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은 급속하게 성장한 한국의 경제에 급브레이크를 걸면서 경제, 정치, 문화 등 사회 전반에 격변을 가져왔다. 글로벌 자본이 본격적으로 국내 산업에 유입되고 고용의 유연화 등 한국 경제를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바꾼 역사적 사건으로 당시를 배경으로 한 영화, 드라마 등 작품은 대부분 쓰디 쓴 경험이 많다.
지난달 30일 개봉한 ‘소주전쟁’ 역시 IMF 당시 국내 주류 회사의 실화를 모티브로 한 작품으로 독보적인 맛으로 한국 소주시장을 평정했던 국보소주가 문어발식으로 사업을 확장하다 글로벌 투자사의 먹잇감이 되면서 벌어지는 경제사를 그렸다. JTBC ‘협상의 기술’에 이어 이번에도 기업인수합병(M&A) 전문가 인범 역을 맡은 배우 이제훈(사진)을 2일 종로구 삼청로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건축학개론’(2012)에 출연하며 ‘국민 첫 짝사랑’ 배우로 떠오른 이후 형사, 택시운전사 등 그야말로 ‘천의 얼굴'로 대중과 만나고 있는 그는 잇달아 M&A 관련 역할을 맡은 이유에 대해 “배우로서 삶을 계속 탐구하고 지속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이 어떤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 그들에게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관심이 가지게 됐다”며 “특히 ‘소주전쟁’의 배경이 된 IMF는 저의 중학교 시절부터 20대 초반까지, 그리고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영향을 준 역사”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IMF 구제금융은 대한민국 자본시장에 외국자본이 유입되고 개방되면서 기업의 지배구조 등이 변화한 우리 경제사의 극적인 장면 중 하나"라며 “이로 인해 기업뿐만 아니라 저도 개인적인 영향이 있었다. 아버지가 일용직을 하는 등 어려운 시절을 겪고 철이 일찍 들었던 시기”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당시 상황을 많이 조사하면서 느꼈던 것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금융 감독이 강화되는 등 제도적으로도 커다란 변화가 있었고, 투명한 기업 경영 등 개선과 혁신이 있었던 것 같다"며 “그 힘든 시기를 모든 국민들이 피, 땀, 눈물을 흘려가며 극복한 사례이기도 해 관객들과 나누고 싶은 영화”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30년 가까이 흘렀지만 당시 도덕적 해이 상황에 대해 끊임 없이 문제 제기를 하고 있는 이 영화가 오래 기억에 남는 가치 있는 작품이 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영화에서는 불투명한 경영을 하는 국보소주의 매각 과정이 소위 말해 ‘선진 금융기법’로 포장되고, 탄탄하게 영업이익을 내고 있는 기업도 부채 비율이 높아‘흑자 부도’를 낼 수 있다는 사실, 법조계와 글로벌 투자사 간 밀월관계 등 IMF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제훈은 글로벌 투자자문사 직원으로 국보소주의 매각건을 맡으며 회사가 인생의 전부인 K직장인을 대표하는 국보소주의 재무이사 종록(유해진 분)에게 접근하며 갈등하는 인범 역을 실감나게 연기했다. 월가 출신으로 스마트하고 냉철한 인범이지만 종록에게서 자신의 아버지의 모습이 오버랩돼 “회사는 그냥 돈 버는 곳"이라며 “자신의 인생은 자기에게서 찾으라”고 안타까움을 담아 화를 내기도 한다.



이제훈은 스타업에 투자해 소위 ‘대박’을 터트린 ‘투자의 귀재’이자 매니지먼트사 컴퍼니온의 대표인 경영인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대중은 그의 자본 시장에 대한 이해와 투자 비결에 대해서도 궁금해하고 있다고 하자 그는 “(투자에)관심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전혀 예측을 할 수 가 없다”며 “오히려 많은 정보가 주어지면 주저하게 되는 것 같다”고 말을 아꼈다. 매니지먼트사 키이스트를 설립한 배우 배용준에 이어 가장 성공한 엔터사 대표로 ‘제2의 욘사마'가 되는 게 아니냐는 질문에는 “직원들 월급 줄 수 있어서 감사하다"며 “개인 이제훈 삶이 없을 정도로 바쁘게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