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만 영화’는커녕 4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도 없을 정도로 영화 시장이 좋지 않은 가운데 애니메이션이 극장가를 떠받치는 버팀목이 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애니메이션 시장에서 나타난 ‘롱테일 법칙(80%의 비핵심 다수가 20%의 핵심 소수보다 뛰어난 가치를 창출한다는 이론)’에 주목하고 있다. 여러 국적의 다양한 애니메이션이 ‘중박’ 이상의 흥행을 하고 특별관 상영, 굿즈 판매 등으로 이어져 부대 수익까지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6일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올해 최고 흥행작은 ‘미션 임파서블 8’으로 339만 관객을 기록했다. 이어 2~4위에 오른 ‘야당(337만)’, ‘F1 더 무비(332만)’, ‘미키17(301만)’ 등 블록버스터도 400만 관객을 넘기지 못했다. 반면 어린이 장르로 인식됐던 애니메이션은 꾸준히 관객을 모으고 있다. 올 초 ‘퇴마록’이 50만 관객을 동원하며 K애니의 저력을 입증한 데 이어 북미에서 개봉해 ‘기생충’의 흥행 기록을 넘어선 ‘킹 오브 킹스’는 지금까지 국내에서 104만 명을 동원하고 있다. 애니메이션으로는 1위, 전체 개봉작 중에서는 16위에 해당하는 성적이다.
또 ‘극장판 진격의 거인 완결편 더 라스트 어택(94만)’과 ‘명탐정 코난: 척안의 잔상(66만)’이 애니메이션 관객 수 2·3위를 차지하며 J애니 팬덤을 확인시켜줬다. 이밖에 ‘엘리오’ ‘뽀로로 극장판 바닷속 대모험’ ‘수퍼 소닉3’ 등도 인기를 끌었다.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장편 애니메이션상을 수상한 라트비아 작품 ‘플로우’는 대사가 없음에도 어린이 관객들의 N차 관람 열풍이 불며 18만 관객을 동원했고, 백희나 작가의 동화를 원작으로 일본 최대 애니메이션 제작사 토에이와 단델라이온 스튜디오가 제작한 ‘알사탕’은 러닝타임 20분임에도 13만 명이 봤다.
올 하반기에도 애니메이션의 강세는 이어질 전망이다. 지난달 말 개봉한 ‘배드 가이즈2’와 ‘베베핀 극장판: 사라진 베베핀과 핑크퐁 대모험’은 각각 관객 23만 명, 16만 명을 동원하고 있다. 또 ‘스머프’와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이 이달 개봉하고 동명의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 한 ‘연의 편지’는 10월에, ‘주토피아2’는 11월에 개봉할 예정이다.
다양한 장르의 애니메이션이 꾸준히 사랑받는 이유로는 애니메이션에 대한 인식의 전환과 함께 극장 관람을 꺼리지 않는 어린이 관객들, 어린 시절부터 애니메이션을 접했던 세대의 팬덤 등이 꼽힌다. 이신영 롯데컬처웍스 팀장은 “어린이들의 전유물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20~40대 키덜트 관객까지 확장되는 등 애니메이션의 기반이 탄탄해졌다”며 “여기에 어린이들은 여전히 극장 경험을 즐기고 있고 이들을 포함한 가족 단위 관객도 꾸준히 극장을 찾고 있다”고 설명했다. 더핑크퐁컴퍼니 관계자는 “핑크퐁 유니버스의 인기 캐릭터들이 총출동하는 ‘베베핀 극장판’은 자녀의 ‘인생 첫 영화’로뿐만 아니라 전 세대의 감성을 아우르는 콘텐츠로 입소문을 타 재관람이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애니메이션의 흥행은 굿즈 판매와 지식재산권(IP)을 활용한 이벤트 등으로 이어지며 부대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어 업계는 애니메이션 시장에 더 주목하고 있다. 앞서 롯데시네마는 ‘퇴마록’의 세계관을 즐길 수 있는 이벤트를 비롯해 보틀, 부적 등 굿즈를 선보였다. ‘극장판 진격의 거인’ ‘킹 오브 킹스’ ‘엘리오’ ‘릴로 앤 스티치’ ‘극장판 베베핀’ 등도 굿즈를 선보여 수익으로 이어지고 있다. 김신영 팀장은 “‘귀멸의 칼날’처럼 원작 팬덤이 강력한 작품의 경우 극장의 특수관 상영 및 굿즈 마케팅이 더해지며 N차 관람을 하는 관객들도 많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특히 ‘킹 오브 킹스’의 북미 시장 성공에 주목해 글로벌 진출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애니메이션의 경우 영화와 달리 그림으로 표현된 인물에 대한 인종적 이질감이 덜하고 더빙을 해도 어색하지 않은 장르이기 때문에 자막의 장벽을 넘기에 용이하다는 판단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