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감금, 통상 갈등…한·미 정상 유엔서 만나도 사방이 지뢰밭

2025-09-14

미국 내 한국인 근로자 구금 사태와 미국의 통상 합의 압박 등 한·미 간 악재가 돌출하는 가운데 정부가 “국익에 반하는 결정은 절대 하지 않는다”(지난 11일 이재명 대통령 취임 100일 기자회견)는 입장을 고수하며 양국 간 이상 기류가 짙어지는 분위기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모두 이달 말 유엔 총회 고위급 회기에서 연설할 예정인데, 정상 간 만남이 이뤄져도 지난달 첫 회담과 같은 우호적 분위기 형성은 어려울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14일 미국과의 통상 협상에 대해 “환율 등 전체적인 여러 경제·정치적 상황에서 가장 국익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서로 조건을 변경해가며 영점을 맞추려는 협상 중”이라고 말했다. 앞서 이 대통령이 100일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미국의 일방적인 관세 증액에 방어하려는 것”이라며“우리가 이익되지 않는 (합의에)사인을 왜 하느냐”고 한 것과 연장 선상에 있는 발언이다.

미국은 지난 7월 한국차에 대한 관세를 25%에서 15%로 내리는 대신 한국이 투자를 약속한 3500억 달러와 관련, 미·일 합의에 준하는 요구를 하고 있다. 미·일은 ▶트럼프가 지정한 투자처에 45일 내에 일본이 자금을 대고 ▶일본이 투자금 5500억 달러를 회수할 때까지는 수익을 50 대 50으로 배분하되 ▶이후에는 수익의 90%를 미국이 갖는 내용의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이는 한국에 크게 불리한 구조로, 지난달 한·미 정상회담 뒤 아무런 합의물을 도출하지 못한 것도 이런 미국의 무리한 요구 때문이었다. 대부분 투자금을 보증ㆍ대출ㆍ보조금 등으로 쓰길 원하는 한국 입장과는 간극이 크다. 이 대통령이 “사인 못했다고 비난하지 말라”고 한 이유다.

조지아 구금 사태로 협상 난관

여기에 미 이민 당국이 조지아주의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 합작 공장 건설 현장에서 한국인 근로자를 대규모로 단속, 구금한 게 양국 간 협상을 더욱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분위기다. 석방된 316명은 12일 무사히 귀국했지만, 구금 과정에서 수갑과 족쇄로 결박당한 채 비위생적 환경에서 제대로 된 물과 음식조차 지급받지 못하는 등 인권 침해 소지가 있는 처우를 받은 사실이 속속 드러났다.

외교 참사라는 비판과 미국이 동맹국 국민에 부당한 대우를 했다는 반미 감정이 동시에 표출되는 가운데 정부가 통상 협상을 무리하게 타결할 유인은 더욱 줄었다. 한국인 근로자들이 풀려나자마자 미국이 “한국은 (25%)관세를 내든지, (일본처럼)협정을 받아들이든지 둘 중 하나”(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라는 식의 강압적 태도를 보이는 것 역시 일단 버텨야 한다는 정부의 기류가 강화하는 데 영향을 주고 있다.

지난 12일(현지시간) 미국에서 러트닉을 만난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이날 오전 귀국길에 기자들과 만나 “양자 간 협의가 진행 중인 사안”이라며 “(일본 모델을)모두 수용한다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양측 간 접점을 찾지 못했다는 뜻으로 해석 가능하다.

랜다우 “이번 사태에 깊은 유감”

양국은 추후 실무 협의그룹 등을 통해 비자 제도 개선을 위해 협력한다는 방침이다. 이날 외교부에 따르면 박윤주 1차관은 방한 중인 크리스토퍼 랜다우 국무부 부장관과 만나 “(구금된)근로자들 뿐만 아니라 우리 국민이 이번 사태로 인해 깊은 충격”을 받은 데 유감을 표했다. 또 “미 측이 우리 국민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실질적인 재발방지 및 제도개선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라고 강하게 요청했다.

이에 대해 랜다우 부장관은 “이번 사태가 일어나게 된 데 대해 깊은 유감을 표명”했다고 외교부는 전했다. 그는 또 “귀국자들이 미국에 재입국시 어떠한 불이익도 없을 것이며, 향후 어떠한 유사 사태도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비자 제도 개선 문제는 이민자에 대한 반감이 갈수록 커지는 미국의 국내정치적 상황과도 맞닿아 있다. 특히 트럼프의 지지층을 중심으로 이주 노동자가 미국인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논리가 힘을 얻고 있다. 한·미 양자 간 현안으로만 볼 수 있는 사안은 아니라는 뜻이다.

통상 국가 간 정치·외교적 갈등이 있을 경우 정상급 회동은 꼬인 매듭을 끊어 버리는 호기로 작용하곤 한다. 이와 관련, 강유정 대변인은 유엔 총회에서 한·미 정상회담이 열릴 가능성에 대해 “다양한 국가 정상과의 양자 회담이 조율 중”이라고만 했다. 외교부는 한·미 차관이 “유엔총회 등 다양한 국제행사를 계기로 한 한·미 고위급 외교 일정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다만 양쪽 모두 국내정치적 상황까지 얽혀 양보가 어려운 상황에서 이번에는 이 대통령과 트럼프가 만난다고 해도 별다른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양 정상 간 불편한 기류가 표출될 경우 오히려 지난달 첫 정상회담에서 형성된 친밀함과 신뢰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반대로 회동 자체가 이뤄지지 않는 것 역시 그 자체로 악재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정상급에서도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울 정도로 상황이 꼬여 있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윤성민 기자 yoon.su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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