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력·지혜·활력의 상징…첨단기술 시대에 속도를 더하다

2025-12-31

2026년은 병오년(丙午年)으로 말, 특히 ‘붉은 말’의 해다. 붉은 불의 기운과 말의 생명성이 만나 만사형통의 좋은 시기가 될 듯하다. 다만 말은 주로 사람이 타거나 물건을 끄는 데 사용된다는 점에서 결국 이를 잘 활용하느냐에 각자의 운수가 갈릴 수 있겠다.

문화체육관광부 국립민속박물관이 발간한 한국민속상징사전(말 편) 등의 자료에 따르면 말은 예로부터 인간의 삶과 가장 가깝고 또 필수적인 동물이었다. 살아서 단짝이었을 뿐만 아니라 죽어서도 하늘과 인간, 이승과 저승을 오가는 존재로 여겨졌다. 더 나아가 생명력과 활력, 충성, 지혜의 상징이었다. 힘차게 달리는 말의 모습은 인간의 꿈과 도전, 그리고 미래로 나가려는 굳은 의지를 보여줬다.

원래 한국인은 말을 타는 기마 민족이었다. 말은 우리 역사 초기부터 곳곳에 등장한다. 건국 시조의 출현을 알리는 영물, 하늘과 통하는 매개체로 그렇다. 시인 이육사가 광야에서 기다린 ‘백마 탄 초인’은 한국인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말이 곤연(큰 못)에 이르러 큰 돌을 보고 마주 대하여 눈물을 흘렸다. 그 돌을 들추니 금빛 개구리 모양의 어린애가 있었다”라는 동부여의 금와왕 신화에서 말은 임금 탄생을 알려 준다. 금와왕은 주몽에게 말을 기르게 했는데 주몽은 준마를 알아보고 일부러 적게 먹여 파리한 상태로 버려지게 한 뒤 이를 가졌다. 명마를 알아보고 다루는 능력은 곧 임금의 자질이었다.

죽어서도 마찬가지다. 경주의 신라 천마총에서 발굴된 ‘천마도’는 이승과 저승을 통하는 매개체다. 천마는 몸에 빛나는 양 날개를 달고 하늘 높이 비상해 천상과 지상을 자유롭게 다니면서 신과 인간을 연결한다.

말은 영웅호걸의 상징으로 여겨져 군주들의 사랑을 받았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는 특히 말을 사랑해 여덟 마리 애마를 두었는데 세종이 조부의 위대함을 칭송하기 위해 걸출한 화가 안견에게 ‘팔준도(八駿圖)’를 그리게 했다. 당당하고 기품 있는 말의 자태는 천마 신화와도 연결돼 조선의 강력한 왕권을 상징했다. 안견의 원본은 임진왜란 때 소실됐지만 숙종 대에 모사가 크게 유행했고 그중 하나의 화첩이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말을 소재로 한 마도(馬圖)는 민간에서도 인기를 끌었는데 조선 후기 문인 화가 공재 윤두서와 말기 화가 오원 장승업이 말 그림으로 유명했다. 말 그림은 ‘마도성공(馬到成功·말이 도착하면 곧 성공한다)’의 기운을 불러 온다고 알려져 오늘날에도 많은 사업가의 집무실을 장식하는 중이다.

서양 문화에서도 말은 강력한 힘, 자유와 속도, 모험과 인간의 야망을 은유하는 상징으로 등장했다. 고대부터 왕과 전사들의 곁을 지킨 동물로 권력과 권위, 지배를 의미하기도 했다. 이런 상징성을 토대로 서양에서는 고대 로마 시대부터 유럽 르네상스, 바로크 시대까지 기마 초상화라는 장르가 크게 유행했다. 늠름한 말 위에 올라탄 군주의 역동적인 이미지를 통해 절대 권력과 영웅적 이미지를 강조하는 양식이다. 프랑스 화가 자크 루이 다비드가 1801년에 완성한 ‘생베르나르 고개를 넘는 보나파르트’는 기마 초상화의 대표작으로 나폴레옹 영웅 신화와 함께 전설이 된 그림이다.

현대에 들어와서도 말의 가치는 결코 줄어들지 않았다. 가장 빠른 동물 중 하나인 말이 가진 속도의 이미지는 인공지능(AI) 등 첨단 기술 발전이라는 가치와 결부돼 매력을 더하고 있다. 힘의 크기는 여전히 ‘마력’이고 잘 뛰는 사람을 ‘건각’이라고 한다. 자동차 등 말을 로고로 하는 기업은 어디서나 볼 수 있다.

천진기 전 국립민속박물관장은 “말에 대한 표현 방식은 시대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지만 우리 관념 속에서 말은 신성함, 상서로움 그리고 신이함을 상징하는 동물로 자리를 잡아 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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