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롭고 힘찬 말처럼…다시 '한강의 기적'을

2025-12-31

AI 인프라·시장경제 숨통 조이는 규제의 천국 과제 산적

노란봉투법·상법 개정안 '실용' 부르짖은 대통령의 과제

2026년 새해가 밝았다. 병오년(丙午年) 새해는 붉은 말의 해다. 모든 게 혼란스러웠던 을사년(乙巳年)이 저물었다. 지난 한 해는 격동을 넘어 대한민국 존립 자체가 위협 받는 위기의 해였다. 이제 그 시련을 극복하고 새해는 새로운 도전과 도약의 해로 기억되어야 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12·3 비상계엄선포로 헌법재퍈소에 의해 파면됐다.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위기상황 속에서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이재명 후보는 21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풍전등화와 같았던 가시밭길을 건넜지만 여전히 폭풍전야와 같은 긴장감 속에 지나 온 한 해였다.

4월 4일 헌법재판소는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소추를 인용했다. 6월 4일 이재명 정부가 출범했다. 10월 29일 한·미 관세협상이 타결됐다. 10월 31일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개최됐다. 대략을 훑어보면 2025년은 혼돈으로부터 ‘회복과 정상화’의 기록이다. 두 얼굴의 명암이 뚜렷하지만 회복과 정상화는 갈등과 불화라는 현실적 한계에 부닥쳐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새해를 맞았지만 기대보다는 우려가 큰 것은 아직도 형극의 길이 끝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녹록치 않은 붉은 말의 해다. 국내적으로는 정치적 분열과 갈등이 해소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통상전쟁과 함께 지구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쟁과 평화의 공존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글로벌 환경은 4차 산업혁명이라 불리는 AI로 격동과 격변의 장이다. 증기기관이 불러 온 1차 산업혁명을 거쳐 전기·컨베이어 벨트로 대량생산 본격화된 2차, 컴퓨터·반도체·인터넷으로 정보화 혁명을 일으킨 3차를 거쳐 IoT·AI·빅데이터로 물리적·디지털·생물학적 경계를 허무는 지능화의 4차 혁명이 도래했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은 결국 미래 산업에 대한 주도권 싸움이다. ‘한강의 기적’을 이룬 대한민국은 지금 고래 싸움에 끼인 새우 같은 형국이다. 경제 기적을 이뤘지만 기업가의 정신을 따라가지 못하는 정치의 혼란상이 위기를 부르고 있다. 탁상공론에 봉숭아 학당을 방불케 하는 국회는 국민들의 기대를 저버린 지 오래다. 정치적 안위와 권력의 집착이 경제 숨통을 조이고 있다.

자유시장경제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 세계적 추세가 보호무역주의로 회귀하는 글로벌적 현상이라지만 유독 대한민국은 기업과 시장경제에 대한 이해가 왜곡돼 있다. 사회적 불평등의 원인을 기업과 가진 자들에 대한 분노로 표출한다. 경쟁은 죄악시 되고 가진 자는 범죄자 취급을 한다. 피해망상에 사로잡힌 착오적 발상이다. 가진 자들만의 보이지 않는 횡포가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고 있다.

시장이 왜곡되면 부패와 부정이 판친다. 시장은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움직이는 생물 같은 존재다. 어줍잖은 공정과 분배를 내세워 정의를 부르짖는 건 정치꾼들의 협잡일 뿐이다. 선순환적 구조에 매듭을 지으면 그곳은 언제가는 터지게 되어 있다. 권력에 집착한 정치라는 괴물이 빚어내는 잘못된 망국의 길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진행형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119조 제1항은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자유시장경제의 기본 원칙을 천명하고 있음이다. 자유시장경제는 사유 재산 제도, 경제 활동의 자유, 사적 이익의 추구, 경쟁의 원칙, 자기책임의 원칙, 정부 개입의 최소화와 같은 주요 요소로 구성된다.

경제 활동의 자유에는 계약의 자유, 직업 선택의 자유 등이 포함되며 이는 개인의 창의성을 촉진하고 경제 전반의 생산성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경쟁의 원칙을 통해 기업들은 더 나은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유도하며 이는 소비자에게 혜택을 주고 경제 전체의 효율성을 높인다. 정부 개입의 최소화는 시장의 자율적 기능을 중시해 시장 실패가 발생하는 분야에서만 정부가 제한적으로 개입해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경제의 효율성을 저하시킬 수 있다.

현실은 시장경제를 옥죄는 권력의 사유화를 꿈꾸는 정치권의 입맛대로 변질되고 있다. 노란봉투법에 상법 개정안 등 거대 여당의 폭주로 기업을 죄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이란 변곡점 앞에서 전략적 선택과 시대적 판단이 요구되고 있지만 유독 대한민국의 정치권은 일방 독주하며 경제를 희생양 삼고 있다. 정치적 수사만 난무하고 국가적 미래전략은 보이지 않는다. 경제는 불확실성의 늪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저성장의 지속과 뉴노멀의 일상화, 미·중 경제전쟁과 신냉전 질서, 인공지능(AI)이 불러 올 산업구조의 대변혁, 포퓰리즘의 발흥과 민주주의의 위기, 불평등의 구조화와 사회적 갈등의 증대, 정보사회의 진전과 탈진실 시대, 기후위기의 심화가 동시다발적 위험요인으로 작용하지만 미래를 걱정하는 고심은 보이지 않는다.

AI가 불러 올 미래 혁명은 가늠할 수 없다. 하루 빨리 규제를 혁신하고 기술 개발과 상용화 촉진으로 산업 생태계를 강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 AI 전문 기업, 데이터 센터, 집적 단지 조성, 전문 인력 양성 등에 지원이 절실하다. 동시에 국제 협력과 개방성을 통해 글로벌 AI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정부와 기업, 학계가 협력하여 국가적 과제로 AI 혁신을 추진해 나가야 한다.

AI 경쟁에서 밀리면 미래가 없다. AI 전환의 일차적 문제는 전력이다. AI는 전기 먹는 하마다. 탈원전에 탈탄소를 지향하면서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바라는 건 공염불이다. AI가 아니더라도 산업 현장에서는 이미 전기료 폭탄에 아우성이다. 대학 AI연구소는 전력난으로 문을 닫아야 할 판이다. ‘녹색 전환’을 선언했던 유럽은 제조업의 붕괴라는 뼈아픈 교훈을 얻었다.

"공짜 점심이 없듯 친환경에도 공짜는 없다.” 전 세계는 ‘전기 먹는 하마’와 다름없는 AI 인프라 문제 때문로 고심 중이다. 독일은 원전 폐쇄 이후 석탄발전 폐지를 연기와 함께 추가 발전용량 확보에 나섰다. 탈원전 이후 정전 위험에 직면한 스웨덴은 가스발전소를 재가동하고 원전 재건설 및 소형모듈원전(SMR) 도입을 추진 중이다. 스페인도 대정전 이후 재생에너지 출력제한과 가스발전 확대를 병행하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원전을 대폭 축소했던 일본도 최근 AI 산업의 전력 수요가 급증하자 15년 만에 가시와자키 원전 6호기를 재가동하기로 했다. 대만은 탈원전 기조에서 원전 재가동으로 노선을 변경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TSMC 등 반도체 생산 관련 전력 수요를 감당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가장 적극적인 원전 정책을 펼치고 있는 국가는 중국이다. 중국은 30기 이상의 원전을 동시 건설 중이며, 올해만 2000억위안(약 41조2600억원) 규모의 신규 원전 10기를 승인했다.

빅테크 기업들도 전기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알파벳은 최근 데이터센터와 태양광·천연가스 발전소를 한 부지에 짓는 코로케이션 기업 인터섹트를 47억 5000만 달러(약 6조 8600억 원)에 인수 계약을 체결했다. 아마존은 X-energy·한국수력원자력(KHNP)·두산에너빌리티와 손잡고 2039년까지 미국에 5GW 규모 SMR을 건설하는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었다.

구글은 인터섹트 인수와 텍사스 해스켈 카운티에 건설 중인 멀티기가와트(GW)급 프로젝트를 포함해 약 150억 달러(21조 6700억 원) 규모의 에너지 파이프라인을 확보했다. 아마존웹서비스(AWS)도 펜실베이니아 서스퀘하나 원전으로부터 2042년까지 1920메가와트(㎿) 규모의 전력을 공급받기로 했다.

세계의 이 같은 에너지 정책 변화는 결국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소극적인 탈원전과 탈탄소 목표를 유지하면서도 AI 경쟁력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 원전에 대한 불편한 시선으로 과연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까. 송전망 갈등조차 해결하지 못해 수년씩 발목 잡히는 현실을 감안하면 답답할 뿐이다. 결국 입이 아닌 행동을 보여할 때다.

지난해 12월 29일 다시 ‘청와대 시대’가 열렸다. 이재명 대통령은 문재인 전 대통령이 마지막으로 출근한 2022년 5월 9일로부터 1330일이 지난 이날 청와대로 출근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2022년 취임 첫날 곧바로 용산 청사로 출근하며 열었던 ‘용산 시대’는 막을 내렸다. ‘구중궁궐’이자 권위주의적 권력의 핵심부로 비판받아 온 청와대로의 복귀가 이젠 과거의 기록이었으면서 좋겠다. 협치와 화합이 말잔치가 아니었으면 한다.

말의 해다. 마음에 새겨야 할 고사가 있다. “소는 살고 말은 죽는다”라는 뜻의 우생마사(牛生馬死)다. 갑자기 홍수가 나 불어난 물에 소와 말이 동시에 빠졌다. 말은 수영을 잘하는데 물에서 익사했고, 수영을 잘 못하는 소는 살아 남았다. “자연에 순응하면 살고, 자신만 믿으면 죽는다”는 경고의 의미를 담고 있다. 자신의 실력만 믿은 말은 물살을 거슬리다가 끝내 죽음을 맞이했다.

한비자(韓非子)에 나오는 ‘늙은 말의 지혜’를 일깨운 노마지지(老馬之智)도 같은 맥락이다. 장수가 군사를 이끌고 사막을 건너다 길을 잃었다. 혼란에 빠진 순간 한 늙은 병사가 이렇게 말한다. “늙은 말을 앞세워 가게 하십시오”. 늙은 말은 거리낌 없이 길을 찾아 갔고 모두가 안전하게 고향으로 돌아갔다. 젊고 힘센 말보다 늙은 말의 경험이 때론 필요하다. 경험보다 좋은 스승은 없다.

시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지혜다. ‘붉은 말’의 해가 ‘늙은 붉은 말’이었으면 좋겠다. 아집과 독선을 버리고 다 함께 지혜를 모으는 통합의 어깨동무가 이루어졌으면 한다. 적토마의 해를 맞아 질주하는 대한민국을 기대한다. 기적처럼 ‘한강의 기적’이 다시 일어나는 원년이 됐으면 한다. 일모도원(日暮途遠)일지라도 가야 할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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