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 외교부 장관은 8일 미국에서 구금된 한국인들이 석방 이후 재입국 시 불이익이 없도록 하는 문제와 관련해 "대강의 합의가 이뤄졌고 최종 확인 절차를 앞두고 있다"고 말했다. 자진 출국 방식으로 풀려나더라도 구금 사실이나 자진 출국 동의 등에 대한 기록이 남아 미국 재입국 시 불이익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데, 이를 방지하기 위한 협의가 진행 중이라는 의미로 풀이된다.

조 장관은 이날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긴급현안질의에서 '즉시 추방 또는 사실상 자진 출국 방식도 5년간 미국 입국 금지 조치를 받느냐'는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 질의에 "그렇지 않은 방향으로 협상이 잘 진행되고 있다"고 답했다. 박윤주 외교부 1차관도 "자발적 출국은 불이익이 적고 거의 없다시피 하다"면서도 "법률 위반 정도에 따라 (개인마다) 영향이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상용 비자(B-1)가 아닌 전자여행허가제(ESTA)를 소지한 상태로 체포된 경우 "조금 더 엄격하다고 알고 있다"고 박 차관은 답했다. 박 차관은 ESTA 소지자의 경우 자진 출국이 아닌 '강제추방'이나 '이민법원 재판'을 받는 두 가지 선택지만 있는 게 맞느냐는 강선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의에 "크게 봐서 그렇게 알고 있지만 세부적인 법령은 살펴봐야 한다"라고도 답했다. ESTA 소지자의 자진 출국을 위한 협상이 쉽지 않을 수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실제 이민법 전문가들 사이에선 B1 비자가 아닌 ESTA로 미국에서 근무했다면 추후 재입국이나 비자 발급이 어려워지는 등 불이익 가능성이 클 수밖에 없다는 의견이 상당하다.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이 된 비자 문제와 관련해 조 장관은 "좋은 방향으로 E-4 (비자)나 쿼터 또는 두 개를 다 합해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협상해보겠다"고 답했다. E-4 비자는 2012년부터 외교부가 신설을 추진 중인 '한국인 전문인력 대상 취업비자'를 뜻하는데 매년 관련 법안이 미 의회 문턱을 넘기지 못했다. 이와 함께 조 장관은 미국의 기존 전문직 취업비자(H-1B)에 대해서도 국가별 별도 쿼터에 한국을 포함시키는 방안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질의에선 조지아주 구금과 유사한 사례가 재발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강선우 의원은 조 장관에게 "미국 테네시스주에서도 미국 수사당국이 한국 공장 직원 명단을 확보했다는 사실을 아느냐"고 물었다. 이에 조 장관은 "미국 내 총영사관 전체에 상황을 공유했고, 우리 기업과 공유하고 경고하고 있다"고 답했다.
미국 내 신설·증설 중인 공장이 몇 개인지를 묻는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의 질의에 조 장관은 "소위 사업장이 2000개가 넘는다고 보고를 받았다"며 "한·미 정상회담에서 대규모 투자 요청에 우리가 화답했으며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비자 문제가 선결 과제라는 것을 미국 측에 강조하겠다"고 말했다.

조 장관은 오는 10일(현지시간) 조지아주에서 전용기를 타고 구금됐던 한국인들과 함께 귀국할 가능성도 있다. 조 장관은 이날 미국 출국을 이유로 외통위를 도중에 이석했는데 이에 대한 사유를 제출하면서 9일엔 '미 행정부 고위 인사 면담', 10일엔 '인천 향발'이라고 밝혔다. 윤후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국인 300명과 전용기로 같이 귀국하느냐"고 묻자 조 장관은 "그것도 염두에 두고 있다"며 "워싱턴에서 협의 상황도 봐야하고 조지아에서 전용기가 뜨는 것도 봐야 할 것"이라고 답했다.
한편 조 장관은 한·미 정상회담 합의문이 나오지 않은 이유를 묻는 김건 국민의힘 의원의 질의에 "일부라도 합의가 되는 건 일단 발표하는 것을 추진했다"며 "다만 미국이 가장 중점을 두는 투자 부문에서 국민의 큰 부담이 될 수 있어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답했다.
이날 외통위에는 정동영 통일부 장관도 출석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참석했던 지난 3일 중국 전승절(戰勝節·항일전쟁 및 반 파시스트 전쟁 승리 80주년 대회) 관련 질문에 답했다. 정 장관은 전승절 열병식에 북·중·러 정상이 나란히 선 것과 관련해 "국력에 비하면 북한 외교력은 대단하다"며 "상징적 측면에서 북한은 대단한 외교적 성과를 거두었다"고 말했다. 다만 북·러가 한국 안보를 위협하는 불법 군사협력을 이어가고 중국 또한 지난 4일 북·중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언급을 누락한 상황에서 정부 고위 당국자가 김정은의 전승절 참석을 "대단한 외교적 성과"라고 평가한 건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앞서 김정은은 지난 4일 북·중 정상회담에서 "국가의 주권과 영토 완정(完整·완전하게 갖춤), 발전이익을 수호하기 위한 중국 공산당과 정부의 입장과 노력을 전적으로 변함없이 지지 성원할 것"이라는 입장도 밝혔다. 이에 대해 정 장관은 "대만 침공을 지지한다는 발언으로 된다"며 "굉장히 예민한 문제여서 섬세하게 다뤄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의 핵심 이익인 대만 문제에 대해 "북한이 대만 침공을 지지했다"라고 정부 고위당국자가 공개적으로 해석한 것이라 눈길을 끈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심석용 기자 shim.seokyo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