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닝 사태, 게으른 대학의 사기극

2025-11-11

연세대와 고려대에서 최근 잇따라 터져 나온 커닝 사건을 접하고 든 생각은 "어이없음"이었다. 해당 과목 교수 등이 개탄했듯 "명문 사학에서 (신뢰를 어기고 정직하지 못해) 이런 일이 발생한 데 대해 큰 충격을 받아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정반대로, 명문대 자부심에 걸맞지 않게 교수와 대학 모두 어쩜 이리 게으르고 무책임한가 싶어 실소만 나왔다.

명문 사학 무색 수백 수천 명 강의

학생은 그저 돈벌이 수단이었나

자성 대신 학생 탓 대학 부끄럽다

오해 마시길 바란다. 학생들의 부정행위를 두둔하려는 게 아니다. 또 교수가 수업을 소홀히 했다거나, 전공 실력이나 공정성 여부를 가늠할 별다른 정보도 없다. 다만 학생들의 부정행위 의심사례를 두고 무슨 냉전 시대 간첩 잡듯 "자수 안 하고 발뺌하면 유기정학을 추진하겠다"며 윽박지르기 전에, 속칭 '지성의 전당' 대학이라면 응당 먼저 나왔어야 할 자성의 목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기에 하는 말이다.

이번 사태는 하나하나 짚어볼 대목이 정말 많다. 우선 수강인원수부터 정말 놀랍다. 문제가 불거진 연세대와 고려대 수업의 수강 학생은 각각 600명과 1434명이었다. 코로나 같은 감염병 비상시국도 아닌데, 명문대라면서 동네 주민센터 무료 강좌만도 못한 수백 수천명짜리 전면 비대면 동영상 수업과 시험을 강행해온 게 믿기지 않는다. 조교가 몇 명이든 교수 한 사람이 책임지고 이 많은 학생의 수업 진행과 시험, 성적 처리를 제대로 하긴 어려웠을 거다. 커닝 사태가 터지지 않았더라도 출발부터 구조적인 문제가 있었다는 얘기다. 비대면에 걸맞은 시험 설계나 부정행위 방지 장치 마련 등은 다 부차적 문제다.

특히 연세대의 경우, 교양 수업인 고려대와 달리 인공지능융합대학의 3학점짜리 전공선택 과목이었다. 이쯤 되면 아무리 열악한 사학 재정을 고려하더라도 대학의 무성의를 넘어 등록금 내고 다니는 학생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없다 하겠다. 실제로 대학생 커뮤니티 앱 '에브리타임'(에타)을 보면 "제대로 된 시험환경(대형 강의실)을 제공받지 못해 교육과 평가 질이 떨어졌다, 수강인원을 대폭 줄여야 한다"는 평가가 꽤 있다. 교수 인건비와 강의실 운영비 아껴보겠다고 대학이 고쳐야 할 잘못된 점을 여태 외면하다 커닝한 학생한테 연신 손가락질만 해대는 걸 보니 본말이 전도된 게 아닌가 싶다.

물론 학생 잘못도 있다. 에타엔 진작부터 "비대면 시험 방식이 유지된다면 이보다 '꿀강'(쉽게 좋은 학점 따는 강의)이 없다"라거나 "전부 동영상 강의, 총 2개 틀리면 에쁠(A+) 그 밑으로 바로 B라 아찔하지만 정말 편하다""시험공부 안 했는데 A+"라는 강의평가가 많았다. 학생은 쉽게 학점 따고 교수와 학교는 저비용으로 3학점 수업 때워 좋은, 그렇게 비정상적인 편법 공생을 이어온 셈이다.

하지만 전공 수업을 600명 전면 비대면으로 진행하면서 급변하는 교육환경에 맞는 평가 방법 고민조차 안 한 걸 보면 둘의 공생을 싸잡아 비판하기보다, 대학 잘못을 더 신랄하게 지적할 수밖에 없다. 학생을 가르친다는 명목을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돈벌이 수단으로만 삼은 게 아니었는지 묻고 싶을 정도다.

마지막으로, 강의 제목이 참 아이러니하다. 연세대 전공선택인 이 과목 이름은 '자연어처리와 챗지피티'. 수업계획서를 찾아보니 '최신 딥러닝 기법을 중심으로 자연어처리(NLP)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를 제공. …기계가 인간의 언어를 처리하고 이해하며 생성하는 방식에 대해 개념적이면서도 실용적인 이해를 얻게 될 것'이라고 써놨다. 첨단 AI 관련 수업을 기존 관성에 따라 전근대적으로 평가하면서 문제를 키웠다.

AI 시대, 전문가는 입 모아 말한다. "앞으로의 학습은 즉답 가능한 지식이 아닌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우는 것"이라고. 그런데 대학이 급변하는 기술 트렌드 따라잡을 노력은커녕 이렇게 게으르고 무성의하게 암기 지식 욱여넣으면서 학생 돈 쉽게 가져다 쓸 궁리만 한다면 명문 사학 아니라 서울대의 할아버지라도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다. 아마 이런 위기의식도 못 느끼고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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