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웹소설 ‘전지적 독자 시점(전독시)’은 코로나19 암흑기를 버티게 해준 작품이다. 약속이 불법이던 시절, 본편 551화를 내리읽고, 외전 연재를 기다리며 다시 읽었다. 10년간 인기 없는 웹소설의 유일한 독자였던 주인공 김독자가, 소설 속 재앙이 현실로 펼쳐지자 ‘혼자 줄거리를 아는 덕에’ 미션을 돌파한다는 설정부터 탁월했다. 서울 지하철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천상계, 마계로 뻗어가는 동안, 김독자는 끊임없이 ‘내가 할 수 있을까?’ 의심과 싸운다. “독자에겐 독자의 삶이 있다”, 믿으려 애쓰면서.
원작 팬이었기에 지난달 23일 개봉한 영화(사진)를 걱정 가득한 맘으로 봤다. 우려보다는 좋았다. 원작의 방대한 줄거리는 깔끔하게 정리됐고, CG(컴퓨터그래픽)로 그려낸 멸망한 세계의 살풍경도 볼만했다. 원작의 가장 큰 재미 요소인 ‘성좌’와 ‘배후성’이 제대로 그려지지 않은 건 불만이지만, 2시간이란 러닝타임을 고려해야 하는 제작진의 고충을 이해하기로 했다.
그럼에도 받아들이기 힘든 건 원작이 사람들을 매혹시킨 그 지점, 그 특별함을 영화가 놓쳤다는 사실이다. 제작진은 “비정규직 주인공이 약자들과 연대해 승리하는 이야기”라 했지만, 개인적으로 이 이야기를 ‘덕후들에 보내는 헌사’로 읽었다. 시간 낭비처럼 보이는 무언가에 깊이 빠져있던 시간이 나만의 비기(祕器)가 되어줄지 모른다는 희망.
소설 초반, 어룡을 물리친 독자는 말한다. “기이한 일이었다. 28년간 단 한 번도 도움이 되지 않았던 허구가, 이토록 평범한 나를 비범하게 만들어주다니.” 그래서 지나치게 평범해진 영화가 아쉽고, 집중포화 속에 조금은 비범해진 ‘전독시2’를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