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이 며칠전 "1945년 독립은 연합국의 승리로 얻은 선물"이라고 한 발언이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왔다. 한편에선 당장 파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다른쪽에선 불편하지만 딱히 틀린 말도 아니다고 옹호하고 나섰다. 옳고 그르고를 떠나 “조상들의 헌신과 희생정신을 되새겨야 할 광복절에 과연 독립기념관장이 이같은 언급을 하는게 적절한가” 라는 반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일제의 항복과 연합국의 승리가 패전국 식민지의 독립으로 이어진 건 사실이나, 그 이면에는 독립운동가들의 희생과 임시정부의 노력, 숱한 민초들의 끊임없는 저항이 있었음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미국의 참전이 승리의 결정타이긴 했으나, 유럽에서도 제2차 세계대전의 영웅 처칠은 어쨋든 스탈린과 더불어 히틀러에게 끝까지 굴복하지 않고 싸워 베를린을 정복시켰던 인물이다. 1953년 노벨문학상을 받기도 한 처칠에게도 사실은 통렬한 아픔이 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해군장관이었던 처칠은 오늘날 튀르키예 갈리폴리 전투에서 처참하게 패배해 정치생명이 끝나버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상대는 바로 오스만제국의 무스타파 케말 아타 튀르크가 아니던가. 이스탄불 인근 갈리폴리에서 세계 최강 영국 해군 중심의 연합군은 무려 25만 명의 사상자를 내고 결국 패퇴했다. “유럽의 병자인 오스만 따위가 감히 대영제국 해군의 적수가 되겠느냐”는 오만과 안이한 현실인식이 이러한 참사를 부른 것이다. 한참 시간이 흐른뒤 제2차대전이 터지면서 처칠은 정계에 컴백했으나 갈리폴리 전투는 평생 지울 수 없는 치욕이었음이 분명하다. 천하의 처칠조차도 냉엄한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오만에 빠지면 어떤 대가를 치르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런데 대한상공회의소, 한국경제인협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는 20일 서울 상의회관에서 '기업성장포럼 발족 킥오프 회의'를 개최했는데 이날 흥미로운 사실 하나가 발표됐다. 지난 20년간 한국의 10대 기업과 수출품목은 대부분 변화가 없는 반면, 미국은 엔비디아·애플 등 혁신기업이 10대 기업을 새롭게 채우며 산업 구조가 역동적으로 재편됐다고 한다. 실제로 미국(시가총액 기준)은 20년전 엑슨모빌, GE, 마이크로소프트(MS), 시티은행 등이 10대 기업을 차지했으나, 지금은 AI를 리드하는 엔비디아, 애플, 아마존, 알파벳 등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마이크로소프트를 제외하고 모두 바뀐 셈이다. 반면 한국(자산총액 기준)은 삼성, SK, 현대차, LG, 포스코 등으로 큰 변화가 없었고, HD현대, 농협이 새로 진입하는데 그쳤다. 국내 굴지의 기업들이 시대적 조류에서 뒤쳐지고 있다는 거다. 급격한 산업화 과정에서 낙오한 전북 또한 새롭게 도약할 것인지, 아니면 더 밀려날 것인지 다시 한번 선택지를 강요받고 있다. AI시대를 맞아 전북 산업생태계를 전면 재편해야 하는 작금의 상황에서 집단지성의 힘은 어떤 결론을 내릴까.
위병기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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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시대의 전북산업생태계
위병기 bkweeg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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