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융당국이 부동산 시장 안정을 위해 주택담보대출인정비율(LTV) 규제를 강화한 가운데 LTV 축소가 자산 불평등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한국은행의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이창용 한은 총재가 새 정부의 금융감독체계 개편을 계기로 거시건전성 정책 참여 확대를 요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연구 결과라 주목된다.
한은은 5일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와 공동으로 연구한 보고서에서 고소득층 LTV 한도를 70%에서 40%로 낮추고 저소득층 대출이자 감면 정책 및 고가주택 보유세 인상을 시뮬레이션했다.
고소득자 LTV 40% 적용에 대한 시뮬레이션 결과 가계부채는 22.2% 감소했지만 자가보유율은 9.9%포인트 낮아졌다. 반대로 주택자산 지니계수는 16.4% 상승해 자산 불평등이 심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무주택자와 청년층은 대출 여력이 부족해 내 집 마련에서 더욱 소외되는 반면 현금 유동성이 풍부한 계층은 상대적으로 유리해지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전문직 청년, 맞벌이 신혼부부 등 ‘고소득·저자산’ 계층이 가장 큰 타격을 입는 셈이다. 대형·고가 주택(상위 3%)에 높은 세율을 적용할 경우에도 자가보유율 하락, 지니계수 상승 등 유사한 역효과가 나타났다.
반면 저소득층 대출이자 감면 정책에서 대출 금리를 0.55%포인트 낮춰주면 자가보유율은 3.5%포인트 높아지고 주택자산 지니계수는 5.3% 하락해 분배 개선 효과가 확인됐다. 다만 가계부채가 9.5% 증가해 금융 불안 가능성이 커지는 부작용도 드러났다.
연구진은 “LTV 강화는 금융안정에 기여하지만 불평등을 악화시킬 수 있고 이자 지원은 분배 개선에는 효과적이나 금융리스크를 키울 수 있다”며 “규제와 지원을 균형 있게 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번 연구는 금융감독 지배구조 개편 논의와도 맞물린다. 이창용 총재는 지난 7월 통화정책방향 회의 후 기자간담회에서 “20년 넘게 가계부채가 줄지 않고 최근 프로젝트파이낸싱(PF) 문제가 불거진 것도 거시건전성 정책이 제대로 집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기획재정부·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과 함께 한은도 거시건전성 정책에 참여해 강력히 집행할 권한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금융안정 문제는 은행보다 비은행에서 많이 발생하고 있어 한은의 공동 검사·조사 권한을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한은이 거시건전성 정책에서 역할이 커질 경우 금융위와의 정책 엇박자 가능성도 제기된다. 금융위는 6·27 부동산 대책에서 주담대 한도를 6억 원 이하로 제한하는 등 규제를 강화했는데 이번 한은의 연구 결과는 부작용을 지적해 다소 상충되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이억원 금융위원장 후보자는 최근 국회 인사청문회 서면 답변에서 “LTV 규제 강화는 가계부채 관리와 주택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