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말 자부심을 가져도 됩니다. 천천히, 하지만 분명히”
지난 2024년 7월, 박진영 JYP엔터테인먼트 대표 프로듀서가 그룹 엔믹스(NMIXX)를 두고 한 말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대중의 반응은 반신반의였다. 엔믹스가 데뷔 후 줄곧 밀어온 ‘믹스 팝’(MIXX POP)이라는 장르가 여전히 낯설게 들렸기 때문이다.

있지(ITZY) 이후 3년 만에 JYP엔터테인먼트가 선보인 걸그룹 엔믹스는 다채로운 장르를 한 곡에 담는 ‘믹스 팝’을 자신들의 음악 정체성으로 내세우며 출발했다. 데뷔 곡 ‘O.O’를 시작으로 ‘DICE’, ‘Love Me Like This’, ‘DASH’ 등 엔믹스는 자신들의 장르를 꿋꿋하게 유지해왔지만 이들에게는 줄곧 ‘장르가 난해하다’, ‘대중성이 떨어진다’ 등의 평가가 뒤따랐다. 떠오르는 명확한 대표곡이 없다는 지적도 나왔다.
때문에 같은 시기 데뷔한 에스파, 아이브, 르세라핌, 뉴진스 등 4세대 걸그룹들이 연이어 대중적 히트를 기록하는 사이, 엔믹스는 상대적으로 더디게 성장했다. 박진영 프로듀서의 발언 직후 나온 미니 3집도 팬들에게는 호평을 받았으나, 대중적 반향은 크지 않았고 차트 상단에 이르지 못했다. 박진영의 말은 자사 아티스트에게 자신감을 북돋아주는 ‘격려’ 정도로 여겨졌으며 팬들 역시 반복되는 음원 성적 부진에 대한 아쉬움을 숨기지 못했다.

하지만 2025년 10월, 박진영의 말은 ‘예언’이 됐다. 지난 13일 엔믹스가 발매한 새 앨범 ‘Blue Valentine’(블루 밸런타인)과 동명 타이틀곡은 공개 일주일 만에 음원 사이트 멜론 톱 100 1위에 올랐다. 엔믹스가 데뷔 이후 처음으로 거둔 ‘음원 1위’다.
차트 장기 집권 중이던 ‘케이팝 데몬 헌터스’ OST ‘Golden’과 1위를 두고 엎치락뒤치락 경쟁하던 ‘블루 밸런타인’은 28일 0시 기준 톱 100과 일간 차트 모두에서 1위를 유지 중이다. 벅스, 플로 등 다른 국내 주요 음원 사이트에서도 연일 1위를 달리며 고공행진 중이다.

음악방송 성적도 호조다. 지난 22일 MBC M ‘쇼! 챔피언’을 시작으로 엠넷 ‘엠카운트다운’, KBS ‘뮤직뱅크’, MBC ‘쇼! 음악중심’, SBS ‘인기가요’ 등 일주일만에 ‘5관왕’을 달성했다. 대형 아이돌 그룹의 컴백이 예정되지 않은 상황이라, 엔믹스의 독주는 이어질 전망이다.

사실 엔믹스의 강세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간 엔믹스는 음원 성적과 별개로 ‘육각형 그룹’이라는 평을 받아왔다.
해원은 다양한 예능에서 센스를 뽐내며 ‘JYP 차세대 예능돌’로 주목받았고, 설윤은 에스파 카리나·아이브 장원영·있지 유나와 함께 ‘장카설유’로 불리며 4세대 걸그룹 대표 비주얼 라인에 이름을 올렸다.
특히 메인 보컬인 릴리와 해원 뿐만 아니라 엔믹스 멤버들이 여러 방송을 통해 보여준 보컬 능력은 걸그룹 중에서도 손꼽히는 수준이다. 박진영 프로듀서가 늘 강조하던 “핸드마이크를 들고 노래하며 춤출 수 있는 아이돌”의 기준을 가장 충실히 구현해온 팀이기도 하다.
결국 그동안 쌓아온 실력과 꾸준함이 대중성과 만나며 ‘정체성의 결실’을 맺은 셈이다.

김윤하 대중음악평론가 역시 엔믹스의 이번 앨범에 대해 “엔믹스만의 독특함과 JYP 특유의 대중 감각을 잘 섞어냈다”며 “타이틀 곡이 제 몫을 다하면서 수록곡 역시 어디 하나 빠지는 것 없이 제자리에서 힘을 내주는 앨범”이라고 평가했다.
데뷔 3년 8개월 만에 ‘자체 서사’를 완성한 엔믹스는 오는 11월 29일 인천 인스파이어 아레나에서 첫 번째 월드투어 ‘EPISODE 1: ZERO FRONTIER’(에피소드 1: 제로 프론티어)를 시작으로 글로벌 행보에 나선다. 엔써(엔믹스 팬덤명)들이 그토록 원했던, ‘엔믹스 붐’은 이제 막 시작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