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7일 서울 서부의 한 주택가. ‘2025 인구주택총조사’ 명찰을 걸고 반장갑을 낀 손엔 태블릿PC를 든 40대 조사원 박모씨가 ‘직장 이름’을 묻자 응답자가 날 선 반응을 보였다. 앞선 두 집에 사람이 없어 세 번째 만에 겨우 현관에 들어선 참이었다. 박씨는 취지를 상세히 설명하고 가까스로 조사를 마쳤다. 그는 “어제도 60대 남성에게 이혼 여부를 묻자 ‘사생활을 왜 묻냐’며 화를 냈다”고 말했다. 일부 조사원들은 폭언을 듣고 문전박대를 당하거나, 폭행·성희롱 등의 위험에 노출되기도 한다.
인구총조사는 정책 수립과 학술 연구에 활용할 목적으로 5년에 한 번 실시된다. 올해는 지난 1일 시작해 오는 18일까지, 국민의 20%를 표본으로 인터넷·전화·방문조사 방식으로 이뤄진다. 투입되는 조사원은 2만9828명에 달한다.

방문조사의 경우 조사원이 집집이 찾아가 방 개수, 이혼 여부, 학력과 직장 등 민감한 문항을 캐묻다 보니 응답자들이 귀찮아하거나 나아가 반발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엔 ‘기분 더럽네, 이게 무슨 인구 조사야 개인정보 파는 거지’ ‘국민을 범죄자 취급한다’ 등의 후기가 잇따른다.
“돈 달라” 요구에 성적 접촉도

때문에 조사원들의 고충도 크다. 부산의 20대 조사원 A씨는 “‘조사에 응할 테니 담배 사와라, 돈을 달라’는 말을 들었다”며 “같은 지역 조사원 여사님 중엔 성적인 접촉을 당한 분도 있다”고 했다. 또 실거주 확인을 위해 폐가 같은 으스스한 분위기를 풍기는 집안에 직접 들어가야 해 무서웠다고도 전했다. 경기 화성시 조사원 50대 김모씨는 “요새 보이스피싱 피해도 크니 QR코드를 붙여놔도 수상해서 열지 않는다. 협조율이 너무 낮다”고 토로했다.
응답자가 도 넘은 반응을 보여도 조사원이 취할 수 있는 대응 방안은 마땅치 않다. 국가데이터처(구 통계청)는 10일 보도참고자료를 통해 “손전등·호루라기 등 안전용품을 지급하는 등 통계조사원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A씨는 “소지한 태블릿 PC에 비상상황 버튼이 있어도 경찰에 신고할 수준이 아니라면 활용하기 어렵다”며 “이틀간 사전 교육을 받지만 대학 전공책 같은 행정적 내용이 대부분이고 실무와 동떨어져 있어 실제 일하며 겪는 어려움은 예측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조사원 5명에 1명꼴로 업무를 중도 포기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지난 2020년엔 조사원 2만2583명 중 4109명(18.2%)이 도중에 일을 그만뒀다.

“정부 행정 자료 정비해 ‘등록 센서스’ 확대해야”
이런 갈등이 5년마다 되풀이되면서 전통적인 방문조사 방식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덴마크나 노르웨이 등에선 주민등록부, 학적부같이 이미 수집된 정부 행정 자료를 통합 분석해 인구 현황을 파악하는 ‘등록 센서스’ 방식을 쓰고 있다. 한국의 경우 행정자료로 대체한 항목이 지난 2020년 10개에서 올해 55개 항목 중 13개로 약간 늘었다.
전광희 충남대 사회학과 명예교수(전 한국인구학회장)는 “응답자 협조가 어려워질수록 조사 품질도 점점 낮아진다”며 “초중고 졸업 여부 같은 교육 상태, 실업·고용 상태 등을 반영한 경제활동에 관한 정부 행정 자료를 정비하고 이를 인구총조사에 활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만 수시로 작은 규모의 현장조사를 한다면 응답자 부담도 줄어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가데이터처 관계자는 “조사 항목을 조금만 바꿔도 시계열이 틀어져 데이터를 활용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에 조심스러운 측면이 있다”며 “5년간 사회 변화에 맞춰 문항 수정 연구를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