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은 또 한 번의 중대한 선택 앞에 서 있다. 대선정국이 본격화되면서 후보들은 수많은 공약을 쏟아내지만, 유권자인 국민은 피로감을 호소한다. 정치가 갈등을 조정하기보다 오히려 갈등을 증폭시키고, 다름을 포용하기보다 배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정치는 상대를 향한 비판과 자기확신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서로 다른 의견이 함께 살아가는 '차이의 공존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이 건강하게 작동하려면 소통과 경청이라는 숨구멍이 열려 있어야 한다. 경청은 정치의 미덕이 아니라 필수조건이며, 국민과 연결되는 유일한 다리다.
필자 또한 오랜 공직과 대학운영의 경험 속에서 효율과 단호한 결정을 중시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깨닫게 되었다. 내가 옳다고 믿었던 확신이 주변의 다양한 목소리를 지우고, 소중한 관계를 단절시키기도 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사람은 평생을 살아가며 자신이 옳다고 믿는다”는 말은 나의 과거를 비추는 거울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자신이 틀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보다, 늘 자신의 논리와 관점에 갇혀 산다. 이 인식의 전환이 없이는 어떤 진정성 있는 소통도 이루어지기 어렵다.
정치도 다르지 않다. 국민은 더 이상 일방적인 메시지나 구호를 원하지 않는다. 국민이 진심으로 바라는 것은 “내 이야기를 들어달라”는 요청에 진정성 있게 응답하는 정치다. 설득은 기술이지만, 경청은 태도다. 국민의 삶을 이해하지 못하고서는 실현 가능한 공약도, 지속 가능한 비전도 만들 수 없다.
진정한 경청은 자신의 오류 가능성을 받아들이는 겸허한 자세에서 출발한다. 그것은 상대에 대한 존중으로 이어지고, 결국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으로 연결된다. 지금 정치권에 필요한 것은 더 큰 소리나 강한 주장보다, 더 많은 이해와 연결이다. 더 많은 말이 아니라, 더 깊은 귀다.
진정한 앎은 자신과 세상 사이의 관계를 자각하는 데서 시작된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국민과의 관계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자신과 민심 사이의 간극을 느끼지 못하는 정치, 들을 줄 모르는 정치는 결국 국민으로부터 멀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정치인들에게 이렇게 묻는다. “당신은 지금, 국민의 말을 진심으로 듣고 있는가?”
지금 우리 사회는 분열과 단절을 넘어, '홍익공생'의 시대로 나아가야 한다. 그 출발점은 거창한 개혁이 아니라, 한 문장에서 비롯된다. “나는 틀릴 수도 있다.” 이 말이야말로 정치의 귀를 열고, 우리 사회에 새로운 길을 열어줄 것이다.
공병영 글로벌사이버대 총장 겸 한국원격대학협의회장 gby33@hanmail.net
◆공병영 글로벌사이버대 총장 겸 한국원격대학협의회장=대통령비서실 교육문화수석실 행정관.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실 비서실장, 교육부 교육안전정보국장, 충북도립대 6~7대 총장을 거쳤다. 현재 글로벌사이버대 총장을 맡고 있으며, 한국원격대학협의회장도 겸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