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사회 곳곳에 묵묵히 자리한 이주노동자들. 그들은 우리가 매일 아침 마주하는 식탁, 거리의 풍경, 공장의 기계 소리, 농촌의 일손 속에 존재한다. 그러나 정작 ‘일하는 사람’으로는 온전히 존재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들의 발언은 자주 잘 들리지 않고, 그 목소리는 길게 이어지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내가 이전에 쓴 글에서도 언급했듯이, 선원 이주노동자들의 계약서와 현실은 차이가 크며, 이중계약 관행, 현금 별도지급, 사고 시 보상 누락 등이 늘 일어나고 있다. 계약과 다른 근로조건 등으로 사업장 변경을 요청해도 오히려 사업주가 수백만 원을 요구하거나, 임금 체불이 발생해도 실제 임금이 아닌 계약서상의 금액만 인정하려는 행태는 이들의 권리를 더욱 무력하게 만든다. 병이 있어 치료가 필요한데도, 이주노동자는 사업주 동의 없이는 이직이나 쉴 권리를 보장받지 못한다. 기본적인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현실이 반복되고 있다.
최근 대통령이 실태조사 지시
체불 해결 제도도 필요하지만
모두가 관심 갖는 계기 삼아야

다행히 최근 이재명 대통령은 국무회의 및 수석급 회의에서 임금체불 문제를 지적하면서, 특히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체계적인 실태조사를 지시했다고 한다. 앞서 ‘지게차 학대사건’이 있었을 때 이주노동자를 부당하게 대우하는 것에 대한 처벌 의지를 밝힌 것에 이어 두 번째로 이주노동자에 대한 관심을 보여준 것이다. 또한 “체불된 임금을 받을 때까지 출국을 보류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는 언급은 기존 정책의 사각지대를 돌파하려는 강한 의지를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국정의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이 이주노동자에 대한 부당한 처우와 체불임금 문제 해결에 대해 언급했다는 자체만으로 이주노동자들에는 큰 힘이 된다. 지금까지 현장에서 수없이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온갖 부당함에 맞서 외쳤지만, 답을 들을 수 없었던 현실을 넘어서 이제는 사회적으로 이 문제들을 논의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진 것 같아 다행스럽고 기쁜 마음이다.
그럼 이주노동자에 대한 체불문제를 비롯한 여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엇을 논의해야 할까? 물론 그동안 많은 대안이 제안되었지만, 정부 당국에 의해 진지하게 고민된 적은 없다. 사회적으로 이슈가 될 때만 땜질식 처방이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이제는 진지한 사회적 논의가 시작되어야 한다. 보다 근본적으로 한국사회에서 이주노동자를 경시하는 풍조가 개선되어야겠지만 급한 대로 몇 가지 대안이라도 구체화 된다면 체불임금 문제, 부당대우 문제는 많이 해소될 것이다.
첫째로 체불을 당한 노동자의 출국을 보류하는 것을 제도화해야 한다. 임금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출국이 자동 보류되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사업주의 체불행위가 있으면 고용노동부와 법무부가 연계해서 노동자의 출국 기한이 자동 정지되도록 하는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
둘째로 실태조사와 함께 쉽게 체불임금을 신고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정부는 외국인 노동자의 체불·부당대우 실태를 정기적으로 조사하고, 신고절차를 간소화하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의 관련 기관과 이주민지원 단체가 협력해 객관적 증빙체계를 만들고, 현장에 적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셋째로 사업장 변경 절차 간소화 및 지원이 필요하다. 현재도 사업주 동의 없이 이직이 가능한 제도는 있지만, 실제 노동자가 이를 이용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직 절차 개선, 법률 상담 무료 제공, 노동조건 위반이 확인된 사업장에 대해서는 자동 변경 제공 등 제도와 현장의 격차를 줄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나아가, 이주노동자가 자유롭게 사업장 이전을 할 수 있게 하는 방향으로 사회적 논의를 진행해야 한다. 사업장에 이주노동자를 강제로 묶어두는 것이 사실 이주노동자 문제 발생의 근본 원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제도가 좋아도, 그것을 실행하는 주체가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면 공허한 문서에 불과하다. 부당한 처우나 임금체불에 대해 조사 자체가 부실하거나, 피해 노동자가 증거를 제출해도, 감독관은 사업주 편에 서서 “합의하라”는 식으로 압박하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임금을 체불한 사업주에 대한 기소율도 낮다. 결국 법 집행기관의 미온적 태도가 체불을 조장하는 구조를 만들고, 이주노동자는 그 사이에서 더 깊은 좌절을 경험한다.
민주국가인 대한민국에서 모든 문제가 대통령의 지시로 해결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대통령의 말은 지금까지 그 어떤 문제 제기보다 무게감을 갖고 있다. 그래서 이 문제에 관해 실질적인 권한과 책임을 가진 정부 기관이 대통령의 문제 제기와 현장의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한 정책을 만들어 낼 것을 기대한다.
“사람으로서, 동등한 노동자로서 대우받기를” 원할 뿐이라는 이주노동자들의 간절함에 이제 정부와 사회가 함께 귀 기울일 차례이다. 이주노동자 문제에 대한 대통령의 말이 한국 사회에서 가장 낮은 목소리에 주목하는 계기가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원옥금 베트남 출신 이주여성·이주민센터 동행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