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나라에 살고 있잖아. 나도 눈이 있어.
이곳은 이란의 수도 테헤란. 창밖에서 ‘히잡 반대’ 시위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정부에 검열된 언론은 이들을 ‘폭도’라고 칭한다. 인스타그램 속 영상들을 통해 참혹한 진상을 접한 대학생 딸 레즈반(마흐사 로스타미)은 TV를 가리키며 거짓이라고 말한다. 수사 판사로서 시위대를 심문 중인 아빠 이만(미사그자레)은 딸에게 “네가 어떻게 아느냐”며 화를 낸다. 그런 아빠에게 레즈반은 소리친다. 나도 현실을 보고 있다고.

3일 개봉하는 이란의 거장 모함마드 라술로프(53) 감독의 영화 ‘신성한 나무의 씨앗’의 한 장면이다. 영화는 한 가족의 균열을 통해 이란의 현실을 다룬다. 테헤란 혁명수비대 법원의 수사판사로 진급한 아빠와 가부장제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엄마, 그리고 기존 체제에 반기를 드는 딸들. 감독이 상상해 낸 이 가족은 이란 사회의 필연적 모순을 안고 있다. 가부장제로 인한 성차별, 폭력적인 독재 정권의 그늘이다.
감독은 이 영화로 인해 지난해 징역 8년형을 선고 받았다. 관계 당국의 허가 없이 촬영했기 때문이다. 법원은 영화촬영을 “국가 안보에 반하는 범죄를 저지르려는 의도로 공모한 것”이라고 봤다. 출연한 여자 배우들이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도 포함됐다.
정부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감독은 유럽으로 망명하여 지난해 열린 제77회 칸영화제에서 특별각본상을 직접 수상했다. 그는 지난 24일(현지시간) 폐막한 제78회 칸영화제에서 이란체제에 반발하는 영화 ‘잇 워즈 저스트 언 액시던트’(It Was Just An Accident)로 황금종려상을 받은 자파르 파나히 감독과도 함께 작업한 경험이 있다.

감독은 SNS에 퍼져나간 시위 영상을 영화에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2022년,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도덕 경찰’에 끌려가 사망한 22세 여성 마흐사 아미니를 기리며 시작된 ‘히잡 시위’의 휴대폰 촬영본들을 삽입한 것. 정부의 검열과 통제를 비집고 나오는 짧은 영상은 젊은 세대를 움직였다. 영화 속 가족의 첫째 딸 레즈반, 둘째 딸 사나(세타레 말레키)도 마찬가지다.
감독은 정치범으로 수감된 상태에서 이 시위를 접했고, 영화 ‘신성한 나무의 씨앗’을 기획했다. 그는 배급사를 통해 “젊은 세대가 주도한 시위를 보면, 억압한 사람을 직접적으로 마주하며 더 열려있는 길을 택한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고 전했다.

영화 속 가족 구성원의 공간은 상징적으로 구분된다. 수사판사 이만의 일터는 의심과 불안으로 가득 찬 권위적 공간이다. 도청장치가 설치되어 동료와 제대로 대화하지 못하고, 작은 반발을 했다가 큰 보복이 돌아왔다는 전임자의 사례가 심심찮게 들려온다.

집은 엄마와 두 딸의 공간이다. 엄마 나즈메(소헤일라 골레스타니)는 홀로 있지만 남편의 눈치를 계속해서 살피고, “집안의 규율을 따르다가, 나중엔 남편의 규율을 따라야 한다”고 딸들에게 말한다. 그러나 엄마의 말은 두 딸에게 잘 와 닿지 않는다. 그들은 휴대폰 화면 속 온라인 공간에 마음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휴대폰 비밀번호까지 남편과 공유한 엄마 나즈메와 달리, 딸들의 손에 들린 휴대폰은 통제할 수 없는 ‘가교’가 된다. 영화는 작은 화면을 통해 키운 자매의 생각이 사회 모순을 붕괴시킬 ‘씨앗’이라고 말한다.
교류가 없던 공간들은 창밖의 시위가 심해지고, 급기야 레즈반의 친구가 시위에 휘말리며 경계를 잃는다. 그 과정에서 이 가족은 각자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마주한다.

이만이 중요한 물건을 잃어버리게 되며 그 사실은 ‘불신’으로 변한다. 주인공들은 서로를 향해 의심을 겨눈다. 그때부터 영화는 서스펜스 스릴러 장르의 면모를 보여준다. 특히 가족 간 의심을 해소하기 위해 이만이 선택한 권위적 문법은 관객에게 섬찟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감독은 이란 남부의 한 섬에서 본 ‘인도보리수’를 통해 ‘신성한 나무의 씨앗’이란 제목을 떠올렸다. 인도보리수의 씨앗은 다른 나무의 가지 위에 떨어진 후 그곳에서 발아한다. 뿌리가 땅에 닿으면 숙주 나무를 감아 오르며 질식시키고, 자신의 삶을 이어가는 특징이 있다. 감독은 이를 통해 분명히 말하고 있다. 여성들의 외침은 부패한 권력을 질식시킬 거라고. 167분. 15세 이상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