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th&·대한디지털치료학회 공동 선정
조철현 고려대안암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디지털 기술로 의료 한계 보완
개인 생활습관 분석, 치료법 제공
공황장애 치료기기 연구개발 집중

디지털 기술이 의료를 돕는 차원을 넘어 치료의 중심인 시대다. 디지털 치료기기(DTx·Digital Therapeutics)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이는 의학적 장애나 질병을 예방·관리·치료하기 위해 환자에게 근거 기반의 치료적 개입을 제공하는 소프트웨어를 뜻한다. 1세대 합성 의약품, 2세대 바이오 의약품에 이은 3세대 치료제로 분류되며 제3의 신약으로 주목받는다. 2023년 2월 불면증 증상 개선을 목적으로 한 인지 치료 소프트웨어가 국내 첫 디지털 치료기기로 허가받은 이후, 관련 연구개발이 활발하다.
고려대안암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조철현 교수는 이 분야의 ‘퍼스트 무버’다. 초창기부터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의료 시스템에 관심을 갖고 의학적 근거 확보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현재는 공황장애, 사회불안장애를 대상으로 한 디지털 치료기기 개발 연구 과제를 수행 중이다. 지난달 23일 고려대 의학도서관에서 만난 조 교수는 “현대인이 겪는 질환 상당수가 생활습관 관리 여부에 따라 질병의 예후가 결정된다”며 “국내 의료 환경에선 의사가 이를 전적으로 해주기엔 역부족이다. 디지털 치료기기가 이 부분을 일부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다”고 했다. 다음은 조 교수와의 일문일답.
이 분야에 관심 갖게 된 이유는.
“정신건강의학과에 환자가 오면 기본적으로 의사는 상담하고 필요하면 약물을 처방한다. 그다음부터 환자는 일상에서 홀로 질병과 싸워야 한다. 정신 질환은 다른 어떤 병보다 일상생활에서 끊임없이 노력하고 훈련해야 한다. 정신의학 치료의 한 축인 정신·심리 기법의 메커니즘을 디지털 치료기기에 잘 녹여내고 이를 잘 흡수해 사용한다면 환자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요즘엔 어떤 연구에 집중하나.
“공황장애 환자를 위한 디지털 치료기기 개발 연구 과제다. 공황장애 환자는 갑자기 숨 막힘, 가슴 두근거림 같은 신체 증상과 동반해 심한 두려움, 불안감을 느끼는 공황 발작이 발생할 수 있다. 응급실에까지 실려 오지만 실상 건강상 문제는 없다. 그러나 환자가 느끼는 고통이 너무 커서 증상이 없을 때도 몹시 불안해한다. 지금 구상하는 건 개인 맞춤형 치료기기다. 선행 연구에서 디지털 기기로 실시간 수집한 개인의 건강 관련 데이터를 인공지능(AI) 알고리즘을 통해 분석함으로써 공황 발작을 예측하는 모델을 수립했다. 발생 위험도가 높을 때 여기에 잘 대응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치료 모듈을 제공하려고 한다. 개별 상태에 따라 적합한 치료적 개입이 이뤄진다면 디지털 기술의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다.”
50대 여성이 조 교수 진료실을 찾았다. 잠을 잘 자지 못해 힘들어 치료받길 원했지만, 약 복용은 가능하면 피하고 싶어 했다. 의사는 디지털 치료기기 사용을 권했고 환자의 동의를 얻어 치료를 시작했다. 필요할 경우 약물치료를 병행할 수 있도록 했다. 환자는 모바일 앱이 제공하는 ▶수면 습관 교육 ▶실시간 피드백 ▶행동 중재 등을 6주간 충실히 수행한 결과, 불면 증상이 크게 완화했다. 조 교수는 “불면증은 인지행동 치료가 1차 표준치료법이다. 약을 거의 먹지 않았는데도 치료 기간 불면증이 많이 회복됐다”며 “환자도 주도적으로 노력해 잠에 대한 태도를 바꾸고 생활습관을 교정했다는 점에서 큰 만족감을 표했다”고 설명했다.
디지털 치료기기의 장점은 뭔가.
“인지행동 치료의 최종 목표는 체득이다. 의사 없이도 환자 혼자서 할 수 있게 하는 거다. 임상 의사로서 무력감을 느낄 때가 있다. 진료실과 진료실 밖 일상의 틈을 메우지 못하는 한계에서 비롯된 아쉬움이다. 이런 디지털 기술이 적정한 때에 위험에 놓인 환자를 찾아내 개입하고 다양한 치료 옵션을 제공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디지털 치료기기가 자리 잡으면 많은 의료 풍경을 바꿀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활성화를 위해 극복해야 할 과제는.
“의사 교육을 통해 인지도를 높이고 병원에선 디지털 치료기기 활용을 위한 관리 인력을 갖출 필요가 있다. 처방 건수가 늘고 보편화했을 때 임상적·경제적 가치를 평가하기 위한 계획을 세워 나가야 한다. 전문학회 차원에선 치료 가이드라인 진입을 위해 치료 효과에 대한 근거를 확보하고 전문가 협의를 이루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디지털 치료기기는 의약품 이외의 새로운 치료 수단으로 질병 치료뿐 아니라 삶을 윤택하게 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만성질환에 대한 사회적 부담이 계속 늘고, 오늘날 MZ 세대가 나이 드는 미래엔 그 역할이 더 중요해질 것이 분명하다. 이제 막 출발점에 선 만큼 기대를 현실로 만들려면 임상 의사·연구자들이 해야 할 몫이 가장 크다. 그는 “정신의학은 모호한 영역이 많고 진단 기준도 불완전한 측면이 있는데, 개인의 디지털 기록을 활용함으로써 이런 부분을 조금이나마 개선하는 데 도움을 주고 싶다”며 “산업적으로도 이 분야의 성공 모델이 나올 수 있도록 많은 이가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