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차 SFS 포럼] “CBDC는 결제 인프라 실험”…지금 멈출 이유는 없다

2025-07-22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를 입법으로 금지한 미국과 달리, 한국은 디지털 자산의 미래를 대비한 금융 인프라 실험에 나서고 있다. 한국은행은 최근 종료된 1차 실거래 '프로젝트 한강'을 통해 조건부 지급 기능 등 프로그래밍이 가능한 디지털화폐를 검증했으며, 국제 공동 프로젝트인 '아고라'를 통해 국가 간 지급 시스템 개선에도 참여하고 있다. 금융기관만 이용할 수 있는 기관용 디지털화폐(wholesale CBDC)와 이를 기반으로 한 예금 토큰을 활용하여 디지털 금융 구조 전환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책적 의미가 크다는 평가다.

김동섭 한국은행 금융결제국 디지털화폐기획팀장은 21일 서울 을지타워에서 열린 '제4차 싱귤래리티금융소사이어티(SFS)' 회의에서 프로젝트 한강의 목적을 두 가지로 명확히 했다.

그는 “이미 토큰증권이 도입된 일본의 경우 은행이나 증권사에 직접 방문해 종이 서류를 주고받으며 토큰증권을 사고파는 방식이 일반적인데, 이는 디지털 자산이라는 개념과 맞지 않는 비효율적인 구조”라면서 “토큰 특성을 살려 DVP(동시결제) 방식이 가능한 플랫폼 위에서 직접 거래가 이뤄져야 하고, 이를 뒷받침할 토큰화된 화폐 인프라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토큰증권이나 RWA(실물연계자산) 등 새로운 민간 디지털 자산에 대비해 자산 거래와 결제가 같은 플랫폼 내에서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이뤄질 수 있는 인프라를 마련하는 게 주된 실험 목적이라는 설명이다.

두 번째 목표는 스마트계약을 활용한 조건부 결제 기능, 이른바 '프로그램가능화폐'의 가능성을 실증하는 것이다. 김 팀장은 “특정 조건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프로그래밍 기능을 통해 디지털 바우처 등과 같은 혁신적인 지급서비스를 구현하여 서울, 부산, 대구 3개 도시에서 실제 실험을 진행했다”고 덧붙였다.

미국이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발행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킨 것과 관련해, 김 팀장은 “미국 내 정치·제도적 특수성이 반영된 결과로 볼 수 있다”면서 “CBDC 발행 자체를 법으로 금지한 국가는 사실상 미국이 유일하다”고 말했다.

다만, 미국이 금지한 것은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범용(retail) CBDC이며, 한국은행의 한강 프로젝트와 같은 기관용 디지털화폐를 금지한 것은 아니라고도 했다. 김 팀장은 “아고라 프로젝트에는 미국 연준(Fed)도 계속 참여 중”이라며 “CBDC 금지법이나 이전 행정명령이 있었다고 해서 연준이 관련 실험 자체를 포기한 것은 아니다”라고 언급했다.

아고라 프로젝트는 국제결제은행(BIS)와 7개국 중앙은행, 국제금융협회(IIF)가 함께하는 민간-공공 협력 프로젝트다. 현재 국제 송금은 다수의 중개 은행과 금융 통신망(SWIFT 등)을 거쳐야 하고 단계마다 수수료와 시간이 누적되며 비효율이 발생한다. 한번 오류가 생기면 여러 차례 되돌아가는 위험도 존재한다.

김 팀장은 “아고라 프로젝트는 이 같은 절차를 하나의 스마트 계약안에서 자동화해, 검증이 완료되면 단 한 번의 거래로 양국 간 자금이 이전되도록 하자는 구상”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국가 간 지급은 여전히 속도·비용·접근성 측면에서 개선의 여지가 크다”며 “CBDC와 예금토큰을 활용한 스마트계약 기반의 동시 결제 방식은 기존 코레스은행(환거래계약 체결 은행) 기반 시스템을 유지하면서도 기존의 구조적 문제점을 개선할 수 있는 대안”이라고 덧붙였다.

향후 '프로젝트 한강'의 후속 테스트 계획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김 팀장은 “중단한다는 것이 아니라 지난 6월까지 1차 실험을 마치고 일시 정지한 상태”라며 “다만 최근 스테이블코인 도입 등 이슈를 포함해 대외 환경이 크게 바뀌고 있어, 지금은 잠시 숨을 고르며 짚어보는 중”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그는 “멀지 않은 시점에 제도적 방향성이 좀 더 명확해지면, 정부와의 협의 등을 거쳐 후속 테스트 추진 논의를 다시 속도감 있게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함께 발표에 나선 임일섭 예금보험공사 예금보험연구소장은 스테이블코인의 구조적 한계와 화폐로서의 정체성 문제를 짚었다. 그는 “스테이블코인의 성격은 결국 발행자가 어떤 자산을 준비자산으로 설정하고, 어떤 형태로 부채를 구성하느냐에 달려 있다”면서 “만약 준비자산이 전액 예금이라면, 발행자는 새로운 화폐를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화폐 사용환경을 개선하는 '머니 트랜스미터' 역할에 그친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준비자산이 단기 국채처럼 현금성 자산에 가까울 경우에는 일정 부분 화폐 창출 기능을 수행하게 된다”며 “이처럼 준비자산의 구성에 따라 스테이블코인의 본질적 기능은 달라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한 “스테이블코인은 예금처럼 계좌 기반이 아니라 토큰 기반의 화폐로, 블록체인상에서 직접 이전되며 지급과 결제가 동시에 이뤄지는 구조”라며 “거래는 빠르고 효율적이지만, 지급결제의 최종성 확보 측면에서는 구조적 한계가 존재한다”고 평가했다.

임 소장은 “스테이블코인이 크립토 매매 수단을 넘어 새로운 민간 화폐로서 편익을 제공할 수 있다면 규제, 유동성 공급, 예금보험, 정리 절차 등 기존 금융안전망의 작동 원리를 토큰 기반 민간 화폐에 어떻게 접목할 수 있을지에 대한 정책적 고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유민 기자 newmi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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