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0년 이전만해도 사용자 인터페이스 디자인을 만드는 소프트웨어(SW) 시장은 '스케치'라는 맥OS 전용 도구의 독무대였다. 일부 통계에 의하면 스케치는 시장의 70%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독과점 지배자였다. 당시 디자이너들은 어도비(Adobe) XD 정도만 스케치의 경쟁자로 여겼으나, 시장점유율 격차가 워낙 컸기 때문에 실질적인 경쟁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2016년 이 시장에 새로 진입한 피그마(Figma)는 오랫동안 무명의 설움을 겪어야 했다. 그러다 2020년 경 클라우드를 본격 도입하고 이용자간 협업을 극도로 쉽게 만들었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순식간에 시장의 강자로 군림하기 시작했다. 기존에 레드오션으로 간주되었던 시장을 클라우드 도입과 함께 새롭게 정의하면서, 아직 미개척의 블루오션으로 바꿔 선점해 버린 것이다.
어도비는 2022년 피그마 인수를 공개 제안하고 협상에 돌입한다. 5개월 여 협상 끝에 2022년 9월, 어도비는 피그마를 약 200억달러(약 28조원)에 인수하기로 공식 발표했다. 이 인수는 디자인 SW 업계에서 상당히 큰 규모의 거래가 될 뻔 했다. 어도비는 자사의 기존 제품들과 피그마가 결합하면 막대한 시너지 효과를 일으킬 것으로 기대하고 과감하게 높은 가격을 제시한 것이다.
그렇다면, 피그마의 매력은 무엇이길래 어도비가 만사 제쳐두고 달려들었을까? 첫째, 클라우드를 기반으로 실시간 협업을 매우 쉽게 만들었다. 클라우드상의 협업은 인터넷 접속을 필요로 할 뿐만 아니라 다수가 함께 참여 하기에는 여전히 느리고 불편하다는 편견이 있었지만, 피그마는 그러한 우려를 불식시켰다. 둘째, 어떤 운용체계(OS)와 브라우저에서도 사용가능한 플랫폼 독립성, 공유와 피드백이 즉시 가능하고 버전 관리가 손쉽다는 점, 무료 버전과 교육용 버전을 제공해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다는 점이 돋보였다. 어도비 기존 제품군과의 연동성을 자랑했던 어도비 XD와 맥OS 전용 벡터기반 디자인 도구인 스케치는 피그마의 신속한 업데이트와 인공지능(AI) 기능 추가 등에 비해 사용자들에게 어필하지 못했다.
하지만 피그마와 어도비의 결합은 실패로 돌아가고 만다. 미국, 유럽연합(EU), 영국 등의 규제 당국으로부터 반독점 조사를 받게 되었고, 당국이 기업 결합에 대체로 부정적이라는 점이 시장에 알려지면서 결국 어도비는 피그마 인수를 완수하지 못했고 막대한 계약금도 날리게 된다.
피그마와 같은 파괴적 혁신의 사례는 다른 부문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에어비앤비는 숙박업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공간 공유 서비스로 만들었다. 우버는 택시를 이동수단 공유 서비스로 대체하고자 했다. 택시 서비스가 부실한 나라일수록 우버는 흥했다. 넷플릭스는 DVD 대여 시장을 개인 맞춤형 콘텐츠 스트리밍 서비스로 대체해 버렸다. 스포티파이는 음원 판매를 위한 온라인샵 역할에 그치지 않고 개인 맞춤형 플레이리스트 서비스로 어필했다.
우리 나라도 AI시대를 맞아 글로벌서비스의 강자를 키워낼 때가 되었다. 제조업에서는 강소기업을 많이 배출한 우리 나라가 왜 SW 기반 서비스업에서는 그러지 못하는 것일까. 스마트폰은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가진 우리 나라가 왜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애플리케이션(앱) 시장에서는 경제규모에 걸맞는 지배력을 가지지 못할까. 필자는 교육현장에서 지식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교육을 줄이고, 학생 스스로 무언가 만들어보도록 하는 프로젝트형 교과목을 늘려야 해결 가능하다고 본다. SW든 하드웨어든 학생 스스로 무언가 고안해서 실물로 만들어보는 경험을 가질 필요가 있다. 유치원에서 대학에 이르기까지 문제해결을 위한 자기주도 경험이 중요하다.
김장현 성균관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