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세상의 공포 중에 자식을 지키지 못할 것 같다는 부모의 공포보다 더 큰 것이 있을까? 자신의 죽음보다도 더한 두려움, 사만타 슈웨블린의 『피버 드림』은 바로 이 원초적인 공포를 다룬다.
소설은 독에 감염된 두 사람의 대화로만 진행된다. 그래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 대화를 통해 무엇을 하려는지 알아내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열병에 걸려 죽어가는 아만다는 옆집 아이 다비드의 목소리를 듣는다. 다비드는 어릴 때 독에 중독된 경험이 있고, 그의 어머니 카를라는 아들을 살리기 위해 이체 의식을 했다. ‘이체’는 독에 중독된 자의 의식의 절반을 다른 몸에 옮겨놓아 독성을 늦추는 주술 행위인데, 그날 이후 다비드는 항상 이상하게 말을 하고 엄마로부터도 괴물 취급을 받아왔다. 타인의 의식에 감염된 사람처럼.

아만다는 다비드의 목소리에 이끌려 기억을 되짚으면서 줄곧 ‘구조 거리’를 계산한다. 구조 거리는 딸에게 무슨 일이 생길 경우 달려가 구할 수 있는 최단 거리를 뜻한다. 아만다는 왜 끊임없이 구조 거리를 계산할까? 이 계산이 어떤 위안을 안겨주기에 반복하는가? 대비하려고, 준비 없이 나쁜 일을 맞이하지 않으려고, 어떤 경우에도 아이를 지키려고 공포의 연산을 되풀이하는 것이다. 아만다가 중얼거리는 “너무 늦었어”라는 말은 실패의 탄식이자 감염의 완결이다.
비현실적인 줄거리임에도 이 소설은 현실 공포처럼 다가온다. 농약을 가득 실은 드럼통, 드럼통에 맺혀있던 이슬, 그것을 먹은 동물과 인간들에게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전염병, 땅과 물과 공기 속에 스며드는 감염의 네트워크는 우리에게 이미 익숙한 세상이다. 『피버 드림』의 진짜 공포는 더 이상 안전거리가 존재하지 않는 세계, 그 세계와 접촉해야 하는 우리 내부의 불안에서 기인한다. 그 세계에서 끊임없이 실을 감고 풀며 아이와의 구조 거리를 팽팽하게 당기던 아만다의 공포는 어쩌면 이 시대의 공포가 아닐까.
김성중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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