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플랫폼 트렌비는 '흑자', 발란은 '회생'···희소성·신뢰도가 생존 갈랐다

2025-05-13

온라인 명품 플랫폼 트렌비와 발란의 실적 희비가 엇갈렸다. 트렌비는 올해 3월과 4월 두 달 연속 손익분기점을 상회하며 흑자를 기록한 반면, 발란은 자본잠식에 빠져 지난 3월 말 기업회생절차에 돌입했다. 유사한 시기에 설립돼 모두 외형 확대에 집중했던 두 회사의 극명한 차이는 사업 구조와 신뢰 시스템 구축 전략에서 비롯한 것으로 분석된다.

13일 업계 등에 따르면 트렌비는 지난해부터 수익성 중심의 구조 전환을 추진해왔다. 고환율·공급가 변동에 민감한 신상품 직매입 모델에서 벗어나, 안정적인 회전율과 마진을 기대할 수 있는 중고 명품 거래를 사업의 중심으로 옮겼다.

이 과정에서 트렌비는 자체 정품 감정 인프라를 강화했다. 국내 최대 규모로 알려진 '한국정품감정센터'를 설립하고, AI 기반 감정 시스템 '마르스 AI'를 접목시켜 신뢰 기반의 거래 환경을 구축했다. 이 감정 체계는 단순 인증을 넘어 소비자 재구매 전환율과 판매 속도에 직접적 영향을 주며 실적 개선의 핵심 축이 됐다.

트렌비 관계자는 "트렌비의 비즈니스 구조는 새 상품, 중고, 글로벌 3대 트라이앵글 구조의 입지를 다지며 가시적인 성과를 보이고 있다"며 "앞으로도 트렌비만의 혁신적인 기술력과 서비스를 토대로 중고 및 글로벌 사업을 성공적으로 확대해 나가는 것은 물론, 새로운 사업모델을 전략적으로 추진하며 올해 흑자 목표를 반드시 달성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발란은 중고 명품과 같은 고정 수요 기반 수익 모델을 육성하지 못했다. C2C 플랫폼으로 출발한 발란은 이후 B2C로 사업을 확장하며 외형을 키웠지만, 수익을 보장할 구조적 기반 없이 거래액 중심 성장을 지속했다. 특히 '선결제 후매입' 방식에 의존한 유통 구조는 매출 증대 시점에서는 유효했지만, 공급가 급등이나 환율 변동 등 외부 충격에 고스란히 노출되는 구조였다. 실질 이익보다 외형 성장에 무게를 둔 전략이 리스크 관리 실패로 이어졌다는 지적이다.

비용 구조에서도 두 회사는 상반된 선택을 했다. 트렌비는 수익성이 확보된 구조 내에서 기술 투자와 카테고리 확장을 병행해왔다. 반면 발란은 흑자를 내지 못한 상황에서도 2021~2023년 3년간 691억원에 달하는 광고선전비를 집행했다. 연 매출 대비 최대 40%에 육박하는 마케팅 비용은 투자자 유치를 위한 외형 부풀리기 전략과 맞물렸으나, 결국 셀러 정산에 필요한 현금흐름을 갉아먹는 요인이 됐다.

정산 시스템 구축과 운영 안정성 면에서도 전략적 대비가 뚜렷하다. 트렌비는 자체 감정과 검수 시스템을 통해 상품 입고부터 판매, 정산까지 직영 통제 기반의 신뢰 구조를 구축했고, 이를 글로벌 유통망에 적용해 해외 확장도 병행 중이다. 반면 발란은 정산 구조의 디지털화와 자동화가 지연된 상황에서 거래 규모만 확장했다. 이에 따라 실거래액이 급증한 상황에서도 정산 지연, 오류, 누락 등의 문제가 반복됐고, 2024년 말부터 셀러들의 불만이 누적되기 시작했다.

결국 지난 3월, 발란은 셀러 정산을 전면 중단, 며칠 뒤 상품 판매도 일시적으로 멈췄다. 이 과정에서 셀러들이 제기한 고소만 20건을 넘겼으며, 회사는 3월 31일 서울회생법원에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해 4월 4일 회생 개시 결정을 받았다. 이는 이미 심각한 재무 위기가 누적된 결과였다. 2023년 말 기준 발란은 부채가 자산을 두 배 이상 초과한 완전자본잠식 상태로, 총자산은 76억 원에 불과한 반면 부채는 153억 원에 달했다. 특히 유동부채는 138억 원으로 유동자산(56억 원)을 크게 웃돌아, 단기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의 현금흐름 압박에 직면했다. 현재까지 미정산된 판매대금도 약 177억 원에 이르며, 회수율은 10%에도 못 미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이런 상황 속에서 발란은 인수합병(M&A)을 통한 경영 정상화를 시도 중이다. 매각 주관사로 삼일회계법인을 선정하고, 스토킹 호스(미리 인수자를 정해 기준 가격을 제시, 더 좋은 조건이 나오면 바꿀 수 있도록 하는 공개입찰 방식) 방식으로 매각 절차를 진행 중이다. 회생계획안 제출 마감일은 내달 27일이다.

발란 관계자는 "M&A는 경영 안정화의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며 "입점사 상거래 채권의 조기 변제와 구성원 고용 보장 등 주요 현안 해소에 주력하겠다"고 밝혔다.

신동우 법무법인 대온 변호사는 "회생절차가 개시되면 셀러는 무담보채권자로 분류돼 회수율이 매우 낮을 수밖에 없다"며, "이미 투자자·판매자·소비자 모두가 이탈한 상황에서는 단순한 법적 구조조정만으로 사업을 정상화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례를 통해 온라인 명품 플랫폼 산업의 지속 가능성은 단순한 거래액 확대보다는, 수익구조 설계와 신뢰 기반 시스템에 좌우된다고 평가한다. 트렌비는 정품 검수 기반의 중고 명품 거래 모델을 바탕으로 수익성과 확장성을 모두 확보한 반면, 발란은 통제 미비와 구조적 적자 누적으로 플랫폼의 핵심 자산인 신뢰를 잃은 것이 그 사례다.

업계 관계자는 "온라인 명품 플랫폼은 거래액보다 수익 구조의 안정성과 신뢰 체계의 구축 여부가 생존을 좌우하는 산업"이라며 "검수·정산 같은 기본 인프라가 불완전한 상태에서 외형 확대에만 집중할 경우, 위기 상황에서 신뢰 붕괴로 직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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