인 종묘제례악의 의식무 일무를 재해석한 작품이다. 패션디자이너 출신 연출가 정구호가 총연출을 맡았다. 한국 무용가 정혜진과 현대 무용가 김성훈·김재덕이 안무에 참여했다.
‘일무’는 이미 국내외에서 검증됐다. 지난 2022년 초연 이후 2023년 공연에선 3000석이 넘는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객석을 91% 채웠다. 같은 해 1800석 규모 링컨센터 ‘데이비드 H, 코크 시어터’에서 열린 미국 뉴욕 초청 공연에선 전회차 매진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번 서울 공연 역시 나흘 간의 공연이 모두 조기 매진됐다.
올해 ‘일무’는 영상과 조명 디자인 등 무대 위 시각적 요소를 재정비했다고 제작진은 설명했다. 21일 개막에 앞서 열린 프레스콜 이후 기자간담회에서 정구호 연출은 “2022년 첫 공연 때의 ‘일무’는 전통에 가까웠다”며 “링컨센터 공연을 계기로 의상의 변화 등을 통해 현대적인 해석을 더했다”고 말했다.
공연은 비교적 절제된 1막 ‘일무연구’에서 시작한다. 버드나무 가지에서 지저귀는 꾀꼬리의 모습을 담았다는 ‘춘앵무’와 2장 ‘궁중무연구’, 남성 무용수의 절도 넘치는 군무가 돋보이는 3장 ‘죽무’를 거쳐 4장 ‘신일무’에서 마무리된다. 일무의 의미와 미학을 재해석한 ‘신일무’는 여느 현대 무용 못지않게 무용수들이 폭발적인 에너지를 분출한다.

속도와 미감은 다르지만 1~4장이 이어지는 약 75분간의 무대에서 무용수들은 ‘칼군무의 정수’를 보여준다. 김경애 배우는 “무용수들이 숨소리까지 맞출 정도로 한 몸처럼 춤추지만, 무용수의 연령대가 다양한 만큼 젊은 기운과 노련미가 어우러지는 모습을 보일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화려한 색감의 의상도 돋보인다. 정구호 연출은 “관객들이 선명한 이미지를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데도 중점을 뒀다”며 “전통적인 오방색에 일부 변주를 했다”고 설명했다.

안호상 세종문화회관 사장은 “이제 ‘일무’가 꼭 봐야 할 레퍼토리로 각인되고 있는 것 같다”라며 “대한민국 모든 국민이 ‘일무’를 관람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말했다.
‘일무’는 이달 서울에서 진행 중인 경제학 분야 최대 국제학술대회 ‘세계경제학자대회(ESWC)’ 의 공식문화행사로 선정되기도 했다. ‘일무’는 24일까지 이어지는 서울 공연 이후 이달 29일 강릉아트센터, 다음 달 4, 5일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도 관객을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