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과 남성이 장갑차 위에 올라가 바이올린과 기타를 연주한다. 아일랜드 춤곡 ‘Haste to the Wedding’(결혼식에 종종걸음으로)의 선율이 퍼진다. 사람들이 웅성거린다. 보안요원이 제지하지만 연주는 5분가량 이어진다. 그 옆에선 여성 3명이 “전쟁장사 중단하라”고 외친다.
2022년 9월 일산 킨텍스 대한민국방위산업전에서 있었던 일이다. 이들은 ‘위력(威力)’을 행사해 무기전시회 업무를 방해한 혐의로 기소됐다. 지난 4월15일 대법원은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무죄로 판결했다. “음악은 반전과 평화의 메시지를 상징적이면서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비폭력적 수단”이며 “국가 방위산업에 관한 사항은 공적 관심사”이므로 “감시와 비판을 위한 표현의 자유”가 폭넓게 보장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 사회가 더 이상 12·3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할 때, 나는 지극히 상식적인 이 판결에도 주목했다. 하지만 순진한 기대였다. ‘군대 남성성’을 체화한 내란 수괴가 감옥에 갔지만, 그의 ‘무기에 대한 맹신’은 남았다.
‘방산’을 AI·반도체와 더불어 ‘미래 먹거리’라고 한 대통령 이재명은 올해 서울국제항공우주·방위산업전시회에서 “자랑스러운 ‘K방산’의 눈부신 성과”를 말했다. 이 자리엔 가자지구 학살에 쓰인 이스라엘 무기도 전시됐다. 항의 시위를 한 활동가들은 경찰에 의해 쫓겨났다.
이재명 정부가 이례적인 건 아니다. 전 대통령 문재인도 ‘방산수출 100억달러’ 달성을 큰 성과로 꼽았다. 군의 무기를 고도화하기 위해 민간의 참여가 필요한데, 기업의 수지타산을 맞추려면 국내 수요만으론 안 되고 해외로 무기수출을 해야 한다고 했다. 결국 누군가 그 무기에 죽더라도 ‘우리’만 안전해진다면 괜찮다는 얘기이다. 윤석열은 문재인의 다른 정책은 뒤집어도 무기수출은 충실히 계승했다. 이 문제에는 진영을 뛰어넘는 합의가 있는 것이다. ‘과잉 전력’에 ‘돈 먹는 하마’ 비판을 받는 핵추진 잠수함에 대한 정권을 초월한 집착도 그런 점에서 설명된다.
여성학자 정희진의 지적처럼 “무기수출은 다른 분야의 성장, 수출과 다르다” “군사주의를 중심으로 하는 전 지구적 자본주의에 한국 재벌이 참여하는 것”일 뿐 무기수출에서 한국적 가치를 찾기는 어렵다. 굳이 찾자면 무기업체들이 강조하는 ‘가성비’가 있다. 그 뒤엔 ‘위험의 외주화, 이주화’가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사람 죽이는 도구에서 가성비란 말을, 대놓고 자랑할 건 아니다.
경주 APEC을 앞두고 야구 중계 도중 국내 무기업체의 잠수함 광고가 나왔다. 잠수함을 구매할 시청자는 없을 텐데 도대체 뭘까. 광고 후 ‘남초 사이트’의 뜨거운 반응을 보며 분명해진 게 있다. 이른바 ‘밀덕’ 감수성이 주류화되는 분위기를 보여준 것이다. 이것은 ‘한국 음악이나 음식이 널리 알려져 뿌듯하다’는 느낌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각종 ‘K’에 편승해 무기산업까지 그런 지위를 얻으려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군비경쟁으로 몰려가는 힘이 강력하며, 핵국가 북한을 마주한 한국에서 안보에 손 놓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외교와 국방의 다양한 수단을 어떻게 배합할지, 군대가 어떤 무기를 어느 정도 갖출지 정할 때 ‘안보 포퓰리즘’에 기댈 게 아니라 전체 예산 배분에 대한 면밀한 검토와 토론, 지정학 여건에 대한 냉정한 분석을 통해 적정선을 찾아야 한다. 그 선은 공멸적 군비경쟁에 기름을 붓지 않는 한도 내에서 긋는 게 바람직하다. 북한 GDP의 1.7배를 국방비에 쓰는 한국은 이미 충분한 ‘강병’을 가진 ‘부국’이다. 아무리 비싼 무기를 더 갖춰도 안보 불안을 완전히 없앨 순 없다. 불안 해소책은 이재명 정부가 잘한다고 평가받는 외교에서 더 찾아야 한다.
모두가 국가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필요는 없다. 평화를 위해, 국가의 눈높이에서 보지 않는 사람이 더 많아지길 바란다. 장갑차를 올려다보며 잠시 망설였던 한 예술가의 말에서 가능성을 찾고 싶다. “많은 사람이 장갑차의 매력에 흠뻑 빠져 있다. 잠시 두려워졌다. 내가 올라간다고 해서 저 거대한 힘의 흐름이 당장 바뀌는 것은 아닌데 어쩌면 이 모든 것이 무모한 짓은 아닐까. 다시 눈을 감는다. 무기로 죽어간 수많은 사람과 생명들의 빼앗긴 이름과, 얼굴과, 삶과, 눈물을 생각한다. 다시 눈을 뜨니, 이제 내 눈에는 장갑차만 보였다. 디디어 올라갈 바퀴와 손잡이가 뚜렷하게 길을 내주고 있었다.”
‘K방산’이라는 말, ‘펜이 칼보다 강하다’고 믿는 기자들부터 쓰지 않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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