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실가스·빈곤 경쟁관계 접근
이분법 논리 이해하기 힘들어
제로섬 게임은 ‘관심’에만 국한
괜한 저울질 ‘변심’ 오해 불러와
“20년 전만 해도 나는 기후변화에 관해 책을 쓰기는커녕 공개 석상에서 강의할 거라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 기후변화에 대한 내 관심은 에너지 빈곤이라는 문제를 고민하다 생겼다. … 우리는 10억여 명의 사람들이 안정적인 전기를 공급받지 못한다는 것과 그중 절반가량이 사하라사막 이남의 아프리카에 산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 나는 또한 기술 찬양론자다. 내 앞에 놓인 문제를 보면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술을 찾을 것이다.”(빌 게이츠 ‘기후재앙을 피하는 법’)
성공해서 좋은 점 중 하나는 그 사람의 말을 모두 귀담아듣는다는 것 아닐까. 사람들은 수능 만점자의 학습법, 1등 최고경영자(CEO)의 경영철학 같은 본류뿐 아니라 그들의 어린 시절, 취미, 좋아하는 책 같은 주변부 이야기에서도 의미를 찾으려 애쓴다. 하물며 세계 최고 부자로 꼽히는 사람이야 말할 것도 없다. 그들은 본업이 아닌 영역에서도 구루의 후광을 얻고, 그들의 생각은 곧잘 정언명령처럼 받아들여진다.

세계 최고 기업을 이끌고, 막대한 부로 빈곤 퇴치에 뛰어든 게이츠는 2000년대 후반부터 기후 문제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가 그간의 고민과 활동을 모아 만든 책이 ‘기후재앙을 피하는 법’이다. 그는 기후 전문가도, 환경 운동가도 아니지만 어느새 기후 무대의 든든한 버팀목으로 여겨졌다.
그랬던 그가 제30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30)를 앞두고 블로그에 올린 한 편의 글 때문에 ‘변심’ 논란이 일었다. ‘기후에 관한 세 가지 냉혹한 진실’이라는 제목의 긴 글을 요약하면 ‘기후변화는 심각하지만 인류 문명의 멸망을 가져올 정도는 아니며, 온도에만 집착하지 말고 빈곤층의 건강 등 삶의 질을 기후정책 최우선 목표로 두자’는 것이다. 기후변화를 지극히 인간 중심에서 해석한다는 점에서 나 개인적으로 썩 동의가 되지는 않지만, 그의 이런 주장이 변심이라고는 느껴지진 않는다.
책에서도 밝혔듯 그는 빈곤문제의 연장선에서 기후문제를 고민해 왔으며, 기술로 기후재앙을 피할 수 있다는 낙관론을 견지해 왔다. 그는 한결같이 투자자 겸 자선사업가로서 기후문제를 바라봐 왔고 이번 글도 그렇다. 달라진 부분이 있다면, 이번엔 온실가스 감축과 빈곤 퇴치라는 과제를 저울에 올려 경중을 재려 했다는 점인데, 변심 여부보다 더 큰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온실가스와 빈곤을 파이 하나를 놓고 경쟁하는 관계로 그린 것이다.
이른바 ‘잘못된 이분법’ 비판이 쏟아지자 게이츠는 지난 3일 캘리포니아 공대 학생 1000명 앞에서 진행된 미국 온라인 매체 악시오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해명했다. “도대체 그들은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 겁니까? 저소득 국가에 제공되는 해외원조 예산은 기후와 보건 사이에서 선택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건 아주 제한된 자원 속에서 펼쳐지는 숫자 게임입니다.”
자본주의는 자본이 자본을 낳게 하는 시스템이다. 100만원을 투자해 이익이 나면, 그걸 재투자해 생산능력을 확대하며 자본을 축적한다. 30년 가까이 글로벌 시가총액 선두권을 고수하고 있는 마이크로소프트는 부의 증식을 이끈 대표적인 기업이며, 그 창업자인 게이츠야말로 기후 대응과 빈곤 퇴치로 향하는 파이를 키울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런 그가 “온난화와 빈곤이 정해진 예산을 놓고 경쟁할 수밖에 없다”는 식의 논리를 편 것은 큰 실망이 아닐 수 없다. 특정 시점, 특정 지역에서 두 문제는 한정된 자원을 놓고 다투기도 하겠지만,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자원의 크기는 점점 커져야 한다. 둘은 제로섬 게임을 벌일 이유가 없다.
진짜 제로섬인 건 ‘관심’이라는 자원일지 모른다. 사회문제 해결에 사회적 관심은 매우 중요한 요소다. 하지만 우리의 하루는 24시간이기에 관심은 물리적으로 시간의 제약을 받고 시간에 따른 휘발성도 강하다. 중요한 국면에서 프레이밍 전쟁이 펼쳐지는 건 관심이라는 희소한 자원을 획득하기 위한 방편이다. 게이츠는 기후와 빈곤을 저울에 올려놓는 바람에 ‘변심했다’는 오해를 샀을 뿐 아니라 마치 기후부정론에 힘을 실어준 것처럼 오독까지 불러일으키며 두 문제가 받아야 할 관심을 흐트러뜨렸다. 성공한 사람의 말은 늘 주목받지만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다.
윤지로 비영리 미디어단체 클리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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