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딘 칼도 쓸모가 있다. 실수해도 다칠 위험이 적기 때문이다. 하지만 토마토나 양파를 썰 때는 예리한 칼이 필요하다. 칼이 무디면 더 많은 힘을 가하기 때문에 토마토의 과육이 뭉개지고, 도마는 과즙으로 흥건해진다. 양파의 경우는 어떤가. 무딘 칼로 양파를 써는 일은 자해에 가깝다. 양파는 조직이 손상되면 ‘이소알리신’이라는 성분이 자극성 화합물 비말을 뿜는다. 이 때문에 양파나 대파를 썰 때마다 눈물 콧물을 쏟게 된다(비염 환자라면 뒤끝이 더 길다). 다량의 양파를 썰어야 한다면 자신을 위해 칼을 갈아 날을 세워야 한다.
어느 날, 우산 수리를 가르치시는 곽성규 스승님께 연락이 왔다. “칼 가는 것 좀 배워둬라.” 저번에는 선풍기를 고치라고 하시더니. 스승의 은혜가 정말로 하늘 같다. 망설이지 않고 작업장을 찾아갔다. 테이블에는 숫돌과 탁상용 그라인더, 물을 담은 용기가 놓여 있었다. 숫돌은 미끄러지지 않도록 전용 거치대에 고정한 상태였다. 제자들은 돌아가며 칼 수리법을 배웠다.
물을 뿌려 숫돌을 적신다. 한 손으로 칼자루를 잡고, 반대쪽 손을 가볍게 얹어 숫돌 위에서 밀고 당긴다. 수시로 물을 뿌리면 마찰로 인한 온도 상승을 막고, 쇳가루가 날리지 않아 안전하다. 칼은 완전히 눕히지 않고 약 15도 각도로 세운다. 시중에는 ‘연마 가이드’라는 도구가 있는데, 이것을 끼우면 날의 각도가 일정하게 유지되어서 편리하게 칼을 갈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러한 도구를 쓰는 대신 스승님의 시범을 눈여겨보며, 손의 각도와 느낌을 기억하려 애썼다.
숫돌은 칼의 상태에 따라 표면의 입도(입자의 크기)가 다른 것을 쓴다. 숫돌의 입도는 150방(150#으로 표기)에서 1만방까지 다양한데, 가정용 식도를 수리하는 경우 400~1000방 정도로 충분하다. 숫자가 작을수록 표면이 거칠고, 숫자가 클수록 표면이 부드럽다. 초벌로 400방 이하의 거친 숫돌에 갈아주고, 날의 모양이 정돈되면 1000방 이상의 고운 숫돌에 갈아 마무리한다.
전문가들은 여기서 더 나아간다. 생고기나 횟감처럼 부드러운 것을 모양 있게 썰기 위해 3000방 이상의 고운 숫돌로 마감한다. 아침저녁으로 칼을 갈거나, 그도 부족하면 칼갈이봉으로 즉석에서 삭삭 날을 세운다.
문득, 부천에서 자주 가던 분식집 사장님의 칼이 떠오른다. 수십년 갈아 써서 날렵해진 칼은 사장님의 손에 꼭 맞았다. 고기만큼 자르기 힘든 순대나 김밥도 저항 없이 고르게 썰렸다. 수없이 갈고 길들이며 자기만의 도구를 만들어 온 사장님의 세월이 거기 담겨 있었다. 나도 내 칼을 그렇게 길들여 쓸 수 있을까?
수리를 마친 칼을 신문지에 둘둘 싸서 배낭에 넣었다. 그라인더(회전하는 전동 숫돌) 실습 도중 옆면에 생채기가 났지만, 이 흔적도 ‘수리의 추억’이 될 것이다. 칼을 수리한 보람이 있도록 요리에 양파와 토마토를 넉넉히 써야겠다. 오랜만에 토마토 카레를 만들어 볼까? 벌써 군침이 돈다.

▲모호연
물건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사람. 일상 속 자원순환의 방법을 연구하며, 우산수리팀 ‘호우호우’에서 우산을 고친다. 책 <반려물건> <반려공구>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