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조태민 기자]“사즉생의 각오로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체계의 전환을...”
정희민 전 포스코이앤씨 사장의 대국민 사과문이다. 결연한 자세로 사즉생을 말했지만, 그는 결국 연이어 터진 안전사고에 대한 책임을 지고 대표자리에서 물러나야했다.
최근 건설사들의 분위기도 다를 바 없다. 이재명 정부가 중대재해에 칼을 빼들면서 건설사들은 안전을 사즉생의 자세로 회사의 명운이 걸린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
“안전사고 대책안을 만들기 위해 주말도 반납하다보니 여름휴가는 언감생심”이라던 A 건설사 관계자의 말은 푸념이 아니라 무거운 다짐에 가깝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국회에서는 안전관리 의무를 위반해 인명사고가 난 건설사에 매출의 3%까지 과징금을 물리는 내용을 골자로 한 ‘건설안전특별법’ 제정을 추진 중이다. 국토교통부와 고용노동부는 지난 11일부터 내달 30일까지 50일간 전국 건설 현장에 대한 관계기관 합동 단속도 시행 중이다.
이 같은 정부 내 분위기 변화는 고스란히 업계로 전이되며 건설사들은 대대적인 현장 점검과 안전 교육 강화 등 선제적인 조치에 나서고 긴장의 고삐를 쥐는 모양새다.
HDC현대산업개발은 본사에서만 운영하던 통합관제센터의 기능을 현장도 도입키로 했다. 안전관리에 있어서 한층 강화된 기준을 마련하기 위한 조처다. 향후 VR을 활용한 현장 안전 관리 교육 등을 계획해 안전교육의 효율성도 높일 방침이다.
HDC현대산업개발 관계자는 “그동안 내부에서는 정부의 산재 엄벌 기조 이전부터 안전관리에 지속적으로 힘써왔다”며 “안전에 대해 꾸준히 신경 써온 만큼 정부 기조에 맞춰 더욱 신경 쓸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건설도 사고 예방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이한우 현대건설 대표는 △법적 기준 이상 안전 관리 △위험성 평가 및 고위험 작업 관리 △안전모 개선 △장비 안전 강화 △대기업-중소기업 안전 시스템 공유 등 5가지 안전 대응 방안을 세우고 실천을 당부했다.
구체적으로 법적 기준을 초과해 인력·예산·시스템을 구축하고 근로자가 심리적·신체적으로 이상을 느끼면 작업 거부가 가능하도록 제도를 도입했으며, 매일 협력 업체와 함께 다음 날의 고위험 작업을 사전 평가한다. 50인 이하 중소 건설사와 1사 1촌 매칭을 통해 안전제도와 시스템도 공유하고 있다.
또 기존에 강도가 약하던 안전모를 충격 저감률을 40%까지 낮출 수 있는 안전모로 교체하고 낙하물·비래물 위험 작업 현장에 우선 적용했다. 펌프카, 스카이, 타워크레인 등 고위험 장비에는 경광등과 사이렌도 설치했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안전관리 강화를 위해 대표부터 직접 현장에 방문하고 5가지 안전 대응 방안을 세우는 등 다양한 노력을 이어오고 있다”며 “안전관리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만큼 현대건설을 비롯한 건설사들의 노력을 국민이 알아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 4일 광명~서울고속도로 연장 공사 현장에 발생한 인명 사고 직후 전국 103개 현장의 공사를 전면 중단하고 긴급 안전점검에 들어갔던 포스코이앤씨도 중단했던 공사를 순차적으로 재개하며 안전관리에 대한 만반의 준비를 이어가고 있다.
공사가 재개된 현장은 분양 계약자의 입주 지연이 우려되는 아파트 건설현장 등 건축 공사 21곳과 공사 중단에 따른 추가 피해가 우려되는 인천 제3연륙교 등 인프라 시설 7개 현장 등 총 28개 현장이다. 각 현장의 공사 재개 여부는 △외부 전문가 점검 △개선조치 확인 △안전관리 이행 점검 △CSO(최고안전책임자) 승인 △관계 기관과의 소통 등 5단계 검증 절차를 거쳐 종합적으로 판단한다.
포스코이앤씨 송치영 사장은 “뼈아픈 경험을 계기로 업계 전반의 안전관리 기준을 한층 강화하고 건설산업의 새로운 안전 패러다임을 선도할 것”이라며 “국민 생활의 안심과 직결된 현장의 가치를 최우선에 두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이 같은 대형 건설사들의 안전관리와 내부 쇄신에 대해 한 업계 관계자는 “정부의 강력한 조치와 처벌이 건설사들에 경각심을 주는 계기는 됐겠지만, 너무 큰 부담과 압박을 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건설사의 안전관리에 대해 무조건 엄벌이라는 잣대를 들이밀기보다는 건설사를 믿고 현실적인 대응방안을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