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학에서 특이점(singularity)이란 온도·밀도 등의 물리량이 무한대로 발산해 기존 물리 법칙이 붕괴하는 지점을 의미한다. 빛조차 탈출하지 못하는 블랙홀 내부가 특이점의 대표적 사례다. 미래학자 레이먼드 커즈와일은 특이점이란 개념을 사회과학에 응용해 인공지능과 첨단기술이 인간의 지능을 초월해 통제 불가능한 변화가 시작되는 시점이란 의미로 사용했다. 커즈와일은 2045년에 ‘초지능’이 등장하고 인류는 기계와 융합해 호모 사피엔스의 역사가 특이점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비상계엄 사태가 정치 붕괴 촉발
민주당 일당 국회로 여야관계 파탄
이재명 ‘통합대통령’ 다짐 빛바래
2045년이면 상당수의 독자가 살아생전에 맞이할 미래다. 그때 진짜로 특이점이 발생해 인류가 유토피아(혹은 디스토피아)를 맞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그런데 일찌감치 특이점에 도달한 분야가 있으니 바로 한국 정치가 되겠다. 의회민주주의의 선진국에 비하면 한국 정치에 낙후된 측면이 많은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래도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 1998년 첫 평화적 정권교체 등을 거치면서 점점 한국도 민주주의의 기반이 단단해지고 있다는 게 합의된 인식이었다.

그러나 최근 벌어진 일들을 돌이켜보면 한국 민주주의는 성장한 게 아니라 급속히 붕괴해 특이점을 만난 듯하다. 잠깐 사이에 기존의 통념과 관례가 모두 무너졌다. 무엇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벌인 비상계엄 사태가 너무 초현실적이다. 더불어민주당이 무차별 탄핵 공세로 정부 기능을 마비시킨 것은 준엄히 비판받을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대통령이 군을 동원해 야당을 무력화시키겠다는 발상을 하다니. 그것도 21세기에. 지난해 12월 3일 TV를 통해 야밤에 국회에 무장 병력이 활보하는 모습을 본 국민들은 오랜 믿음이 산산조각 나는 충격을 받았다. 한국 정치에서 앞으로 영원히 군 개입은 없을 것이란 믿음 말이다.
윤 전 대통령의 통치 행태 자체도 전례 없는 비정상이었다. 야당과의 대화는 고사하고 여당 대표들과도 엄청난 갈등을 빚었고, 족보도 애매한 정치 브로커와 공천을 논의했다. 특히 부인을 너무 깊이 국정에 개입시켰다. 부인 문제가 심각하다는 언론의 경고는 철저히 외면했다. 그가 터무니없는 비상계엄을 발동한 것도 궁극적으로 부인을 보호하려는 목적이 가장 컸을 것으로 짐작한다. 지금 부부가 모두 형사처벌을 받게 된 처지는 딱하지만 공과 사를 구별하지 못한 자업자득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비상계엄 6개월 뒤에 출범한 이재명 정권은 어떤가. 윤석열 정권에 대한 기저효과를 누리며 외형상 순항하지만, 정치만큼은 붕괴의 연속이다. 국회가 완벽한 민주당 일당 체제로 돌아가면서 국민의힘이 설 자리가 없어졌다. 민주당은 국가 기본시스템을 뒤흔드는 중대한 법안들을 국회에서 군사작전 하듯 밀어붙이고 있다. 제대로 된 토론도 없다. 새로 뽑힌 여당 대표는 공공연히 국민의힘을 상대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국민의힘 해산까지 거론한다. 예전 같으면 엄포라고 생각했겠지만, 기존 정치 관행이 소멸한 지금은 야당 해산이 진심일 수도 있겠다 싶다.

그런데 국회에 민주당만 있을 거면 왜 국회가 필요한가. 그냥 국회는 문 닫고 행정부가 다 알아서 하면 될 것 아닌가. 여당이 야당을 외면하는 건 결국 자해행위에 불과한 것을….
민주주의의 기본 정신은 견제와 균형이며 작동 원리는 대화와 타협이다. 당연히 다수당의 의사가 우선이지만, 다수가 항상 소수를 깔아뭉개는 건 독재이지 민주주의가 아니다. 민주당 일당 국회는 비상계엄 사태가 촉발한 한국 정치의 붕괴가 도달한 특이점이다. 87년 개헌 이후 여야 관계가 이 정도로 파탄 난 적은 여태껏 없었다. 도무지 일당 국회가 어떤 미래를 가져올지 가늠하기 어렵다.
다만 이런 상황이 장기화하면 사회적 갈등과 이념적 충돌이 극도로 증폭될 것이란 점은 확실하게 예견할 수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통합 대통령이 되겠다고 다짐했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