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매장 쓸어담은 외국인들…“바나나우유·마스크팩 기념품 사듯”

2025-10-31

“이런 병 모양은 처음 봐요. 이렇게 작은 가게에 우리나라엔 없는 먹거리가 가득하네요”

지난 30일 경주 노서동 한 편의점 매장을 찾은 미국인 니콜 씨의 바구니에는 가공우유와 컵라면이 담겨 있었다. 함께 온 관광객들도 간편식 매대 앞에 한참을 멈춰 서서 도시락과 삼각김밥을 구경했다. 이 매장 직원은 “외국인들이 라면과 바나나맛우유를 마치 기념품처럼 사 간다”고 했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맞은 경북 경주가 ‘K소비 열풍’에 들썩였다. 외국인 관광객과 각국 사절단이 찾은 편의점 매대에선 가공우유·라면·김 등이 불티나게 팔렸다. 화장품 매장에선 한국산 마스크팩과 선크림을 고르는 외국인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31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25일부터 29일까지 APEC 행사장과 리조트 등에 자리잡은 GS25 편의점 10여 곳의 가공우유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40% 이상 증가했다. 소주·전통주(34%)와 김치(15%)도 큰 폭으로 상승했다. 당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방문하면서 경주의 외국인 유입세가 절정을 이룬 시기다. CU 역시 정상회의 주간 즉석라면(22%) 전통주(21%) 두유(27%) 제품들이 두각을 드러냈다. 세븐일레븐에서는 알리페이 등 외국인 결제 수단을 활용한 판매가 김스낵(5배) 떠먹는 요구르트(3배) 두유(2.5배) 순으로 급증했다.

외국인 소비자들은 본국에선 찾아보기 어려웠던 간편식과 간식류가 호기심을 자극시킨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CU에서 즉석오뎅(2.4배)이나 찐빵(29배) 판매가 폭증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GS25는 도시락·김밥·즉석오뎅·찐빵 같은 간편식(17.8%)이 주목받았다. 편의점 업계 관계자는 “정상회의 기간 한국적인 상품이 관심을 끌며 주류 제품도 소주·맥주뿐 아니라 전통주까지 주목받았다”면서 “행사 취재진과 관광객이 몰려 충전기를 비롯한 생활용품 매출도 폭등한 점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주요 관광지에 자리잡은 한국산 화장품점들도 정상회의 기간 쇼핑 명소로 자리잡았다. 같은 날 올리브영 경주황남점에서는 APEC에 참석한 해외 관계자들을 태운 검은색 승합차량이 종종 매장 앞에 멈춰 섰다. 상품 위치를 문의하는 외국어 말소리도 곳곳에서 들려 왔다. 29일 기준 이 매장의 매출 63%가 외국인으로부터 나왔다. 평소 20% 수준이었던 외국인 판매 비중이 APEC 주간 크게 치솟았다.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도 이 매장을 방문한 뒤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마스크팩과 선크림을 비롯한 한국 기초화장품 사진을 올렸을 정도다.

행사 기간 경주 지역 편의점과 화장품 매장 진열대는 한국 대중문화와 일상 상품을 보여주는 ‘쇼윈도’처럼 작용했다는 평가다. 앞서 국내 유통사들은 APEC 정상회의 기간 외국인 유입세를 겨냥해 현장 마케팅에 총력전을 펼친 바 있다. 세븐일레븐은 APEC 협찬사인 부창제과와 손잡고 호두과자류 디저트를 내세웠다. CU는 석가탑을 형상화한 책갈피나 단청 키링을 비롯한 기념품을 진열했다. GS25는 경주 보문단지 일대 매장에 ‘K푸드존’을 설치한 바 있다. 올리브영은 외국어 사용이 가능한 직원을 파견하고 휴대용 번역기도 비치했다.

경주를 찾는 외국인 인파는 당분간 지속적으로 유입될 전망이다. 정상회의 기간 이후에도 공연과 드론쇼를 비롯한 각종 연계 행사가 예정돼 있어서다. 다만 지역 소상공인들은 이 같은 소비 변화를 체감하기 어렵다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온도차는 쇠락한 구도심 상권일수록 더욱 뚜렷했다. 이날 구 경주역사 앞 ‘금리단길’ 상가들은 상당수가 공실로 비어있었다. 한 카페 사장은 “오전 내내 손님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사람이 적었다”면서 “지역 통행이 제한당하고 시내에서 정상회의 찬반 집회까지 열리는 통에 가게 매상이 오히려 줄었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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