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한 교수의 정보의료·디지털 사피엔스]절대 반지와 팔란티르 구슬의 하드파워와 소프트파워

2025-11-20

팔란티어 테크놀로지스, 안두릴 인더스트리즈, 발라 벤처스, 에레보루, 미스릴 캐피털 메니지먼트, 렘바스 LLC, 바르다 스페이스 인더스트리즈, 나르야 캐피털. 이들 회사명이 상징하듯, 이제 실리콘벨리의 자본가와 테크 벤처 생태계를 이해함에 있어 톨킨이 저술한 신화 '반지의 제왕'의 톨킨적 세계관 이해는 필수불가결의 요소가 됐다.

지난 9월 폴란드 최대 군사 전문 매체 '디펜스 24'는 한국이 예상 못했던 방식으로 하드파워와 소프트파워를 모두 겸비한 강국으로 급부상했다는 기사를 실었다. 매체는 한국이 “K팝, K드라마로 세계 공연장을 가득 메우고 스트리밍 플랫폼을 점령한 문화 강국으로, 또 유럽, 중동, 아시아에 탱크, 자주포, 전투기를 공급하는 방위산업 강국으로 빠르게 변모했다”고 전했다.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는 “한국이 프랑스 뷰티 시장을 뒤흔들고 있다”면서 “혁신적이고 합리적인 한국 브랜드가 프랑스 소비자 선택지를 넓히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 러시아와 함께 오랜 기간 세계 3대 방산 수출 강국으로 유럽 군사기술을 선도해온 프랑스는 한국 방산의 급성장을 새로운 경쟁 위협이라며 경계감을 드러냈다.

폴란드, 노르웨이, 루마니아, 핀란드 등 동유럽 국가와 맺은 방산 계약들이 프랑스, 독일 등 기존 강국에 큰 충격을 안겨줬지만, 선진국에 갓 진입한 초짜 한국이 '젊음과 개방성'의 문화적 영향력인 소프트파워와 '갈등과 억지력'의 강대국형 방산이라는 하드파워 모두에서 급부상해버린 독특한 발전경로는 예상치 못한 사건이다.

두 힘 모두 한국 인지도와 명성을 높여 정치·경제 협력의 토대인 신뢰와 친숙함을 제공한다. 매체는 한국이 이러한 균형을 앞으로도 유지할 수 있을지 궁금해하면서 “한국이 이 두 힘을 상호보완적으로 유지함에 성공하면 21세기 독보적인 영향력을 가진 신형 강국 모델을 보여줄 것”으로 내다봤다.

톨킨적 세계관에 따르면 하드파워는 '힘이 세계를 강제하는 방식', 소프트파워는 '의미가 세상 구조를 설계하는 방식'이다. 물리적 결과는 우리 의지와 무관하게 발현되는 한편 우리를 행동에 나서게 하는 것은 정신적 상징적 구조다.

안보·자원·기술 등 물리적 기반이 취약해지면 정신세계는 무력하게 쇠퇴한다. 신뢰·정당성 등 정신적 기반이 취약하면 강제력은 눈먼 폭력일 뿐이다. 강제력과 지배의 힘, '절대 반지'로 상징되는 하드파워만 추구하면 어둠의 나락에 빠져들고, 정당성·설득력, 정신의 힘, '팔란티르 구슬'로 상징되는 소프트파워만 추구하면 아름답지만 변화가 정지된 세상이다.

'절대 반지'는 욕망을 부추겨 부·권력·기술에 의존된 인간은 의지 상실로 타락한다. '팔란티르 구슬'은 세상 모든 곳을 비추는 '투명한 눈'이지만 사우론은 구슬 일부만 보여줘 사람들을 속인다. 보는 자는 진실이라 믿지만, 본 것은 사실의 일부일 뿐이다. 인간은 오판으로 파멸한다. '절대 반지'는 우리의 내면을 잠식하는 힘, '팔란티르 구슬'은 외계를 왜곡하는 힘이다.

폴란드와 프랑스 매체의 질문처럼 한국이 이 두 힘의 상호보완성을 성공적으로 유지하여 새로운 21세기 신형 강국 모델을 보여줄 수 있을까? 톨킨적 세계관에서 인간이 살아가는 중간계는 하드파워와 소프트파워 사이에서 끊임없이 균형을 찾아가는 숙명적 세계다. 힘의 균형과 자유의지가 존재하는 세계다.

중간계의 인간은 죽을 수 있기에 혁신할 수 있고, 모험할 수 있고, 창조할 수 있고, 실패를 감수할 수 있다. '필멸'의 운명은 역설적으로 역동성과 역사성, 자유의지의 씨앗이다. 우리는 어떻게든 길을 찾을 것이다.

한편, 톨킨은 정반합적 '제3의 파워'를 설파한다. '아이눌린달레'는 세상의 규칙을 만드는 자, 알고리즘의 설계자, 플랫폼의 법제자인 '메타파워'다. 중간계에서 힘겹게 이루어온 '힘의 균형'과 '균형을 향한 의지'를 뒤흔드는 '메타파워' 균열이 이미 시작됐다. 지정·지경학적 갈등으로 촉발된 '팍스아메리카나의 균열'과 세상 규칙들을 다 다시 써 내려가려는 '인공지능(AI) 빅테크의 공습'이 폭풍처럼 거세다.

기억하라! 세상의 규칙이 무너질 때, 우리 미래의 향방은 '힘'이 아니라 '힘을 다루는 지혜'에 달렸다.

김주한 서울대 의대 정보의학 교수·정신과전문의 juhan@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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