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속 노동자 보호, 법적 의무다

2025-06-19

올해는 어느 정도 더울까. 작년보다 덜 더울까. 2024년 폭염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더웠다. 주위에서 누구든 건드리면 확 터질 것 같은 후덥지근함이었다. 기온도 기온이지만 습도까지 더해져 체감온도는 역대 최고로 높았다. 작년 여름철 폭염일수는 20일로 역대 3위, 열대야 일수는 20.2일로 역대 1위를 기록했다. 최근 6년간 폭염경보가 평균 12.2일(한파경보 5.8일)임을 고려하면 극심한 무더위를 더 걱정해야 하는 현실이다. 과연 올해 7월과 8월에는 폭염경보 문자가 몇번이나 발송될까. 사실 2004년 개봉한 영화 <투모로우>는 인류의 탐욕이 초래한 모습과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잘 보여준다.

지구 표면의 온도 상승은 폭염과 한파도 증가시킨다. 이미 지구의 기온은 산업화 이전(1850~1900년) 대비 1.09도 상승했다. 현재와 같은 양상이 계속된다면 산업화 이전보다 폭염 발생 빈도(8.6배)와 강도(+2.0도)가 높아진다. 기후위기는 노동생활 세계에도 적지 않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점점 더 뜨거워지는 여름, 더욱 위험해질 작업환경에 모두가 걱정해야 할 상황이다. 일하기에는 너무 더운 정도가 어느 수준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국제기구(ILO, WHO)는 35도를 넘는 폭염에서는 질병 위험이 증가하고, 노동력 및 노동생산성이 감소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온열지수에 따른 고열 작업환경 관리지침은 우리가 기후위기 시대에 접어든 현실을 잘 보여준다.

한국의 월별·작업강도별 계속작업 가능일은 7월과 8월에는 단 하루도 없다. 매시간 75% 작업과 25% 휴식이 가능한 날도 7월과 8월은 겨우 1일과 2일에 불과했다. ‘역대급 폭염과 한파’를 겪고 나서도 시간이 지나면 과거를 망각한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전 세계 노동자의 70% 이상이 폭염에 노출될 것을 경고했다. 주위를 둘러보면 옥외 작업자들이 적지 않다. 건설·조선, 도로정비, 환경미화, 전기통신, 운송·배달 노동자들이 대표적이다. 폭염으로 기온이 1도 오르면 총사망률이 4%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도 발표됐다. 실제로 최근 5년간 온열질환으로 인해 총 115명의 재해자가 발생했고, 그중 12명이 사망했다.

지난해 9월 국회는 산업안전보건법에 폭염·한파에 따라 발생하는 건강장해를 예방하기 위한 사업주 보건조치 의무를 추가했다. 문제는 지난 5월 규제개혁위원회가 법령 시행에 따른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개정안을 철회시킨 것이다. 체감온도 33도 이상 폭염 때 2시간 이내 20분씩 휴식 보장 의무화 조항조차 받아들이지 않았다. 2018년부터 가이드라인 형태의 ‘권고’를 개정해 처벌 가능하도록 한 것을 무력화했다. 기업이 비용 부담을 우려해 안전조치를 외면한 것과 다르지 않다. 일터에서 작업중지를 하더라도 그 기간은 여름 90.7시간, 겨울철 43시간 정도다.

이제 폭염·한파 등 기후변화에 노출되는 작업에선 생명 안전과 산재 위험으로부터 노동자들을 보호하는 것이 필수다. 1981년 ILO는 산업안전보건협약(C155)에서 위험 작업 상황의 즉시 보고와 작업 복귀 금지 및 대피권을 규정한 바 있다. 대한민국은 이 협약을 2008년 2월에 비준했다. 일터에서의 위험으로부터 ‘피할 권리’ 혹은 ‘벗어날 권리’는 새 정부가 반드시 법제도화해야 할 과제다. 국민주권 시대에 일터에서의 노동안전은 새로운 사회계약의 출발점이다. 정부의 작업중지 명령, 사업주의 작업중지·대피 조치, 노동자의 작업중지권 보장이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폭염은 햇볕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한 채 일하는 사람들에게 치명적이다. 매일 기후위기의 최전선에 서 있는 노동자들을 위해 ‘더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자. 점점 더 커지는 위험에 대처하기 위해, 작업할 수 있는 최대 온도와 습도를 명시할 시점이다. 날씨는 저임금·불안정 노동자들에게 더 가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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