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기술을 앞서야 현대차가 이긴다

2025-12-17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최근 진단은 냉정하다. 자율주행과 로보택시가 여는 미래는 미국과 중국의 독무대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디에 서 있는가. 현대차그룹의 고민과 최근 내홍은 이 질문에 답을 드러낸다.

정의선 회장은 일찍이 소프트웨어와 인공지능(AI)이 미래 경쟁우위의 핵심임을 간파했다.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를 내걸고, 네이버 출신 송창현 대표에게 사장 직함과 권한을 부여하며 체질 전환을 시도했다. 최근 송 사장의 사임은 기술보다 깊은 ‘문화 장벽’이 실험을 가로막았음을 시사한다.

중국의 추격은 거칠 것이 없다. 거대한 내수 시장을 발판 삼아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의 제조 노하우를 흡수했고, 배터리와 라이다 센서 공급망이라는 강점 위에 공산당식 ‘선 생존, 후 규제’ 모델을 얹었다. 경쟁을 통과한 기업들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결합된 강력한 주자로 세계 시장을 넘본다.

현대차 상황은 피처폰 시절 삼성전자와 LG전자를 떠올리게 한다. 제조 경쟁력은 뛰어났지만, 운영체제와 생태계 전쟁에서는 주도권을 쥐지 못했다. 테슬라가 소수 차종에 자원을 집중해 자율주행을 고도화하는 동안, 현대차는 수십 개 차종과 복잡한 옵션이라는 구조적 한계에 묶여 있다. 이는 소프트웨어 개발에 분명히 불리하다.

소프트웨어 연구자로서 필자는 이 상황을 ‘본질적 세계관의 충돌’이라 부르고 싶다. 기계공학의 세계는 ‘F=ma’ 같은 물리 법칙이 지배한다. 여기서는 오차를 줄이는 것이 곧 선(善)이며, 시행착오는 비용이자 실패다. 반면 소프트웨어는 물리적 실체 없는 ‘생각’에서 출발해 현실을 지배하려는 시도다. 보이지 않는 질서를 만들기 위해 시행착오는 필수적이며, 애자일(agile) 방식은 단순한 개발 기법이 아니라 불확실성에 대응하는 생존 전략이다.

최근 현대차그룹의 소프트웨어 조직 개편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시행착오를 허용하지 않는 제조업의 DNA가, 시행착오를 먹고 자라는 소프트웨어 문화를 끝내 감당하지 못한 것이다. 테슬라와 중국 기업들이 위협적인 이유도 기술보다, 소프트웨어적 사고가 의사결정을 주도하는 체계를 이미 구축했기 때문이다.

기계 위에 AI를 덧붙이는 ‘애드온(add-on)’ 전략으로는 승산이 없다. 실패를 용인하고, 그 실패를 데이터로 축적해 다시 사고의 자산으로 전환하는 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기술 장벽은 자본이 아니라 철학이 넘는다. 소프트웨어 중심적 리더십이 하드웨어를 이끌 때, 현대차와 한국 산업은 비로소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의 굴레를 벗어날 수 있다.

이수화 서울대 빅데이터혁신융합대학 연구교수·법무법인 디엘지AI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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