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디스크인 줄 알았는데…더 위험한 ‘목 중풍’

2025-12-13

인체의 신경계는 크게 중추신경계와 말초신경계로 나뉜다. 중추신경계에 해당하는 뇌와 척수는 두개골이나 척추처럼 단단한 뼈 조직으로 둘러싸여 보호를 받을 정도로 그 중요성이 높다. 이 때문에 중추신경계에 생기는 질환은 대체로 몸의 말단 부위까지 갈라져 뻗어가는 말초신경계의 병보다 심각한 경우가 많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목 디스크(경추추간판탈출증)가 신경 가지 일부에 생긴 문제인 것과 달리, ‘경추 척수증’은 신경의 다발인 척수 주변에 생긴 이상 탓에 더 심각하고 광범위한 마비 증상이 일어나는 것도 같은 원리다.

척수는 연결된 뇌에서부터 허리 아래까지 지나가는 중추신경계의 일부다. 나무로 비유하면 척수는 줄기, 말초신경은 연결된 가지인 셈이다. 경추 척수증은 목뼈(경추) 안을 지나가는 신경 다발인 척수가 압박을 받아 손상되는 중증질환으로, 뇌졸중(중풍)처럼 심각한 마비 증상을 일으킬 수 있어 ‘목 중풍’이라고도 불린다. 초기엔 손끝이 저린 증상이 목 디스크와 비슷해 심각하게 여기지 않고 방치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팔다리 감각이 동시에 둔해지고 걸음걸이가 휘청거리는 등 증상이 서서히 나타난다면 경추 척수증을 의심해 봐야 한다.

일반적인 목 디스크는 신경 가지 하나에 문제가 발생한 경우가 대부분인 반면, 경추 척수증은 척수신경 다발 전체가 눌리면서 광범위한 손상이 일어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환자가 느끼는 증상도 목 디스크일 때 저린 범위가 팔과 어깨 주변으로 국한되는 양상과 달라서 척수신경이 담당하는 손과 발의 기능이 동시에 저하되는 증상이 나타난다. 김태훈 건국대병원 정형외과 교수는 “목 디스크가 톨게이트에서 사고가 나 해당 톨게이트만 못 빠져나가는 ‘국지적 문제’라면, 경추 척수증은 고속도로 전체가 정체되는 ‘전면적 사고’와 같다”며 “척수는 한 번 손상되면 회복하기 어렵다. 증상이 나타났을 때 적절한 치료가 이뤄지지 않으면 회복 불가능한 마비를 남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척수신경 다발 전체가 눌려 발생

손과 발 기능 동시에 저하 증상

걸을 때 양 손발 저리다면 의심을

뇌질환과 유사해 혼동하기 쉬워

진행성 질환, 발견 즉시 치료해야

‘일자목’ 되지 않게 생활습관 관리

손으로 세밀한 작업을 하기 어려워지는 것도 환자들이 호소하는 또 다른 대표적인 증상이다. 젓가락질이 서툴러지고 옷의 단추를 잠그거나 글씨를 쓰는 것이 힘들어지는 등 일상적인 동작에 지장이 생긴다. 또 손에 힘이 빠져 물건을 자주 놓치기도 한다. 보행 장애도 나타난다. 김태훈 교수는 “술을 마시지 않았는데도 몸의 균형을 잡지 못하고 갈지자로 휘청거리며 걷거나 계단 오르내리기를 힘들어하는 것이 척수증의 전형적인 증상”이라고 말했다.

동작을 잘 수행하기 어려운 증상은 뇌졸중이나 파킨슨병 등 뇌질환과 혼동하기 쉽다. 보행 장애와 감각 둔화 외에도 팔다리에 힘이 빠지거나 요실금, 배뇨 지연이 생기는 등의 증상이 뇌질환과 경추 척수증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다만 경추 척수증이 있을 땐 대부분 증상이 몸의 좌우 양쪽 모두에서 나타나는 데 비해 뇌졸중은 한쪽만 마비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차이점이다. 실어증, 발음 이상, 언어 이해 장애 등 말하고 듣는 능력이 떨어지는 증상은 뇌질환에서 더 심하게 나타난다. 김지연 세란병원 척추내시경센터장은 “경추 척수증과 뇌질환은 보행 장애의 양상, 손 사용의 어려움, 척수 반사의 양성 여부 등에서 중요한 차이가 있다”며 “팔다리의 힘이 빠지지만 언어장애와 사고의 이상이 없고, 젓가락 사용이 어려워지며 보행 시 양 손발이 저리다면 경추 척수증을 의심해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경추 척수증의 원인은 다양하지만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나이가 들면서 척추관이 좁아지는 퇴행성 경추 협착증이고, 다른 하나는 한국·중국·일본 등 동아시아인에게서 유전적으로 많이 나타나는 ‘후종인대 골화증’이다. 후종인대 골화증은 척추 뒤쪽 인대가 뼈처럼 단단하게 두꺼워져 척수신경을 압박하는 질환으로, 가족력이 높다.

비슷한 다른 질환과의 감별과 원인 파악을 위해선 경추 자기공명영상(MRI) 검사가 필요하다. 검사를 통해 척수가 눌리는 위치와 압박 정도, 디스크의 상태 등을 확인할 수 있다. 김지연 센터장은 “경추 척수증과 뇌질환은 증상이 비슷할 수 있지만, 급성으로 진행되는 뇌졸중과 달리 경추 척수증은 천천히 진행된다는 차이점이 있다”며 “경추 척수증도 대소변 조절이 어려운 장애가 동반되는 만성 질환으로 갈 수 있으므로 조기 치료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경수 척수증은 놔두면 계속 악화되는 진행성 질환이므로 증상을 알아차린 시점이 가장 좋은 치료 효과를 낼 수 있는 ‘골든타임’이다. 초기에는 약물치료나 물리치료로 관리할 수 있지만 신경 손상이 진행돼 손의 기능이 떨어지거나 보행 장애가 나타날 정도라면 수술을 통해 눌려 있는 신경의 압박을 해소시켜야 한다. 신경이 압박받는 상태를 방치하면 되돌릴 수 없는 변화가 생겨 수술 후에도 회복이 불가능할 수 있다. 특히 걷는 모습이 눈에 띄게 이상해지는 단계에 이르면 즉각적인 치료가 필요하다.

대표적인 수술 방법은 후궁성형술 또는 후궁절제술 등이다. 몸 뒤쪽에서 척수를 누르는 뼈를 열어 공간을 확보하는 방법이다. 만일 척수 앞쪽에 압박을 가하는 병변이 생긴 경우라면 눌린 부위를 제거하고 뼈를 고정하는 전방유합술을 시행한다. 수술은 일반적으로 척수의 추가 손상을 막는 예방적 목적이 크며 이미 발생한 신경 손상도 조기에 수술할수록 회복 가능성이 높아진다. 최근에는 현미경을 이용한 최소 침습 수술법과 척추 안정화 기법이 발전해 환자의 회복 속도도 빨라졌다.

경추 척수증을 예방하고 수술 후 재발 위험을 낮추기 위해선 평소 생활습관 관리도 필요하다. 특히 목의 자연스러운 ‘C자 만곡’을 유지하는 것이 핵심이다.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를 쓰거나 책을 읽을 때는 고개를 숙이는 대신 화면과 책을 눈높이까지 올려서 시선과 같은 높이가 되도록 해야 한다. 또 장시간 앉아 있었다면 10분 정도 휴식하면서 목과 허리를 뒤로 젖혀 척추의 원래 곡선 형태를 유지할 수 있게 돕는 스트레칭 동작을 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자는 동안 경추가 일자목 형태로 되지 않고 C자 곡선을 충분히 지지해 줄 수 있는 베개를 사용하는 것도 필수적이다. 김태훈 교수는 “환자 스스로 몸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증상이 느껴지면 단순한 노화 현상으로 생각하지 말고 빠르게 병원을 찾아 치료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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